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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7 11:41 수정 : 2018.03.18 15:57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 성화 봉송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영국인 스린 마디팔리는 신경체계 이상으로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앓고 있어 걷는 것이 불가능하다. 2015년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와 공동창업한 ‘장애인판 에어비앤비’ 어코머블이 지난해 말 에어비앤비에 인수되면서 그는 현재 장애인 소비자들이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인터뷰
‘장애인판 에어비앤비’ 공동창업자 스린 마디팔리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 성화 봉송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영국인 스린 마디팔리는 신경체계 이상으로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앓고 있어 걷는 것이 불가능하다. 2015년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와 공동창업한 ‘장애인판 에어비앤비’ 어코머블이 지난해 말 에어비앤비에 인수되면서 그는 현재 장애인 소비자들이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유전학을 공부한 뒤 비비피(BBP)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로 일했다. 6개월 동안 여행을 다녀온 뒤 직장을 그만두고 삶의 방향을 틀었다. 2015년 친구와 창업한 스타트업을 세계적인 기업 에어비앤비가 사들였다. 스스로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미래다.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지닌 스린 마디팔리 이야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다리만으로 이동이 힘들어지고 청각이나 시각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순간을 맞게 된다. 태어나서 몇 년간, 그리고 다시 나이가 들면서.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다른 사람이나 기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갑자기 찾아온 병이나 사고로 몸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비장애와 장애 사이의 벽은 생각보다 야트막하다. 18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패럴림픽’ 역시 비장애와 장애, 그 사이에서 움텄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척수 신경이 손상돼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병사들의 재활치료를 위해 1948년 영국에서 열린 스포츠 경기가 패럴림픽의 시작이다. 1952년부터 국제대회로 확대됐고, 점차 참전병이나 휠체어 사용자뿐 아니라 다양한 장애 유형을 지닌 사람들로 참가 선수 폭이 넓어졌다. 패럴림픽(Paralympic)에서 ‘Para’는 그리스어로 ‘나란히’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를 담아 패럴림픽 성화를 나르는 각 구간 주자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다.

지난 5일 휠체어를 탄 영국인 스린 마디팔리(32)가 평창겨울패럴림픽 성화 봉송 참여차 처음 한국을 찾았다. 신경체계 이상으로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척수성근위축증을 앓고 있어, 걷는 것이 불가능하고 양팔도 자유롭게 사용하기 힘들다. 침대에서 내려와 하루를 시작하기까지 일상생활을 위해선 다른 사람 도움이 필요하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이미 보았던 넓은 세상을, 그 역시 보고 싶었다. 용기가 없어 미뤄둔 여행을 끝내 실행한 건 지난 2010년. 6개월 동안 세계 여행을 떠났다. 유럽을 거쳐 미국·남아프리카공화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까지. 여행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2012년 변호사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옥스퍼드대학 엠비에이(MBA) 과정에 진학한다. 2015년엔 같은 병을 지닌 친구 마틴 시블리와 함께 장애인 소비자들과 숙박 공간을 이어주는 스타트업 ‘어코머블’(Accomable)을 창업했다. 앞서 두 사람은 2011년 장애인 온라인 매체 <디서빌리티 호라이즌스>(disability Horizons)를 창간하기도 했다. ‘장애인판 에어비앤비’(세계 최대 숙박공유 플랫폼)로 알려진 어코머블은 2년 동안 유럽·미국 등 서구 60개 나라 숙소 2000곳을 확보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비장애·장애 경계에서 싹튼 패럴림픽

현재 마디팔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겨 에어비앤비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에어비앤비가 어코머블을 인수하면서 생긴 삶의 큰 변화다. 지난 8일 에어비앤비 서울 사무소에서 마디팔리를 만났다. 활동 보조인이 그 대신 건네준 명함에는 ‘프로덕트(제품) 매니저’라는 직함이 쓰여 있다.

