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실장 “조대엽 정도로는 안 되지…. 강경화 아니면 안경환은 그만둬야지.” 지난주 만난 어느 야당 인사의 솔직한 얘기는 최근 벌어지는 인사검증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의 첫 내각에서 장관 몇명은 ‘날려야’ 하고 그중엔 대통령의 핵심 어젠다와 직접 관련된 인사가 꼭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며칠 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가장 먼저 지명을 받은 탓에 살아남았지만, 송영무·김상곤·조대엽 등 야당의 타깃은 아직 줄줄이 남아 있다. 인사청문회가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라는 취지는 빛바랜 지 오래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새 정부의 초기 인사가 순탄하게 이뤄진 적이 언제 있었던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때는 외환위기(IMF) 상황이었음에도 첫 국무총리의 국회 인준에 6개월이나 걸렸다. 이명박 정부에선 장관 후보자 셋이 정권 출범 이틀 만에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한꺼번에 낙마했다. 첫 조각이 새 정부의 야심찬 비상을 상징하는 발판이 아니라, 날개 하나 정도는 부러뜨리고 말겠다는 쟁투의 장이 된 지는 오래다. 더구나 올해는 지방자치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판치는 정치권이라도 이번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갓 출범한 정권을 레임덕에 빠뜨릴 것처럼 달려드는 건 지나치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기준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국무총리 없이 4년을 운영해야 했고 이명박 정부는 아예 첫 조각을 백지화해야 옳았을 것이다. 어느 보수 신문에 실린 ‘안경환보다 조국이 문제다’라는 칼럼 제목은, 야당과 보수 진영이 겨냥하는 궁극적 목표가 어디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전 검증을 지휘한 사람으로서, 안경환 후보자의 결정적 흠결을 발견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조 수석의 책임은 ‘안경환 검증 부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사 때마다 뒤늦게 드러난 문제로 고위 공직 후보자가 낙마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직전 박근혜 정부는 첫 인사에서 국무총리와 헌법재판소장, 장관 3명이 날아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낙마한 장관급 이상 공직자만 20명을 넘는다. 그래도 ‘검증 부실’을 이유로 물러난 청와대 인사는 없고, 그걸 요구했던 야당도 이전엔 없었다. 초기에 세명의 장관이 동시에 낙마하자 이명박 청와대는 “노무현 청와대가 보유했던 인사파일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었고 제한된 인력으로 검증하다 보니 어려움이 컸다”고 해명했다. 전직 대통령은 구속된 상황에서 인수인계 기간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청와대는 어땠을까 싶다. 인사란 그런 것이다. 고위 공직 후보자가 낙마할 때마다 검증 책임자가 물러나야 한다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남아날 검증팀은 없을 것이다. 야당도 이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조 수석을 국회로 불러내고 사퇴를 요구하는 건, 단지 정치적 이유에서다. 조국 수석이 검찰개혁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개혁의 상징’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조 수석을 끌어내리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그날로 물 건너갈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인선 자체가 야당 공세를 부른 측면도 물론 있다. 검찰개혁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주도해야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조국 수석이 검찰개혁의 키를 쥘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이런 우려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명실공히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민정수석은 뒤에서 도와주는 게 바람직하다. 어쩌면 한둘 또는 그 이상의 공직 후보자가 앞으로 더 낙마할지 모른다. 정권 초기에 공직 후보자 여럿 날아가지 않고 출범한 정권은 한국에도 미국에도 없다. 안경환 사퇴는 현 정권에 뼈아픈 일이지만, 크게 보면 감수하고 지나가야 할 과정이다.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야당은 첫 내각에 깊은 상처를 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과 정부의 첫걸음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인사 검증은 날카로워야겠지만, 벌써부터 정권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겠다고 나서는 건 곤란하다. pcs@hani.co.kr
칼럼 |
[박찬수 칼럼] 조국이라는 표적 |
논설위원실장 “조대엽 정도로는 안 되지…. 강경화 아니면 안경환은 그만둬야지.” 지난주 만난 어느 야당 인사의 솔직한 얘기는 최근 벌어지는 인사검증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의 첫 내각에서 장관 몇명은 ‘날려야’ 하고 그중엔 대통령의 핵심 어젠다와 직접 관련된 인사가 꼭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며칠 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가장 먼저 지명을 받은 탓에 살아남았지만, 송영무·김상곤·조대엽 등 야당의 타깃은 아직 줄줄이 남아 있다. 인사청문회가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라는 취지는 빛바랜 지 오래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새 정부의 초기 인사가 순탄하게 이뤄진 적이 언제 있었던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때는 외환위기(IMF) 상황이었음에도 첫 국무총리의 국회 인준에 6개월이나 걸렸다. 이명박 정부에선 장관 후보자 셋이 정권 출범 이틀 만에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한꺼번에 낙마했다. 첫 조각이 새 정부의 야심찬 비상을 상징하는 발판이 아니라, 날개 하나 정도는 부러뜨리고 말겠다는 쟁투의 장이 된 지는 오래다. 더구나 올해는 지방자치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판치는 정치권이라도 이번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갓 출범한 정권을 레임덕에 빠뜨릴 것처럼 달려드는 건 지나치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기준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국무총리 없이 4년을 운영해야 했고 이명박 정부는 아예 첫 조각을 백지화해야 옳았을 것이다. 어느 보수 신문에 실린 ‘안경환보다 조국이 문제다’라는 칼럼 제목은, 야당과 보수 진영이 겨냥하는 궁극적 목표가 어디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전 검증을 지휘한 사람으로서, 안경환 후보자의 결정적 흠결을 발견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조 수석의 책임은 ‘안경환 검증 부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사 때마다 뒤늦게 드러난 문제로 고위 공직 후보자가 낙마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직전 박근혜 정부는 첫 인사에서 국무총리와 헌법재판소장, 장관 3명이 날아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낙마한 장관급 이상 공직자만 20명을 넘는다. 그래도 ‘검증 부실’을 이유로 물러난 청와대 인사는 없고, 그걸 요구했던 야당도 이전엔 없었다. 초기에 세명의 장관이 동시에 낙마하자 이명박 청와대는 “노무현 청와대가 보유했던 인사파일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었고 제한된 인력으로 검증하다 보니 어려움이 컸다”고 해명했다. 전직 대통령은 구속된 상황에서 인수인계 기간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청와대는 어땠을까 싶다. 인사란 그런 것이다. 고위 공직 후보자가 낙마할 때마다 검증 책임자가 물러나야 한다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남아날 검증팀은 없을 것이다. 야당도 이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조 수석을 국회로 불러내고 사퇴를 요구하는 건, 단지 정치적 이유에서다. 조국 수석이 검찰개혁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개혁의 상징’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조 수석을 끌어내리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그날로 물 건너갈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인선 자체가 야당 공세를 부른 측면도 물론 있다. 검찰개혁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주도해야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조국 수석이 검찰개혁의 키를 쥘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이런 우려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명실공히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민정수석은 뒤에서 도와주는 게 바람직하다. 어쩌면 한둘 또는 그 이상의 공직 후보자가 앞으로 더 낙마할지 모른다. 정권 초기에 공직 후보자 여럿 날아가지 않고 출범한 정권은 한국에도 미국에도 없다. 안경환 사퇴는 현 정권에 뼈아픈 일이지만, 크게 보면 감수하고 지나가야 할 과정이다.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야당은 첫 내각에 깊은 상처를 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과 정부의 첫걸음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인사 검증은 날카로워야겠지만, 벌써부터 정권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겠다고 나서는 건 곤란하다. pcs@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