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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보리사(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서 한겨레 토요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스님이 서 있는 곳이 스님이 강조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있는 장독대다. 용인/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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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 1세대 선재스님
지난 2월 명예박사 학위 받아
1994년부터 4000회 강연하며
사찰음식 대중화에 기여해
“음식은 생명”이란 가르침처럼
음식, 몸뿐 아니라 인성도 바꿔
전통 발효음식 독성 제거 탁월
“아이 위한 체험학교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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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보리사(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서 한겨레 토요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스님이 서 있는 곳이 스님이 강조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있는 장독대다. 용인/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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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사찰음식 명장·명예박사 1호 선재 스님
▶사찰음식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물 한방울도 헛되게 버리지 않는 1500년 전통의 우리 사찰음식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묵직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1994년부터 국내외에 사찰음식이 가진 참뜻을 알려온 선재 스님을 만났습니다. 사찰음식으로 1호 명예박사가 된 선재 스님은 아무거나 먹고 있는 우리들의 등짝을 인정사정없이 죽비로 후려쳤습니다.
매화처럼 매력적인 꽃이 있을까. 차가운 겨울을 뚫고 나오는 날카로움을 향기로운 메시지로 전하는 매화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충분히 나설 만한 실력을 뽐내지 않는 매화를 보며 무릎을 쳐보지 않았다면 아직 젊은 거다.
지난 6일 경기 용인시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담장 아래 매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피어 있었다. 연구원이 산중턱에 자리잡았다고 하지만 늦은 개화였다. 노랗고 하얗고 빨간 매화는 저마다 색깔은 달랐지만 향기는 같았다. 사상 최악이라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지친 눈이 시원해졌다.
하지만 선재 스님은 매화는 언급을 하지 않고 허리를 숙여 5평 남짓한 작은 마당에 고개를 내민 나물의 이름을 불렀다. 취 머위 돌나물 민들레 돌단풍 원추리 방풍나물 적기도 힘들게 빠르게 마당을 쭉 돌았다. 그러고는 뭔가 자랑하고 싶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사찰음식의 대가로 불리는 선재 스님은 참 곱다. 62살이라는 세속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이다. 자연을 닮은 사찰음식을 꾸준히 접한 덕분일까?
이날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을 찾은 것은 2월 그가 중앙승가대학에서 조계종 최초로 사찰음식으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비구니 명예박사도 그가 처음이다. 선재 스님 개인적으로는 종단으로부터 지난해 사찰음식 명장을 받은 데 이은 두 번째 영예다. 1994년 사찰음식을 주제로 처음 논문을 쓴 뒤 20여년간 사찰음식을 세상에 꾸준히 알려온 노력이 빛을 본 셈이다.
그런데 스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부드럽게만 보였던 그가 놋그릇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의외였다. 큰 가르침일수록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선방의 통념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생겼다. 1980년 8월 출가한 뒤 사찰음식의 대가로 자리매김해온 스님이 지금까지도 차돌맹이 같은 단단함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찰음식 명장 1호에 명예박사 1호
-학위 축하드립니다. 혹시 다른 석박사 학위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2000년 동국대 초빙교수로 강의 나갔을 때 학교 쪽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으라고 했지만 3천년 전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음식 공부가 더 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예박사 학위는 어떻게 받으신 건가요?
“사실 저도 수여 며칠 전에야 알았습니다. 생각도 못 했는데 기쁩니다. 저 개인보다 사찰음식을 인정해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학위 수여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명예박사는 70살이 넘어서 받는데 선재 스님이 공로가 있다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런데 반대쪽 논리가 명예박사는 적어도 60살은 돼야 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런데 선재 스님의 세수는 예순둘. 스님들조차 인정하는 동안 덕분에 학위를 못 받을 뻔했던 셈이다.
-세속에 사찰음식을 알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1993년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사찰음식이 아이들 심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죠. 그때 일이 정말 물밀듯이 밀려왔고 너무 바빠 끼니를 대충 때우며 일했습니다. 결국 건강이 악화돼 간경화 판정을 받았습니다. 1년을 넘기기 힘들 수 있다고 했는데 식단을 바꾸고 식습관을 고쳤더니 간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죠. 그래서 ‘아 나 같은 몸을 안 만들게 음식수행자의 길을 걸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고 이를 대중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법문이 아니라 음식으로 언론에 나가는 걸 종단에서 반대하지는 않았나요?