척수성근위축증으로 휠체어 생활
6개월 동안 세계여행 다녀온 뒤
장애인 소비자와 숙소 이어주는
스타트업 ‘어코머블' 공동 창업

장애인 ‘차별 논란' 에어비앤비
어코머블 인수하고 창업자 영입
“전세계 장애 지닌 인구 10억명
고령화로 접근성 필요 인구 늘 것”

―현재 에어비앤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나를 포함해 6명이 장애인 접근성(accessibility·신체적 특성이나 나이, 성별 등을 고려해 가능한 한 많은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평가할 때 쓰이는 말) 관련 두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선, 어코머블에 등록된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가져와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구조인지 등 여러 유형의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숙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접근성 필터(검색 조건)’를 개선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 공급을 늘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여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접근성 있는 공간을 보유한 사람들(호스트), 장애인 관련 단체 및 기관들과 대화와 협력을 하고 있다.”

―휠체어 경사로를 비롯해 나라마다 ‘장애인 접근성’ 기준이 다르다고 들었다. 접근성 판단 기준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궁금하다.

“하나의 기준을 만들기보다 각 숙소에서 어떤 것이 제공되는지 명확하고 자세하게 표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휠체어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문턱이나 계단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 높이인지. 정확한 정보를 많이, 다양하게 제공함으로서 장애를 지닌 소비자들이 정보를 신뢰하고 숙소를 예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1~2년 동안 접근성 필터를 계속 개선할 예정이다.”

―에어비앤비에서 일하기 전에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구한 적이 있나?

“없었다. 4월에 ‘레이크 타호’(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 경계에 있는 대형 호수)로 여행을 가는데 그때 처음 에어비앤비 등록 숙소를 이용할 예정이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지 않은 까닭이 궁금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찾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를 찾아주는 서비스가 아예 없었다. 어코머블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스스로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7일 강원도 정선에서 스린 마디팔리(왼쪽 둘째)가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 성화 봉송에 참여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지 않았던 까닭

지난해 공개된 미국 럿거스대학 노사관계대학원 메이슨 아메리 박사 연구에 따르면, 에어비앤비 플랫폼에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 견줘 숙박 요청을 거부당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았다. 2017년 6월2일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럿거스대학 연구팀이 2016년 6~11월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3847곳에 숙박 요청을 해보았더니 비장애인에 대한 숙박 승인 비율은 75%였으나, 척수 손상 장애가 있다고 밝힌 경우 승인 비율이 25%로 떨어졌다. 연구팀은 에어비앤비가 자신의 집을 빌려주는 호스트들이 미국 연방 차원의 장애인 차별 금지 정책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고, 장애인 단체·여행자들과 협력해 장애인들의 요구와 좌절 경험을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2017년 11월 에어비앤비는 어코머블 인수를 발표했다. 2016년 <디서빌리티 호라이즌스>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어코머블을 떠난 공동창업자 마틴 시블리는 블로그를 통해 “법적 규제, 옳은 일, 영국에서만 2490억파운드(약 370조원)의 장애 관련 소비 시장이 있기 때문에 접근성 강화·통합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불행하게도 말과 행동은 매우 다르다. 실제 행동으로 옮긴 에어비앤비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미국 장애인법(ADA) 같은 규제는 숙박시설 및 서비스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에어비앤비를 통해 자신의 집을 빌려주는 개인에겐 이러한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에어비앤비가 확보할 수 있는 접근성 있는 숙소 수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어코머블을 운영해보니 접근성 있는 숙소 다수는 장애인 가족이 있는 집이었다. 이러한 가족을 찾아 숙소로 유치하기도 했다. 에어비앤비는 자원이 많으므로, 접근성 있는 숙소를 더 빨리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관광지는 장애인 숙박시설 수요가 높으므로, 시장 가능성을 보고 호스트들이 집을 개조할 수도 있다고 본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접근성 높은 집은 디즈니월드에 가고 싶어 하는 가족이 많아 숙박 시점 18개월 전부터 예약을 받고 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 시장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많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 15%인 약 10억명은 어느 정도의 신체 장애를 지닌 채 살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접근성이 필요한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에서도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에 장애인 여행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스린 마디팔리는 2010년 6개월 동안 유럽·아프리카·아시아 등 세계 여행을 떠났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모습. 마디팔리 제공
무조건 도와줄 대상 아닌, 소비자로

