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전교조 ‘페미니스트 선본’ 김성애·양민주
19대 전교조 위원장-수석부위원장
선거서 김성애-양민주 8.79% 3위
전교조 역사상 첫 여성팀-페미 후보
“거대담론에 묻힌 조직 새로고침 필요”
“비혼, 기혼, 장애, 비장애 여성들이
참교육운동 만든다고 상상해보자”
해단식서 터져나온 차별의 경험들
깔깔 웃으며 다짐하는 ‘새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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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전교조 위원장-수석부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김성애(왼쪽)-양민주 교사는 지난달 12일 <한겨레>와 만나 “페미니즘이란 렌즈로 차별과 혐오가 왜 만연한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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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19대 위원장·수석부위원장 선거가 최근 끝났다. 이번 선거에선 전교조 30년 역사상 의미 있는 ‘최초들’이 있었다. 최초의 여성 위원장-여성 수석부위원장 후보가 출마했고, 최초로 페미니즘을 기치로 출마한 후보가 나왔다. 두 ‘최초’ 모두 김성애-양민주 후보가 썼다. 비록 선거에서 그들은 ‘꼴찌’를 했지만 꼴찌들의 목소리가 왜 지금의 전교조에, 한국 교육에 필요한지, 지난 한 달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파티가 시작됐다. 휴대용 미러볼 조명이 비춘 색색의 빛깔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의 ‘한나아렌트홀’을 감쌌다. 1990년대 추억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함께 모인 이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들썩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수석부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페미니스트 후보 김성애-양민주 교사의 선거운동본부 해단식 자리였다. 선본 조합원들은 선거운동 기간 각자가 부닥쳤던 차별의 언어를 쏟아냈고, 통쾌한 야유로 되갚았다. 마음 속 응어리들이 음악을 타고 넘실넘실 흐르더니, 깔깔 쏟아져 나오는 웃음에 마침내 톡 하고 터져버렸다.
“후보 면전에 대놓고 ‘이번에 당선되러 나온 것 아니잖아요’란 말이 많이 나왔어요.” (으악∼)
“학교 유세 때 전교조 활동을 하고 싶어도 아이 보느라 활동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씀드렸더니 (한 교사가) ‘그럼 육아휴직을 없애야겠네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어우∼)
“어떤 조합원은 ‘2030세대가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는 건 그들이 자기 욕구를 우선시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악!)
전교조는 앞서 5일부터 7일까지 19대 위원장 선거를 실시했다. 전체 세 팀이 후보로 출마했으며 기호 3번 권정오-김현진 후보가 51.53%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 김성애-양민주 두 후보는 한 자릿수 득표로 3위에 그쳤다.
“전교조 내 비민주, 더는 묵인하고 싶지 않았다”
1989년 전교조 창립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위원장-여성 수석부위원장 후보가, 그것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육’을 전면에 내세워 출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단걸음에 달려갔다. 묻고 싶었다. ‘페미’란 두 글자만 들어가도 온갖 비난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대체 어떤 용기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웠냐고 말이다. 초등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교사가 ‘사이버불링’을 당하고 보수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한게 불과 지난해 일이다.
“사실 좀 늦은 거죠.”
지난달 12일 위원장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직후 만난 김성애 교사는 “30년간 교육민주화 투쟁을 해왔지만 정작 우리 안에 자리잡은 비민주성을 묵인하고 있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전교조 여성위원장으로 활동해 온 그는 사실 다른 남성 위원장 후보로부터 수석부위원장으로 함께 출마해달란 제안을 받았다. ‘직접 하면 왜 안 돼?’란 의문이 들었다. 조합원의 68%가 여성인 곳에서, 왜 여성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생각이 스쳤고, 출마를 결심했다.
전교조는 한국 노동조합 최초로 대의원 여성할당제를 도입했고,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 두 후보 중 한 명은 반드시 여성이 출마하는 동반출마제도를 2004년에 만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위원장이나 전임자 등 주요 활동가는 남성이 다수였다.
