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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2 19:39 수정 : 2018.02.04 10:30

한국의 ‘마쓰시타 정경숙'으로 불리는 건명원의 최진석 원장은 “지적인 안정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안정된 사람을 데려다가 불안하게 만들고 흔든다”고 말했다. 최 원장이 지난 30일 오후 서울 북촌의 건명원 뜰에서 건명원 강의실을 가리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인터뷰
최진석 건명원 원장

한국의 ‘마쓰시타 정경숙'으로 불리는 건명원의 최진석 원장은 “지적인 안정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안정된 사람을 데려다가 불안하게 만들고 흔든다”고 말했다. 최 원장이 지난 30일 오후 서울 북촌의 건명원 뜰에서 건명원 강의실을 가리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 북촌 가회동성당 옆에 ‘建明苑’(건명원)이라는 편액을 건 한옥집이 있습니다. 3년 전인 2015년에 문을 연 사설 무료 학교입니다. 한국의 마쓰시타 정경숙으로 불립니다. 학생은 30명뿐이지만, 교수진은 최진석(59·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비롯해 인문학과 과학, 예술 분야의 내로라하는 분들입니다. 최 원장은 교수직을 얼마 전 버렸습니다. 그를 만나 왜 대학을 박차고 나왔는지 들어봤습니다.

서강대 교수직 최근 스스로 관둬
‘융복합 인재 양성’ 건명원에 전념
“‘대학 한계 왔다’고 비판하곤
그 속에서 월급 받는 건 불편”

“나은 사회는 지성적 행동가 필요
일본 근대 연 ‘송하촌숙’처럼
선진국 이끌 비범한 인재 기를 터”
엘리트 중시하나 공적 책임 강조

어떤 면에서는 철저한 엘리트주의자다. 세상의 변혁이나 혁명적 사상은 한 사람에 의해 이뤄져왔다며,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좀 더 나은 사회로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지성을 갖춘 행동가가 나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 북촌에 있는 건명원에서 만난 철학자 최진석 건명원 원장(이하 호칭 생략)은 그러한 ‘최초의 한 사람’이 이 땅 대한민국에서 나오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최진석이 말하는 비범한 인물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특수한 엘리트가 아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범함과 고유함을 깨친 일반 시민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들은 개인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공동체에 대한 공적 책임감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그는 주체적이고 모험적인, 그러면서도 책임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런 면에서 최진석은 이상주의자다.

건명원에 도착할 때쯤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빼곡히 열린 대문을 밀고 들어 갔지만, ㄱ자의 아담한 한옥집은 인기척 없이 고요했다. 댓돌 위에 놓인 구두 한켤레가 그가 안에 있음을 말해줬다. 짧은 머리의 ‘최 도사’(그의 별명)에게 “왜 하필 철학이었냐”고부터 물었다. “어릴 적 큰누나의 죽음과 어머니의 유산 등을 겪으면서 잠재의식 속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물음인데 답을 찾았나-

“당연히 못 찾았다.(웃음) 대신 나를 지키는 시와 문장 하나는 건졌다. 시는 유치환의 ‘생명의 시’이다. 문장은 ‘나는 금방 죽는다’이다.”

매일 아침 “나는 금방 죽는다”는 말 뱉어

- 왜 ‘금방 죽는다’인가-

“보통 사람들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죽음 앞에 나를 세우면 나라는 주체가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매일 아침 짧은 명상을 하고 난 뒤에 이 문장을 두세번 입으로 말한다. 그러면 사소하고 번잡한 것보다는 좀 더 중요한 일을 선택하게 되고, 덜 쩨쩨해지고 더 성실해지는 것 같다. 적어도 점심때까지는 그런 기분이 유지된다. 오후 되면 다 잊어먹고 흐트러지지만.(웃음)”

최진석은 서강대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중국 베이징대에서 도가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모교인 서강대 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으며, 삶의 지혜와 인문학적 통찰을 담은 내용의 강연과 저술 등 많은 활동을 해왔다.