올해 31살인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도 마디팔리와 비슷한 생각이다. 10살 때 척수염을 앓으면서 휠체어를 타게 된 홍 대표는 2015년 한달 동안 혼자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이듬해 책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를 냈다. “이동이 불편하거나 어려운 분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움직이니 ‘원 플러스 원’처럼 시장성이 있다고 본다.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 보행이 느린 분들이 많아질 텐데 그 사람들이 여행을 안 가진 않을 거다. 국내에선 이러한 시장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어렵다. 어르신이나 장애인, 유아 동반 가족 등 여행자의 다양한 요건이 통계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관광지 장애인 편의시설은 개선되는 추세지만, 여행을 위한 교통·숙소 이용엔 여전히 높은 벽이 있다. 장애·비장애를 아우르는 콘텐츠 제작 협동조합 ‘무의’ 홍윤희 이사장은 “외국인이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동이 힘들어진다.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버스나 택시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무의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조사에 나서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지하철을 환승할 수 있도록 ‘서울시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www.wearemuui.com/kr/specialproject) 이 단체 조사에 따르면, 2·3호선이 교차하는 교대역의 경우 휠체어를 탄 사람들의 환승 시간은 비장애인에 견줘 11배(22분)나 걸렸다.

―국내에선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 영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떤가?

“런던의 모든 택시(블랙캡)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다. 싱가포르 도시철도(MRT)도 모든 역에 접근이 가능했다. 길 위에서부터 플랫폼(승강장)까지 아무런 도움 없이 갈 수 있었다.”

―비행기 화장실이 좁아 이용할 수 없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비장애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굉장히 복잡한데, 정확한 정보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비행기에서 화장실에 가지 않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하고,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자동차를 찾는 것도 중요하고, 숙소 상황이 어떤지도 고려해야 한다. 바르셀로나에는 휠체어 길이 있는 해변이 있고, 미국에는 해변 전용 휠체어를 빌릴 수 있는 곳도 있다. 다만, 정보를 찾는 것이 힘들다. 정보 공유가 가장 큰 문제다.”

스린 마디팔리가 2015년 공동 창업한 어코머블 화면. 마디팔리는 현재 어코머블에 등록된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가져와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어코머블 누리집 갈무리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마디팔리는 어코머블 창업 뒤 2015년 11월14일 영국 <비비시>(BBC)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멀리 떠나면 휠체어가 고장날까봐, 숙소에 문제가 있을까봐, 이동을 제대로 못할까봐 두려웠다. 항상 스스로를 안전한 지대에 머물도록 설득했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 놀라운 시간을 보냈지만 갖고 있던 두려움들도 ‘현실화’됐다. 그러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예의 바르며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주려 한다는 것을 믿는다. 여행 전에 숙박 시설을 확인하고, 휠체어 등 장비 공급·지원업체를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면 무엇인가 잘못된다 하더라도 결코 끔찍한 악몽이 되지 않는다.”

옥스퍼드대학 사이드 비즈니스 스쿨에 개설된 사회적기업가를 위한 스콜 센터로부터 받은 보조금 2만파운드(약 3천만원)가 어코머블의 씨앗이 됐다. 이후 30만파운드(약 4억5천만원) 투자를 유치했다.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잡기 버거웠다. 그와 동료들이 에어비앤비에 합류한 까닭이다.

―경력이 굉장히 다양하다.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옥스퍼드대학을 다니면서 온라인 강의를 활용해 독학으로 ‘코딩’(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술을 활용하면 좀더 많은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졸업 뒤에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주면서 코딩 능력을 길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진 않았지만, 항상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현재 목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상품을 만들고 싶다. 교육을 받고 기술도 가지고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이러한 행운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수익을 내는 ‘소셜벤처’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우선 시도하라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시도가 많아질수록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투자가 증가하면 이 업종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러면 생태계가 조성된다. 최선을 다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실패를 한다 하더라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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