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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8 19:37 수정 : 2018.06.08 20:34

[토요판] 인터뷰
‘임신중단 합법화’ 집회 이끄는 ‘비웨이브’

비웨이브(BWAVE)가 3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수백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 ‘검은 시위’는 2016년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13차례나 열렸다. 익명 여성들의 모임인 ‘비웨이브’가 집회를 이끈다. 집회 개최를 돕기 위해 ‘총대’를 맨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여성은 아기 공장이 아니다. 여성은 인큐베이터가 아니다!”

지난 3일, 30도에 가까운 무더운 날씨에 검은 옷을 입은 여성 450여명이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모였다.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익명 여성들의 모임인 ‘비웨이브’(BWAVE)다. 2016년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13차례에 걸쳐 열린 이 집회에는 약 3300명의 여성이 모였다. 오는 10일에 열릴 14차 집회에는 2000명이 참석 의사를 밝힌 상태다.

비웨이브엔 대표나 운영진이 없다. 집회에 필요한 홍보, 물품구입 등을 자발적으로 돕는 ‘총대(총대를 맨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들이 있을 뿐이다. 6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집회 총대’ 김수진(가명)씨와 ‘언론 담당 총대’ 이지수(가명)씨를 만났다. 김씨는 집회 신고 등 집회 개최에 대한 총책임을 맡고 있고, 이씨는 보도자료 배포 등 언론사와 소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철저히 익명으로 집회를 준비하는 이들은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핸드폰 번호도 모른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고, ‘임신중단 합법화’ 외 주제나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원칙이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도 나이나 신상은 밝히지 않았다.

대표, 운영진 없는 익명 모임

2016년 9월, 보건복지부는 성폭력, 무허가 주사제 사용, 대리수술 등 8가지 유형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비도덕적 진료행위’ 항목에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하여 임신중절 수술을 한 경우’가 포함된 게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 직후인 2016년 10월초,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던 극단적 낙태 전면 금지법(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해도 낙태를 할 수 없다는 내용)에 대해 폴란드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여 법안 철회를 이끌어낸 일이 발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23일, 폴란드 시위를 참고해 비웨이브가 첫 집회를 열었다. 검은 옷을 자신들의 드레스코드(복장 규정)로 정했다. 2016년 12월 복지부는 법 개정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들은 집회를 멈추지 않았다. ‘임신중단’(비웨이브가 낙태를 이르는 말)은 여전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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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웨이브는 어떤 모임인가.

이지수 “비웨이브는 블랙 웨이브(BLACK WAVE), 즉 검은 물결 또는 검은 흐름이란 의미의 줄임말이다. 우리는 ‘휴일에는 뭐하고 놀지?’라는 고민을 하며 사는 평범한 여성들이다. 여성단체가 아니라, 개개인 여성들이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집회 준비와 진행을 돕는 여성들의 일시적인 모임이고, 집회 참가자 역시 특정 단체의 회원이 아니라, 조직되지 않은 익명의 여성들이다.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연락처도 물어본 적 없고 물어서도 안 된다. 집회 참가자들은 중·고등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물론 나이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 왜 익명으로 활동하나

우리 모임이 다른 특정 단체나 정치세력에 의해 이용되는 것을 우려해서다.

- 비웨이브는 어떻게 운영되나?

김수진 “언제 집회를 열어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일정을 정한다.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라는 이름의 다음 카페와 공식 인스타그램, 트위터에 집회 일정을 올리면 이 글을 본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면서 참석을 독려하게 된다. ‘총대’들은 집회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맡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 총대들이 모이는 텔레그램 방에 초대되고, 여기서 서로 역할을 분담한다. 현재 30~40명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 집회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몇 명이 올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미리 참석 인원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금액을 정한다. 그 금액만큼만 모금을 한다. 집회가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오고 싶어도 못 오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돈을 보내주기도 한다.”

정부 임신중절 처벌 강화 시도에
자발적으로 모여 집회 시작
1년 8개월 동안 13차례 열려
폴란드 여성들 따라 ‘검은 시위’

대표·운영진 없고 ‘총대’만 봉사
이름·연락처 서로 모르는 모임

“임신·출산은 여성이 결정하는 것
부당한 것 부당하다 말하고 싶다”
낙태 여성·의사 처벌조항 폐지 요구
사회적 변화 느껴…“희망이 보인다”

- 두 사람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여성인권에 관심은 많았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했는데 문득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다 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연히 포스터를 본 것이 계기가 돼 2차 집회에 참석했고 이후부터는 언론 담당을 맡게 됐다.”

“그 동안은 부당한 것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2017년 초부터 집회에 참여했다.”

- 낙태나 임신중절이 아닌 임신중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태아를 떨어트린다’는 낙태 대신,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임신중단’이라는 용어를 쓰고있다. 의학용어인 ‘임신중절’보다 스스로 중단한다는 자기결정권의 의미가 더 부각된다는 점도 고려했다.”

- 비웨이브의 핵심 주장은 무엇인가.