- 늘 죽음을 생각하는 태도 때문에 서강대 교수 자리를 관두는 결단도 비교적 쉬웠나-

“사람들은 그 어려운 결단을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는데 나한테는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우리나라는 모든 게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왔다. 새로운 생각이나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법, 새로운 비전이 형성이 안 된 채 있던 말들이 반복되고 하던 일들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대학에 계신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대학도 그런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그걸 극복해보자고 3년 전에 건명원을 만들어놓고 계속 대학 안에서 권력을 유지한다고 할지 월급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 언행의 불일치 이런 게 부담스러웠다는 뜻인가-

“말빚이 많이 쌓였다. 건명원에서 수업 전에 ‘우리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을 학생들이 읽는다. 그중에 한 문장은 ‘아직은 이름 붙지 않은 모호한 곳을 향해 부단히 나아간다’는 것이다. 원생들한테는 모호한 곳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라고 하면서 나는 이름이 붙은 분명한 곳에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교육적인 효과도 더 있을 것 같았다.”

건명원은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사재를 쾌척해 2015년에 설립됐다. 매년 30명씩 뽑아 인문학과 철학, 예술을 1년간 가르친다. 학생들은 라틴어 원전과 도덕경 등을 배운다. 학비는 무료다. 최진석 원장이 지난 30일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 건명원 마당에 서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1세기 융복합 인재 양성소’를 내건 건명원은 2015년 문을 열었다. 40년 가까이 단추 하나만으로 돈을 번 오정택(71)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100억원의 사재를 내고, 배철현(서울대 종교학과),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김개천(국민대 공간디자인학과), 김대식(카이스트 전자전기공학과), 김성도(고려대 언어학과), 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과), 정하웅(카이스트 물리학과), 서동욱(서강대 철학과) 교수 등이 합류해 출범했다. 만 19살부터 29살까지의 청년 30명을 뽑아 1년 동안 인문학과 과학, 예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다양한 학문의 섭렵이 아니라 ‘반역자’ 양성이 목표다. 곧 4기생 선발이 완료된다.

안정된 사람 데려다 흔드는 까닭 ―건명원이 추구하는 융합형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철학과 예술, 과학 등 핵심적인 세 축의 학문을 배우니까 통섭형 인재라고도 할 수 있다. 세가지 학문을 통섭하는 목적은 이질적 학문을 모두 흡수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 학문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서 갈등과 충돌을 빚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미국 등 외국에서 유학하고 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거기서 가져온 지식을 확산하고 전달하는 데 그쳤다. 유학 가서 배워야 할 것은 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지식이 생산될 때 인간은 얼마나 도전적인지를 배워야 한다. 그런데 지식이 생산될 때 나타나는 도전은 안 배우고 생산된 결과만 배워 온다. 그러니까 도전이 안 일어나는 사회가 됐다. 그러한 도전을 하게 하는 힘은 어떤 활동성이나 충동이다. 갈등과 불안을 통해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을 건명원은 노린다. 지적인 안정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안정된 사람을 데려다가 불안하게 만들고 흔드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항상 불안해라, 그리고 갈등을 두려워 말라고 한다.”

- 성과는 있는가-

“1년이 지나면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또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이 달라졌다. 이번 3기는 38명 중 19명이 졸업했는데 인상적인 게 있다. 한 명이 짧은 문장을 쓰면 다음 학생이 받아쓰는데 이게 한편의 시가 됐다. 이들이 시적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정도로까지 발전했다는 뜻이다.”

- 졸업 이후 진로는 어떤가-

“다 다르다. 유아 교육하는 사람, 스타트업 하는 사람, 정치를 꿈꾸는 사람 등 다양하다. 대기업 취직은 잘 안 하려고 하더라. 이들이 무엇을 하느냐보다도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게 가장 큰 소득이다. 한번 자유를 맛보면 부자유 상태로 돌아갈 수 없듯이 세상을 보는 높은 시선을 한번 경험해 보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시선의 높이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 수업 때 라틴어와 도덕경 원문을 암기한다는데 암기는 창의성 교육과는 안 어울리지 않나-

“암기 위주 교육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게들 보는데 건명원에서 하는 외우기는 그런 암기와는 다르다. 모든 지적활동은 육화의 과정이 일어나야 한다. 지식이 나한테 담겼다가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내 것이 되는 과정 말이다. 그때 외우기가 핵심이다. 특히 시를 외우는 게 중요하다. 시를 외우면 시인에게 지배당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시인만큼 커져서 오히려 시인을 압도하는 경지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 라틴어의 원전은 주로 어떤 내용인가-

“그때그때마다 다른데 키케로의 연설문 등이다. 도덕경은 자기가 좋아하는 문장 열편 정도를 외우게 한다. 이번 3기 졸업생 중에는 2명이 1년 만에 라틴어를 배워서 시를 쓰더라. 2기 때는 한시를 길게 지어서 낸 사람도 있다.”

