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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7 08:54 수정 : 2019.11.17 08:58

지난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에서 만난 문숙은 “자주 거닐던 길”이라고 말했다.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인터뷰
<위대한 일은 없다> 펴낸 배우 문숙

영화 <삼포 가는 길> 출연 배우
이만희 감독과 사별 이후
미국에서 요가·명상 배우다
5년 전 돌아와 강연하고 연기

40년 만의 영화·드라마 출연
삶의 본질에 관한 책 펴내

지난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에서 만난 문숙은 “자주 거닐던 길”이라고 말했다.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작가 문숙을 만났다. 그가 좋아하는 숫자 9를 거꾸로 놓은 66살 문숙. 영화 <삼포 가는 길>의 ‘백화’를 연기한 배우 문숙. 그 영화의 이만희 감독과 결혼하고 22살에 사별한 문숙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40년 가까이 뉴욕, 플로리다주, 로스앤젤레스, 샌타페이, 마우이섬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플로리다주에서 그림을 전공하고 샌타페이에서 화가로 살았고, 샌타페이에서 요가와 명상을 수련하고 마우이에서 <문숙의 자연식>과 <문숙의 자연치유>를 썼다. 60살이 넘어 한국에 돌아와 영화 <허스토리> 등에 출연하고, 요가와 명상을 이끄는 이로 수업도 하며 살아간다. 최근 자신의 생각을 담은 <위대한 일은 없다>와 <위대한 사랑이 있을 뿐―문숙의 그림 엽서책>을 쓴 작가 문숙을 지난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에서 만났다.

<위대한 일은 없다>는 “5년 전 초가을, 가방 하나 가지고 한국에 다니러 온 뒤에 아직도 여기에 살고 있다”로 시작한다. 310여 쪽 이야기의 끝에서 작가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답을 얻으려 떠돌아다닌 지 십수년, 마침내 밖이 아닌 내 안으로 눈을 돌려 답을 찾기 시작한 지 다시 10여년, 그리고 그 이후 삶이 바뀌고 또다시 20여년이 지났다”고 회고한다. 배우로 한국을 떠나 화가, 작가, 자연치유자, 명상과 요가 지도자로 살아온 40여년 세월을 책에 담은 것이다.

40년 만의 영화 출연, ‘왜 안 돼?’

―5년의 한국 생활은 어땠나요?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었죠. 승화시키는 거죠.”

―이전 책들과 다른 의미가 있을까요?

“이전의 두 권은 하와이 숲속에서 썼고, 이건 도시 안에서 골목 안에서 쓴 거네요.”

―평생의 경험을 집약한 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내 얘기예요.”

―출판사로 소풍 가듯 ‘큰 양푼에 샐러드를 담아 분홍 보자기에 싸 들고 신나게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쓰셨다고요?

“네. 즐거웠어요. 제 이야기가 4차원이라서 붕 뜬대요.(웃음) 편집자가 옆에서 열심히 발목을 잡아 내려줬어요. 소소한 이야기를 넣어달라고 해서 완성이 됐죠.”

―한국을 아주 오래 떠나 있던 분이 한글로 쓴 책이라 더 놀라워요.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못 했을 거예요.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생각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어요. 잘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 그가 말했다. “‘나는 모른다’가 만트라예요.” 매일 되뇐다는 기도, 만트라는 책에도 나온다.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정말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는 모르는 것을 알면 가능성이 열린다고 했다. “내가 바보 같을 수 있음을 마음속 깊이 허락하고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그때 비로소 맑게 미소 지으며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때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책에 있는 문장대로 40여년 만에 다시 하는 연기도 그랬다. 처음엔 제안을 받고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자 ‘왜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최근 힙합 브랜드 패션 광고도 찍었어요.

“말도 안 돼요. 평소 나는 입을 엄두도 못 낼 옷이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지 뭐’ 하는 거죠. 사진 찍기 전에 옷이 소화가 안 돼서 거울 앞에 서서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한참 어색해했어요. 그래도 결국엔 나름대로 소화한 거죠. 근데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요.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재미로 하는 거죠. 살면서 별거 다 해보고, 매일이 새로운 체험이에요. (지금 쉬는) 한 숨이 새로운 숨인데요.”

―직접 만나니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때보다 순한 인상입니다.

“(감독들이) 자꾸 센 역할만 줘요.(웃음) 옆집 아줌마, 순한 아줌마 역할이 안 와요.”

―실제는 그런 얼굴인데요.

“저 완전히 동네 사람이네요.”

―네. 건강한 동네 할머니 같으세요. 오랜만에 가본 촬영장은 어땠나요?

“예전과 완전히 다르죠. 저는 그냥 (촬영장에) 가서 시키는 대로 해요. ‘내가 누군데’ 하면 못 하죠. 내가 연기를 계속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신인 배우들이 저보다 더 잘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시키는 대로 한다니까요. 지금 촬영 현장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30~40대예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이분들은 이런 걸 보는구나 하는 거죠.”

