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실장 대통령이란 자리가 감내해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를 ‘대통령 수칙’을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무렵 김대중 대통령에게 가해진 숱한 정치적 음해와 비난에, 인간으로서 흔들리는 감정의 숨결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 시절 주요 회의 때마다 들고 다니던 국정노트 71쪽엔 ‘대통령 수칙’이 적혀 있다. 언제 무슨 계기로 그걸 직접 썼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기 또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던 1998~99년 무렵에 적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몹시 어렵던 시기에 대통령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한 일종의 ‘자경문’(自警文)인 것처럼 보인다. 처음엔 ‘대통령 수칙’이라 이름 붙였다가 ‘대통령’이란 단어가 좀 걸렸는지 펜으로 죽죽 지우고 그냥 ‘수칙’이란 제목으로 15개 항을 적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감내해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를 ‘대통령 수칙’을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무렵 김대중 대통령에게 가해진 숱한 정치적 음해와 비난에, 인간으로서 흔들리는 감정의 숨결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첫째 항목은 이렇다. ‘1. 사랑과 관용, 그러나 법과 질서 엄수해야.’ 이런 내용도 있다. ‘6. 불행한 일도 감수해야. 다만 최선 다하도록. … 8. 국회와 야당의 비판 경청. 그러나 정부 짓밟는 것 용서 말아야. … 10. 언론의 보도를 중시하되 부당한 비판 앞에 소신 바꾸지 말아야.’ 정치적 반대편의 비판과 공격을 관용하고 경청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서운함과 분노의 한자락을 행간에서 느낄 수 있다. ‘대구경북엔 추석이 없다’는 식으로 지역갈등과 경제위기론을 부추기던 보수언론, 그리고 야당의 무자비한 막말 공격에 직면했던 대통령의 인간적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김대중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을 지낸 박선숙 국회의원은 “대통령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버리겠다는 야당 국회의원 발언에 대통령은 몹시 상심했다”고 그때 분위기를 전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정노트에 작성한 ‘수칙’ 15개 항. 처음에 ‘대통령 수칙’이라 이름 붙였다가 지우고 그냥 ‘수칙’이란 제목을 달았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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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수칙 15개 항>
1. 사랑과 관용, 그러나 법과 질서를 엄수해야
2. 인사정책이 성공의 길이다. 아첨한 자와 무능한 자를 배제
3. 규칙적인 생활, 적당한 운동, 충분한 휴식으로 건강을 유지
4. 현안 파악을 충분히 하고 관련 정보를 숙지해야
5. 대통령부터 국법 준수의 모범을 보여야
6. 불행한 일도 감수해야 한다. 다만 최선을 다하도록
7. 국민의 애국심과 양심을 믿어야 한다. 이해 안될 때는 설명방식을 재고해야
8. 국회와 야당의 비판을 경청하자. 그러나 정부 짓밟는 것 용서하지 말아야
9. 청와대 이외의 일반 시민과의 접촉에 힘써야
10. 언론의 보도를 중시하되 부당한 비판 앞에 소신을 바꾸지 말아야
11. 정신적 건강과 건전한 판단력을 견지해야
12. 양서를 매일 읽고 명상으로 사상과 정책을 심화해야
13. 21세기에의 대비를 하자.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명심해야
14. 적극적인 사고와 성공의 상(像)을 마음에 간직
15. 나는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같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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