- 건명원에 뽑히는 학생들이 본래 뛰어나서 그런 거 아닌가-

“사람은 나라는 의식을 갖는 한 고유한 존재이고 그런 의미에서 다 비범하다. 고유하고 비범한 사람들이 어떤 연유에 의해 일반화되고 평범해진다. 건명원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그 질문을 통해 잃어버린 고유함이나 비범함을 찾게 한다. 남이 해놓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비범해진다.”

최진석 ‘건명원' 원장은 20년 동안 재직한 서강대 철학과 교수직을 얼마 전 관뒀다. 지난 30일 서울 북촌 건명원에서 만난 그는 “대학이 한계에 부딪쳤다고 비판해놓고 그 안에서 월급 받고 있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건명원은 1979년에 설립된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며 수업료가 없다. 제2의 메이지유신을 일으킬 젊은 리더 양성을 목표로 하는 정경숙처럼 건명원도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건명원이 모델로 삼은 데가 있나-

“만들 때는 모델로 삼지 않았는데 일본의 요시다 쇼인이 만든 쇼카손주쿠(송하촌숙)가 됐으면 싶다. 일본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를 한마디로 한다면 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이 있었고, 우리는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쇼카손주쿠에서 3년간 90여명을 배출하고, 그중에 일본 총리가 8명이 나왔다. 쇼카손주쿠는 일본 근대를 열었다. 건명원이 미미하지만 내 속에 가지고 있는 바람이나 꿈은 새 나라를 이루는 데 건명원 인재들이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도 스티브 잡스가 나올 때 됐어”

- 소수의 엘리트를 기르자는 건데.

“시민 각자가 다 엘리트다. 예전에 왕이 하던 일을 지금은 시민이 하고 있다. 왕이 아니라 내 눈으로 세계를 보고 내가 결정해서 일을 하는 게 민주주의다. 따라서 엘리트 교육이 시민교육과 배치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시민이 엘리트화하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 모든 시민을 엘리트로 끌어올릴 수는 없지 않나-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보면 모든 시민을 엘리트화할 수는 없지만, 모든 시민이 엘리트가 되자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어떤 시민은 좀 더 빨리 엘리트화할 수 있고 누구는 좀 더 늦을 수 있지만, 엘리트가 되는 사람을 좀 더 많이 길러내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한다.”

- 건명원 졸업생은 1년에 많아야 20명 수준이어서 몇십년이 흘러도 수백명에 불과한데.

“역사에서 보면 저는 한 사람의 힘을 믿는다. 세계의 기독교 누가 만들었나. 예수 혼자 만들었다. 원불교 거대한 조직은 소태산 혼자 만들었고,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 혼자 만들었다. 중국 혁명 역시 모택동 혼자 했다. 그런 혼자의 힘을 믿는다.”

-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비범한 천재를 기대하나-

“우리 사회도 그런 사람이 나올 때가 됐고, 나와야만 한다. 그렇다고 대중의 힘을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깃발을 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최초로 말한 사람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 높은 단계의 지성에 행동력까지 갖춘 행동가의 출현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경계에 흐르다> 등 많은 저서와 대중 강연을 통해 이른바 ‘중진국 트랩’을 벗어나야 한다고 외쳐온 학자가 제시하는 나름의 절실한 해법으로 들렸다. 하지만 최진석이 키우려는 엘리트는 사회적 책임성을 갖춘 지성적 행동가이다. “공적 관념이 없는 독립적 주체는 이기적 주체에 불과하다. 공적 영역으로 확대될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주체이다. 그런 공적 역할과 사명감을 길러주는 것이 건명원이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화운동 등 치열하게 살아온 친구 용식(문용식 전 민주당 고양 덕양을 당협위원장)이에게 항상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말도 뜬금없이 들리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페이스북에서 찾아본 건명원 3기 졸업생의 모둠 시(‘신화’)에는 최진석과 건명원의 땀이 배어 있는 듯했다.

“… 6, 책무가 당신을 부를 때/ 7, 나는 눈을 감고/ 8, 춤을 추듯 나라는 경계 너머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숫자는 글 쓴 졸업생 순서)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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