―연기를 잘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그게 잘하고 싶다고 잘해져요? 안 한 지가 언젠데. 스트레스만 받지. 연기를 30년 계속한 사람한테 ‘나도 연기한 사람이야’ 하고 대하는 건 아니죠. 다만 한 번 더 하면 한 번 더 편안해지고, 생각보다 빨리 편안해져요. 매일 뭘 하느냐가 중요하죠.”

―촬영 전에 노력하거나 준비하지는 않으세요?

“준비는 해야죠. 대사만 잘 외워 가면 돼요. 그게 제가 할 일이에요. 그것만 하면 (현장 스태프들이) 다 알아서 해줘요. 어차피 모든 일은 나 혼자 하는 게 없어요. 그런 걸 열어놓으면 알아서 돌아가요. 저도 40년 만에 영화 출연 제의를 받고 망설이다 스스로 ‘와이 낫?’(왜 안 돼?) 했어요. 겁내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조그만 일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놓아두면, 옆 사람들이 다 알아서 돌린단 얘기예요.”

―배우로서 야심은 없나요?

“야심은 어디에도 없어요.”

―더 큰 역할을 하고 싶다든가?

“그래서 어떻게 될 건데요?”

나무로 둘러싸인 야외 테이블 앞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주위를 서성였다. “고양아…” 불러도 도망가지 않자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 보니 여기(카페)에서 돌보는 고양이”라고 알아챘다. 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천가방에서 고양이 밥을 꺼내 주었다. 그 순간 <위대한 일은 없다>에 담긴 간디의 말이 떠올랐다. “어느 한 나라나 사회의 위대함은 그들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정도를 짚어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고양이에 대한 각별한 언급도 있다. “고양이의 특별한 점이라면 ‘지금 이곳’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순간’에 철저하게 깨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지금 여기’에 마음을 두고 ‘행복을 먼저 선택하라’고 당부한다.

―고양이 밥을 가지고 다니시네요.

“네. 비둘기도 주고, 개도 주면 좋아해요.”

―만물의 식량을 가지고 다니는 거네요.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는 건 교만이죠. 모든 고통은 교만에서 나오고요. 모든 존재는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 있고, 모든 것은 의식이 있어요.”

―“나의 날숨이 곧 그들의 들숨이 되고, 또 그들의 날숨이 나의 들숨이 된다”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쓰셨어요.

“나무가 우리보다 오래 사는 선배죠. 나무들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어요. 모든 존재에 숭고함이 있다는 걸 알아야 나도 숭고해지는 거죠. 쟤들이 아무것도 아니면 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걸 알아봄으로써 나도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거죠. 우리는 우주 전체로 보면 아주 짧게 사는 작은 존재에요. 드넓은 우주에서 (별똥별처럼) 후욱 지나가는 존재들인데 이렇게 만났잖아요. 서로 알아보잖아요. 우리는 (연결된) 하나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하는 인사가 ‘나마스테’예요. 너 안의 있는 것을 내가 알아본다, 존경한다. 아름답잖아요.”

“적당히 게으른 것도 잘해요”

‘나·마·스·테!’ <위대한 일은 없다>의 마지막 단어다. 그는 “‘나마스테’는 내가 당신을 본다는 뜻”이라고 했다. 서로 본다는 뜻은 눈을 가진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그는 “두 눈을 가지고 사랑을 표현하는 존재들을 더 이상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갈 수는 없었다”고 썼다. 이런 생각이 든 이후로 몸으로 들이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으려 직접 재료를 고르고 음식을 만든다. 좀처럼 선언을 하지 않지만, 한국의 지인들이 같이 식사할 때면 자꾸 고기를 권해서 “선을 그어줬다”고 한다. “눈이 달린 고기는 먹지 않아요.” 그랬더니 정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꾸만 채소를 집어준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연기가 아니면 잘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저 음식 잘해요. 하루 세끼를 제가 해서 먹어요. 적당히 게으른 것도 잘하고. 아무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하루 종일 잘 놀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차 마시고, 명상하고, 음식 만들고. 그걸로 하루를 돌려요. 나가서 일하고 돌아와 쉬고, 하루가 그렇게 살살 돌아가요. 자가용이 없으니 자주 시장에 가서 손으로 들고 올 만큼 재료를 사요.”

―이런 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불안은 없나요.

“아뇨. 점점 소중하고 아름다워요. 순간순간이 너무나 아름다워요.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없는데요.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없어버리면, 나는 원래 이것보다 더 못해, 그러면 아름다움과 사랑만 남아요.”