“남성 조합원이 과다대표되면 여성 조합원의 경험과 현실은 배제되기 쉬워요. 남성 교사의 삶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등치하니, ‘여교사’와 ‘여학생’이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학교 내 폭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김성애)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양민주 교사는 전교조 내 유일한 사립유치원 해고조합원이다. 보건, 영양, 직업·특수교육, 기간제 교사 등과 함께 입시와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소수 직군이다. 그가 출마를 결심한 건 10
년 전 ‘민주노총 성폭행 미수 사건’(수배 중이던 민주노총 전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전교조 조합원을 민주노총 간부가 성폭행하려 했던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 (조직에) 많이 실망했어요. 피해자에게 ‘당신이 희생하라’면서 조직 보위를 우선으로 삼아 사건을 처리했죠. 이 조직에서도 힘없고 소수인 조합원들은 결국 조직을 위한 도구일 수 있다는 암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출마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가 (저처럼) 외곽에 있는 사람이라도 나서서 바꿔보자 싶어 용기를 냈던 거예요.”(양민주)
전교조는 창립 당시 ‘민족, 민주, 인간화’를 기치로 내걸고 싸워왔다. 하지만 이 가치가 조직 내부에도 확고히 자리 잡았느냐는 질문엔 쉽게 답하기 어렵다. 두 교사는 “여성 조합원의 경력단절에 무관심한, 남성 중심 조직문화를 재생산하는, 출신학교·학교급·정파가 경계가 되는, 나이와 경력이 권력이 되는” 전교조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지금 이 시대에 맞는 ‘민족, 민주, 인간화’의 의미를 재정의하겠다는 뜻이다.
페미니즘이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거대담론으론 해석되지 않는 미시적인 권력구조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의 관점에서 전체 구조를 바라봄으로써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낯설게 하고 새로운 성찰을 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정의했다. 김성애 교사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양민주 교사에게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를 발견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걸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다.
왜 지금 전교조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전교조도 결국 ‘87년 체제’라는 역사적인 한계 속에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30년 전처럼 거대담론 차원의 투쟁만으로는 2018년 한국 사회와 교육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조직된 남성 중심의 문화, 학연과 지연으로 엮인 문화가 계속됐죠. 페미니즘과 ‘미투’에 관심은 있어도 어떤 언어로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동안 전교조가 외쳤던 ‘기-승-전-신자유주의’, ‘기-승-전-입시경쟁 교육’과 같은 틀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제는 사회가 단순하지도 않고요. 그 틀 안에서 호명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걸 보여주는 사례가 ‘스쿨미투’입니다. 거대담론에 가려진 일상의 폭력과 차별이 학생들의 힘으로 낱낱이 폭로되고 있는 거죠.” 김성애 교사는 말했다.
제도적인 민주화를 넘어 일상에 민주주의를 스며들게 하는 것, 이들이 전교조에 ‘새로고침’이 필요하다고 외쳤던 이유다. 양민주 교사가 덧붙였다.
“리모델링이 필요한 때죠. 선배 세대들이 큰 집을 지어줬는데, 이제는 낡고, 물이 새고, 금이 간 곳이 있으니 우리 세대에 맞춰 더 멋진 집을 짓자는 겁니다. 윗세대의 성과를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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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6일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열린 합동유세에서 김성애-양민주 후보 쪽 조합원들이 지지운동을 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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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교육”
올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스쿨미투’는 혐오와 차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교육현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고발로 이어진 이 운동은 기존 질서를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새로운 시대를 그들 스스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학생과 교단의 간극은 크다. 진보적인 교육개혁을 말해온 전교조조차 ‘스쿨미투’ 국면에선 그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30대 조합원은 “스쿨미투가 왜 학생의 인권과 직결된 문제인지 (전교조도) 잘 모른다”며 “어떻게 해야 전교조가 시대에 맞는 운동성을 회복할 수 있나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다양한 욕구와 가치를 긍정하는 것, 이러한 페미니즘 교육 없이 교육현장을 바꾸기 어렵다고 두 교사는 입을 모았다.
“원생 16명 중 9명이 이주여성의 자녀인 한 유치원에서 겪었던 일이에요.