“아뇨. 일체 만물은 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일아함경 구절처럼 부처님은 설법을 통해 먹는 것을 강조하셨어요. 방송에 나가서는 이처럼 부처님이 하신 이야기로 사찰음식을 설명했죠. 그랬더니 종단 스님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사실 그때 무슨 능력이 있었겠어요. 만약 어른들이 그때 혼을 내셨으면 더 이상 안 했겠죠.”
1994년 간경화에서 회복되면서 선재 스님은 불교티브이(BTN)에 출연해 사찰요리 방송을 시작했다. 사찰음식이란 말 자체가 낯설던 때였다.
-당시 사찰음식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일부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심의를 이유로 ‘음식이 약이다’라는 말도 못 하게 했습니다. 또 화학첨가제나 유전자조작식품을 먹지 말자고 하면 지금까지 별문제가 없는데 왜 문제를 삼느냐는 비판도 있었죠. 그렇지만 당시 9시 뉴스와 같은 시간대에 나갔어요. 그땐 9시 뉴스의 시청률이 꽤 높았는데 그 시간에 나갈 만큼 인기가 있었나 봐요.”
간경화 극복하며 음식수행 결심
세상의 관심에도 스님은 1996년쯤 산중으로 들어갈 생각을 했다. 음식수행이 아니라 출가 때 염두에 두었던 자기만의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자연주의 치료에 관심이 있는 의사들이 사찰음식을 배우고 싶다고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스님의 음식수행은 계속됐다.
-‘음식이 약’이라고 강조하는 스님 강연이나 책을 보면 의사들이 뭐라고 할 거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의사들도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또 의사들 가운데 병이 걸리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예방의학 차원에서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진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의사들이 함께해보자며 저의 산중수도를 막았죠.”
그때 만났던 의사 가운데 한명이 선재 스님이 2000년 사찰음식 관련 첫 책을 낼 때 의학적인 감수를 해준 김수경 박사다. 그의 첫 책 <선재스님의 사찰음식-229가지 자연 맛>은 일주일 만에 초판 7000권이 모두 팔릴 정도로 당시 큰 화제였다.
-스님이 강연이나 책에서 하시려는 말씀은 한마디로 뭔가요?
“‘음식은 생명이다’죠.”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구하러 오는 대중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였습니다. 불경에 ‘식자제(食自制)가 곧 법자제(法自制)’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다스려야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생명은 크게 동물처럼 움직이는 유정과 식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무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두 생명을 중생이라고 하고 그 중생은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와 생명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사상입니다. 부처님은 그래서 음식을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사찰음식은 어떤 음식입니까?
“불경에서 음식을 만드는 건 의사의 일과 같다고 했습니다. 약이 아니면 버려야죠.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맞춰 먹어야 합니다. 똑같은 재료도 계절에 따라 속성이 달라지거든요. 이렇게 나의 마음과 영혼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음식이 바로 사찰음식입니다.”
“사찰음식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선재 스님은 1994년부터 지금까지 음식과 자연과 생명이 하나라는 것을 강조해왔다. 지금까지 전국을 다니며 4000번 이상 강연을 했다고 한다. 정부, 기업, 학교, 유치원은 물론 다른 종교 단체에서도 강연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5번의 고정 강연을 하고 하루에도 3번씩 강연을 한다.
-강연에서 집에 있는 진간장부터 버리라고 하시던데 왜 진간장을 버려야 하나요?
“제가 아플 때 저를 살린 게 김치와 장이었어요. 간경화를 앓을 때 토해서 다른 음식은 못 먹어도 장으로 한 음식은 먹을 수 있었어요. 인간도 생명이고 음식도 생명이어서 음식을 먹으면 독이 생길 수 있는데 발효 음식이 이 독을 막아줍니다. 그런데 진간장 같은 화학 간장은 그런 역할을 못 합니다. 그래서 진간장을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진간장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일본식 진간장이 나온 지 60년쯤 됐죠. 간장과 함께 된장, 고추장도 공장에서 만들고 거기에 입맛이 길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전통 간장은 냄새가 나서 못 먹어요라고 하는 판국입니다. 오히려 우리 간장의 깊은 맛은 외국 사람들이 더 알아줍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뢰에서 열린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 강연에서도 우리 전통 간장은 큰 관심을 끌었다. 스님은 이 자리에 20년 묵은 간장을 가져갔다. 전통 간장은 오래 묵을수록 짠맛 대신 깊은 맛이 나는데 학생들은 물론 르 코르동 블뢰 교수들까지도 스님이 담근 전통 간장의 맛을 높게 평가했다.
-현대인들이 장을 직접 담그기는 쉽지 않잖아요?