<위대한 일은 없다>를 펴낸 문숙 작가가 지난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 숲길을 걷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매사추세츠주 산골 수도원에서 요가 공부를 하던 시절, 식사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계단을 오르다 만난 문구는 책의 제목이 되었다. “위대한 일은 없다. 오직 작은 일들만 있을 뿐이다. 그걸 위대한 사랑으로 하면 된다.”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 곁을 지킨 성인 마더 테레사의 말이다. 위대한 일, 위대한 인생, 위대한 사랑을 찾아 머나먼 땅을 헤매던 그의 앞에 나타난 깨달음이었다. 간절히 무언가를 찾아 다니기를 멈추고, 지금 여기의 순간과 지금 내쉬는 한 숨에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됐다. 그는 “오늘 지질하게 저녁을 뭘 먹을까, 어떤 편한 옷을 입을까, 그런 나의 위대한 모습과 상관없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나를 만든다”며 “내 몸을 잘 사용하는 방법만 알면 일은 자동으로 잘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물론 “내일이 되면 또 지금이고,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은 날들도 있었다.

―“서른대여섯 살쯤, 완패를 당한 기분이었다”고 썼어요.

“당시엔 마음뿐 아니라 몸도 아팠어요. 이렇게 아프기만 하면 뭐 하러 사나 싶었죠. 일부러 명상을 하려고 앉으니 진땀이 나고 더 고통스러웠어요. 무언가 억지로 하려고 애쓰지 말자 싶었고, 그때 사막 한가운데 있는 샌타페이로 이주했어요. 여기엔 삶에서 부대낀 사람들이 많이 모여요. 거기서 요가를 시작했어요.”

―미국으로 간 것도 이만희 감독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감독님이 돌아가시면서 죽음에 관한 체험을 하게 됐어요. 그분이 돌아가셨는데 내가 왜 이렇게 아프고 제정신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 거죠. 진짜 살이 찢어지듯 아팠거든요. 나는 이런데 바깥세상을 보면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차는 잘 다니고, 사람들은 웃고. 내가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라는 감이 온 거죠. 현상세계 너머의 무언가를 처음 감지하고, 찾아 나서게 된 계기가 됐어요.”

―유명인이었는데, 잊힌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봅니다.

“미국에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는 않았어요.”

―미국에선 여러 학교를 다니고 다양한 일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미대를 나왔죠. 요리를 배우는 직업학교를 다녔고요. 치유식도 공부했죠. 일본식 꽃공예도 4년간 이수했어요. 이런 것들이 내 삶에 도움은 되겠다 싶었지만, 이걸로 내가 성공하겠다는 마음은 별로 없어요. 다만 나중에 생각하니, 내가 관심을 가진 것들이 예술이나 손 쓰는 일 같은 줄기로 묶이긴 해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변화가 활기를 불어넣어요. 움직이고 있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지잖아요. 다른 게 들어온다는 게, 흐른다는 게 느껴져야 시원시원하죠. 나라는 물이 맴돈다고 생각하면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요. 나는 엔진을 달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신 돛을 올리고 있어요. 바람이 어디서 불든 내가 조절을 해야 하죠. 변화가 삶이란 생각도 들어요. 끝은 딱 정해져 있잖아요. 죽음. 시간 여행을 한다는 걸 모르면 살면서도 다 놓친다고 생각해요.”

“씩씩한 사람이고 싶어”

그는 사막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처럼 살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99세의 오키프가 아름다웠던 것처럼 나도 99세의 아름다움을 기대한다. 그동안 빛이 만들어낸 피부의 문신들과 바람이 만들어낸 살결의 계곡들이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날을 향해 돛대를 세우고 가면서 놓치지 않을 질문은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도 아닐 때, 그때 나는 누구인가? 다른 누구의 확인이나 격려가 없을 때, 그냥 평범해도 괜찮은 나는 누구인가?” 스무 살 무렵 한국을 떠나 예순 무렵 돌아온 고국에서 가구 하나 집에 들이지 않는 삶을 사는 그는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는, 오롯이 온전한 나를 생각한다.

―선생님의 이미지는 어땠으면 좋겠나요?

“끝까지 씩씩하고 싶어요. 씩씩하단 말이 참 좋아요. 영어로 헤어질 때 ‘테이크 케어’(take care) 하잖아요. 너는 너를 돌보고, 나는 나를 돌봐서 다음번 만날 때도 너를 잘 보고 싶다는 말이잖아요. 다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으니 네가 너를 끝까지 잘 보살피라는 당부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그는 “아후, 떨려 죽겠어”라며 “다섯 번의 겨울이 나를 바꿔놓았다”고 웃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전에 살던 동네인 삼청동의 가게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며 비탈길을 오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몰랐던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다시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 문숙은 오는 26일 저녁 7시30분 서울 합정역 근처 ‘레드빅 스페이스’에서 독자와 만난다.(사전 신청 02-3143-6360)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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