“여성은 사람이고 자궁이 아니다. 여성들이 더 이상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국가가 더 이상 여성을 인구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낙태한 여성과 낙태수술을 해준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를 폐지하라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통제 대상이 아냐”

지난해 2월, 업무상 승낙 낙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전문의 ㄱ씨는 낙태죄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지난달 24일 헌법소원 공개변론을 앞두고 법무부가 낙태죄 폐지 요구 여성에 대해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공개변론 요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법무부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낙태죄에 대한 논의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 뒤 법무부는 의견서를 철회했다.

- 법무부가 제출한 의견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법무부가 (의견서를) 제출은 하되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여성이 가져야 할 근본적인 권리로 보고 있음에도, 법무부는 이를 범죄로 간주해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후진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흔히 낙태죄에 대한 논의를 할 때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비시키곤 하지만 이 프레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태아가 인간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견해가 대립한다. 하지만 여성이 인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부가 가족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여성의 임신·출산결정권을 통제하고있다. 우리는 ‘3살 터울 셋만 낳고 35살 단산하자’는 슬로건과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를 기억한다. 그것들이 고작 20년 사이에 ‘엄마, 혼자는 외로워요’라는 정반대의 내용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 외국의 입법을 보면, 임신 기간에 따라 낙태 허용 여부를 달리하고 있다. 임신 초기(12주까지)나 중기(12주부터 24주까지)의 태아와 인간의 생명과 어느 정도 동일시할 수 있는 임신 말기(24주 이후)의 태아는 달리 봐야 한다는 것이다. 비웨이브는 임신 말기의 낙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에 관해선 각자 입장이 다르고, 우린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로 입장을 통일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낙태 수술이 여성의 몸에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주는데도, 임신 말기에도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합법화를 해서 보호해주는 것이 낫다고 본다.”

“낙태하는데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임신중단 합법화를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임신중단 또한 한 인간의 권리고, 태아는 여성 신체의 일부라는 점 때문이다. 국가가 통제할 대상이 아니란 의미다.”

“임신중절약 허용하라”

비웨이브는 임신 중절약인 ‘미프진’ 수입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미프진은 프랑스 제약회사에서 개발해 1988년 인공임신중지용 약물로 승인됐다. 미프진은 태아가 자궁 안에 있게 해주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 생성을 억제해, 임신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미국에서는 의사 처방을 전제로 판매가 허용되고 있고, 유럽에서는 아일랜드와 폴란드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92년 자체 제약회사를 설립해 미프진 복제약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미프진은 수입금지 품목이다.

- 임신중절약에 대한 위험성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느 약이나 부작용은 다 있다. 흡입식 낙태수술은 전신마취를 동반하며, 자궁내막증·자궁천공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미프진은 마취 및 수술이 필요 없다. 장기가 손상될 우려가 적고 내원 치료를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여성이 상황에 따라 수술을 하든 사후피임약을 먹든 중절약을 먹든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여성이 선택권을 갖는걸 싫어한다.”

비웨이브(BWAVE)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비웨이브는 학창 시절 성교육 시간에 사용된 낙태 영상은 부정확한 정보로 낙태에 대한 죄책감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잘못된 성교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984년 미국에서 발표된 <소리 없는 비명>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한국의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성교육 교재로 사용됐다. 나도 그 영상을 학교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영상 속 태아는 임신 3기(임신 24주 이후) 이후의 모습으로, 실제 임신중절 수술의 90% 이상이 임신 12주 이전에 이뤄지는 현실과 다르다.”

“요즘에도 낙태하면 생명을 죽이는 끔찍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집회 때마다 이 영상의 진실을 알리려 노력하는데, 많은 여성들이 놀란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성교육을 해야 하나.

“임신과 출산 과정을 추상적으로만 가르치면 안 된다. 올바른 피임 방법, 피임 종류, 부작용, 효과 등을 가르쳐주고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

“임신이 얼마나 여성의 몸에 안 좋은지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 뼈도 망가지고, 기억력도 나빠지고, 하혈도 상당 기간 계속되지만 이런 변화들은 알려주지 않은 채 출산을 신성하게만 가르친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과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알려줘야 한다.”

낙태죄 폐지 가능성은

지난해 9월 시작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 달만에 23만명이 넘는 추천을 받았다. 이에 조국 청와대 정무수석은 “현행법은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있다”며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건강권 침해 가능성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해 낙태죄 폐지에 힘을 실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 소장도 지난해 11월 인사청문회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했듯이 일정한 기간 이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도 지난달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낙태죄 재검토’를 명시한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 헌재의 판단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 시술을 한 조산사 등을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는데, 당시에도 재판관 의견이 4(위헌)대 4(합헌)로 팽팽했다. 지금은 낙태죄 폐지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본다.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헌재에서 낙태죄 합헌 결정이 난다면 역사에 부끄럽게 남을 것이다. 낙태죄 위헌 결정이 나올 때가 됐다.”

- 사회적 분위기가 변했다고 느끼나.

“2년전 처음 집회에 참석했을 땐 ‘너희 부모가 너 이러는거 알고 있냐. 미친 X’이라고 말하고 가는 남성들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대놓고 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여성들의 응원과 격려가 가장 힘이 된다. 예전에 신기하게 쳐다봤다면 요즘엔 힘내라고 지지를 보내준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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