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02 17:28
수정 : 2017.08.03 11:37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북한이 두번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한 직후인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우리는 잘 다룰 능력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없다. 언제나 그랬다. 대선 때 그는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을 방치했다. 나는 집권하면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에 대한 비판은 옳지만, 역시 ‘어떻게’가 빠져 있다. <뉴욕 타임스>는 이걸 ‘허세’(bluster)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제라도 ‘허세’를 걷어내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1992년 수교 이후 한-중 관계의 진전,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급속한 발전은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한국 편을 들거나 최소한 중립을 지켜줄 것이란 생각을 심어줬다. 2015년 중국 전승절에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천안문 성루에 올라 열병식을 참관한 건 그런 인식의 상징과 같았다. 미국 역시 동북아 한켠의 ‘불량국가’(rogue state) 북한을 중국이 굳이 감싸진 않을 거라고 봤다. 그러나 북한의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미사일’ 보유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중국은 미국과 한국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졌다. 중국이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세계 2강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참모들은 지난 4월 마러라고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제안했던 ‘북한 핵·미사일과 한-미 군사훈련의 동시 동결’ 카드를 받지 않은 걸 지금 후회할는지 모른다. 훈련 중단 또는 축소를 ‘굴복’이라 생각했을지 모르나, 그게 작동만 한다면 훨씬 생산적인 해법일 수 있었다는 게 이젠 명백해졌다.
다른 방식으로 ‘환상’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강경파들은 북한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군사적 ‘정밀 타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중 접경지역에 흩어진 표적에 대한 타격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군사행동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국은 북한군을 압록강까지 몰아붙여도 내전에 찌든 마오쩌둥이 개입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미-중 패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다. 중국이 가만있으리라 보는 건 안이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 북핵 해결에 중국을 활용하려면 그만큼의 양보를 감수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양보는 한국에 배치한 사드의 철수다. 사드는 북한 핵이나 장거리미사일엔 효용이 없다. 주한미군 보호용이다. 미국 본토까지 오는 핵미사일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면,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보호용 요격시스템 하나를 포기하는 건 협상으로선 나쁘지 않은 결과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미 본토 코앞의 소련제 핵미사일을 제거하기 위해, 유럽을 방어하려 터키에 설치했던 미군의 핵미사일을 철수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와 보수 진영에서 제기하는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는 해법이 되기 어렵다. ‘정권 교체’는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성립한다. 북한에 김정은보다 이성적인 정권을 세움으로써 무분별한 핵 사용의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뜻이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성으로만 따지면, 김정은보다 트럼프가 한 수 위일지 모른다. 미 국방부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 지휘부와 상의 없이 트렌스젠더의 군 복무를 전격 금지시킨 것처럼, “갑자기 북한 공격지시를 내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버즈피드’를 인용해 보도했다.
‘정권 교체’라는 살벌한 말 뒤로, 미국은 그토록 꺼려온 ‘북핵 용인’이란 금지선을 슬그머니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어떻게’는 보이질 않는다. 북핵을 인정하겠다는 생각까지 한다면, 지금 당장 북한과 핵 동결 및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상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에 ‘허세’를 버리라고 설득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은 이런 데서 발휘되어야 한다. 북-미 협상 외엔 다른 길이 없고, 이것은 ‘코리아 패싱’이 아니라고 우리가 말해야 한다. 사드를 철회하는 게 중국을 끌어들여 북핵 해결에 도움을 주리란 걸 이해시켜야 한다.
협상은 굴복이 아니다. 북한의 무모함을 용인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를 폭격하거나 침공하자는 군부의 강경론을 끝내 거부했다. 카스트로 정권을 누구보다 미워한 건 케네디 자신이었다. 케네디는 재임 내내 쿠바의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하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결정적 위기의 순간, 그는 소련과의 핵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를 쿠바 침공 대신에 협상과 양보를 택했다. 그게 미국민과 전세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봤다. 담대한 협상과 양보의 용기, 북핵 문제에서도 이런 리더십이 필요하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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