“아뇨.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얼마든지 담글 수 있어요. 그리고 담그지 못한다면 전통 방법으로 담근 장을 사다 먹어야죠. 그게 3만원이라도 사서 먹어야죠. 3천원짜리 공장간장을 먹으면 안 되죠. 나중에 병원비가 더 나와요.”
-결국 우리들 생각을 바꿔야 하는 거군요.
“그렇죠. 생각이 바뀌어야 입맛이 바뀌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강연하고 책을 쓰는 일을 하는 거죠.”
선재 스님은 인터뷰 내내 거침이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법회나 강연을 찾아보니 진간장뿐 아니라 현대인이 즐겨 먹는 고기나 가공식품을 강하게 비판했다.
-간장 회사나 육류 업체에서 문제삼지는 않나요?
“왜요? 간장 회사에 가서도 강연하는데요.”
-뭐라고 강연하셨어요?
“간장 좀 화학첨가제 없이 제대로 잘 만들라고 했죠. 며칠 전에는 외식업체 시이오(CEO)들 상대로 강연도 했어요. 짜게 음식 만들어서 돈 쉽게 벌려고 하지 말고 사명감을 가지고 사업하시라고 이야기했는데요.”
-(놀람) 그랬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맞다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시던데요?”
그 순간, 선재 스님의 날카롭게까지 느껴지는 단단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알았다. 자연과 음식이 하나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단단한 만큼 자신도 어디서나 할 말을 또박또박 하는 거였다. 그리고 화학첨가제 범벅인 음식이 범람해 중생들의 몸과 마음이 아픈 현실을 못 참는 거였다.
-단기필마로 잘 싸우시네요?
“(웃음) 아뇨. 저 좀 모자라서 못 싸워요.”
-그렇게 할 말 다 하는 게 진짜 잘 싸우는 거죠.
“그런 건가요. 아버지가 생전에 자존심이 세셔서 저건 닮지 말아야지 했는데…. 아무튼 아버지 덕에 정의롭게 살고 있나 봐요.”
선재 스님은 순수한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다. 그가 사찰음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계기도 청소년들을 직접 지도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그는 본인이 기획하고 대본을 쓴 어린이 뮤지컬 <너 그거 알아 음식은 생명인 거>도 유치원·학교를 다니며 공연해 왔다.
자작 뮤지컬로 어린이들에 생명교육도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아이들을 위한 체험학교를 열고 싶습니다. 어른들은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서 변화가 어려워요. 그런데 아이들은 달라요. 김치나 잡곡을 안 먹던 아이들도 곡식과 채소가 자연에서 왔다고 자세히 이야기해주면 잘 먹거든요. 아이들에게 미각 교육이 꼭 필요해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나요?
“예를 들면 아이들이 무를 잘 안 먹는데 어떻게 알려주냐에 따라 달라져요. ‘아이들에게 무는 그저 500원짜리가 아니야. 땅·씨앗·물·햇빛이 녹아 있는 생명이야. 무 씹는 아삭 소리는 바람 소리고 무의 단맛은 햇빛의 따뜻함 때문이야.’ 이렇게 말해주면 애들이 냠냠하며 무를 잘 먹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직접 무로 전을 만들게 하면 아이들이 놀라요. ‘스님, 무가 이렇게 맛있는 거예요’라면서. 있는 그대로를 흡수하는 아이들은 음식으로 정말 깊은 변화가 가능하죠.”
최근의 미세먼지는 우리가 한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공기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화학약품 범벅인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사람도 깊은 병을 앓아보면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미 국민 5명 가운데 1명이 당뇨 환자인 상황이다. 선재 스님이 매일매일 분주한 까닭이다. 문득 스님의 건강 유지 비법이 궁금했다.
-그렇게 전국을 돌며 강연하는데 건강 비법이 있나요?
“저요? 간장·된장·고추장·김치죠. 제대로 만든 발효 음식만 먹으면 따로 보약이 필요 없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스님은 기자를 장독대로 이끌었다. 평소 고린내 같았던 간장 냄새가 신기하게도 다르게 느껴졌다. 2시간 남짓한 인터뷰로 간장 냄새에서 스님 말처럼 한여름 콩 이파리를 흔들던 바람 소리를 들을 정도의 도력이 트인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겨울을 이긴 매화 향기만큼이나 수천년 이어져온 우리 전통 간장의 곰삭은 내음이 향기롭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용인/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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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스님이 공양간에서 강황비빔국수를 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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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스님이 지난해말 낸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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