한 아이가 ‘우리 엄마 300만원 주고 갖고 왔다’고 말했어요. 할머니랑 아빠가 하던 말을 그대로 한 거죠. 엄마란 존재, 즉 여성은 돈 주고 물건처럼 구입할 수 있는 존재로 아이에게 각인된 거예요. 그 아이가 자랐을 때 여성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교사라면 그때 그 아이의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잖아요. 그 역할을 하는게 페미니즘 교육이고요.”(양민주)
“학생들이 ‘정상’의 범주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번이라도 하면 서로를 밀어내요.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요. 사회와 닮았죠. 페미니즘 교육이 곧 사람을 살리는 교육이란 생각이 드는 건, 차별이나 소외당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도록 돕기 때문이에요.”(김성애)
그는 교과체계까지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대학을 가는 학생들만 ‘학생’ 개념에 포함되죠. 기존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과목만 중요 교과로 취급받고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무엇이 중요한가, 공동체의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하면서 관점 자체를 돌려보자는 겁니다. 페미니즘이란 렌즈를 통해서요.”(김성애)
기존 위계질서와 권력관계는 페미니즘이란 틀 안에서 해체된다. ‘기호 2번’ 두 페미니스트 후보와 선본이 만든 한 달여의 선거운동이 꼭 그랬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11월26일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열린 합동유세현장에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두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여성조합원들이 나와 노래를 부른 것이다. 후보가 마이크를 잡고 일방적인 연설을 하는 모습은, 2번 후보 유세 땐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일반 조합원들이 읽어내려간 지지 발언이, 직접 만든 연극과 노래가 그 자리를 메웠다. 후보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는 등 으레 젊은 여성조합원에게 주어지는 이른바 ‘꽃순이’ 역할과는 대조됐다.
“전남 유세를 갔는데 여성 수석부위원장을 했던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수석의 역할은 리더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보좌하는 거니 너무 나서지 말라고.”(양민주)
하지만 선본은 두 후보를 상하관계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재조정했다. 같은 시간, 다른 지역에서 열린 유세 때문에 불참한 수석부위원장 후보의 연설을 영상을 활용해 함께 소개한 것도 2번 후보가 유일했다. 모든 의제는 후보와 선본이 수평적인 토론을 거쳐 정했고, 유세할 땐 특수학교 등 소외된 조합원을 만나러 갔다. 후보 개인이 돋보이지 않고 함께 빛나는 것,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는 것, 이제껏 다른 후보가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우리 스스로도 권위와 위계를 없애려고 노력했어요. 후보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목소리로 ‘왜 2번이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했죠.”(김성애)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관계맺기를 고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탐험하는 자가 없다면”
득표율 8.79%. 한 달여간의 유세가 끝난 뒤 두 후
보가 받은 성적표다. “전교조 본부 전임자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고 상상해보라. 비혼, 기혼, 무자녀, 유자녀, 20대, 50대, 장애, 비장애 여성들이 어우러져 참교육운동과 교육노동운동을 만들어간다고 상상해보라.” 선거 공보물을 통해 밝혔던 꿈은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적어도 2018년엔 말이다.
“조직을 위해서 (남성을) 보좌하는 일을 여성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여성 분들도 여전히 계세요. 저희가 말하는 여성의 역할이라는 게 자신이 해왔던 일을 부정하는 거란 인식도 있고요. 극복할 수 없는 한계였던 거죠.”(양민주)
그럼에도 두 교사는 미래를 내다본다. “전교조 결성 당시 막내였던 사람들이 지금 임원 자리에 있어요. 벌써 50대 중반이니, 10년 이내에 다른 체제가 되겠죠. (그 때를 대비해) 앞으로 여성 조합원들의 정책 역량을 키우고, 이번에 ‘2번’을 뽑은 조합원들이 외롭지 않도록 연결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김성애)
함께 뛴 조합원들은 가능성을 말했다. “정파구도가 치열한 조직 안에서 한 달 만에 3397명의 지지를 이끌어냈잖아요. 놀라운 숫자라고 생각해요.”, “한 달 동안 8%의 기적을 만들어냈어요. (다음 선거는) 24개월 남았으니 이겼네요.”
선본 활동을 마무리하는 날, 이들은 나혜석의 글을 함께 읽었다.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은 영원히 못 갈 것이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잔 말이오.”
다시, 이들의 파티는 시작될 것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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