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8 17:12
수정 : 2019.05.0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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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4월30일 새벽 국회 정개특위 회의실 앞에서 ‘헌법 수호, 좌파독재 반대’란 손팻말을 들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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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반동’(reactionary)과 함께 ‘보수’(conservative)란 단어를 정치사에 남겼다. 혁명의 긍정적 요소를 계승하자는 쪽을 ‘보수’라 하고, 혁명 이전으로 모든 걸 되돌려 부르봉 왕가까지 복귀시키자는 걸 ‘반동’이라고 했다. 지금 자유한국당엔 후자의 길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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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4월30일 새벽 국회 정개특위 회의실 앞에서 ‘헌법 수호, 좌파독재 반대’란 손팻말을 들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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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운동엔 반동이 따른다. 자유·평등·인권이라는 프랑스혁명 가치를 무력화하려 한 1794년 테르미도르 쿠데타는 ‘반동’의 정치적 의미를 분명하게 역사에 각인했다. 최근 국회 패스트트랙 사태와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 모습을 보면, 2016년 겨울의 ‘촛불 운동’ 성과를 그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전면화하는 징후가 뚜렷해 보인다.
수개월 동안의 도심 광장 촛불을 ‘혁명’이라 하든 또는 ‘운동’이라 부르든, 수백만 시민의 싸움의 지향은 비교적 명확했다. 헌법을 위반하고 국민을 배신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불법·탈법 행위에 의존했던 보수 정권 9년의 국정운영 행태를 완전히 탈바꿈하자는 게 다수 국민이 동의한 최소한의 요구였다. 촛불의 힘에 이끌려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고,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파면을 최종 결정했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의 상당수 국회의원이 국민 편에 서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렇게 2017년 5월 대선에서 1340만표의 지지를 받은 새로운 정권이 출범했다.
꼭 2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대선 득표율 41%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한때 85%까지 밀어 올린 건,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었다. 지금 회귀의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는 건, 정부가 그런 국민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하지 못하고 빌미를 준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촛불의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는 반동의 기운을 용납할 수는 없다.
박근혜 탄핵에 동조했던 나경원, 유승민 의원 등은 이번엔 ‘개혁입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으려는 전선의 가장 앞자리에 섰다. 물론 이들이 외친 게 ‘박근혜 석방’ 구호는 아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을 둘러싼 난장판 국회의 밑바닥엔, ‘박근혜 탄핵’ 이전으로의 회귀를 위한 치열한 공방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탄핵 시기 박근혜를 외면했다’는 눈총을 받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공공연히 ‘박근혜 석방’을 주장하고, ‘배박’(박근혜 배신)의 선두에 섰던 김무성 의원은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를 폭파하자’고 선동한다. 훨씬 많은 의원들이 탄핵 시기의 행동을 ‘반성’하고 현 정권을 “박근혜 때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게 지금 자유한국당 모습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현 정권을 ‘독재’와 ‘국가농단 세력’으로 몰아가야, 박근혜 탄핵 이전으로 시계를 되돌릴 명분이 살아나는 탓이다.
반동의 기운은 국회 밖에도 넘쳐난다. 생존권 투쟁엔 ‘폭력’ 딱지를 손쉽게 붙이는 보수 언론은 야당의 ‘불법과 폭력’엔 관대하기 짝이 없다. 서울 도심의 태극기 집회는 오랫동안 참가자가 3천~4천명 수준이었다가 어느새 1만여명으로 불어났다. 이제 자유한국당엔 박근혜의 실패를 뛰어넘어 ‘새로운 보수’의 모습을 보이는 게 목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박근혜 세력과 다시 한 몸이 될 수 있을까, 탄핵 이전으로 무리 없이 복귀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장 큰 관심사가 됐다.
역사를 돌아보면, ‘반동’의 형태는 대개 급진적이고 파괴적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자유한국당이나 보수 언론에서 거론하는 말들을 보면, 온건하고 신중한 전통 보수의 모습을 찾기란 어렵다. ‘독재 타도’나 ‘좌파 장기독재’는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다. ‘북한 지령을 받는 세력’ ‘종북좌파’란 낙인에, 장외 집회에선 ‘빨갱이’라는 외침까지 거침없이 나온다.
“현 정권이 우리를 ‘적폐 세력’으로 모는 거나, 그들을 ‘빨갱이’라 부르는 거나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적폐’와 ‘빨갱이’는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단어가 아니다. ‘적폐’는 상대방한테 모멸감을 주고 어쩌면 사법적 논란의 여지를 남기지만, ‘빨갱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목숨이 걸린 낙인이었다. 과거 수많은 사람이 ‘빨갱이’란 올가미에 걸려 목숨을 잃거나 평생 사회에서 배제됐다. ‘종북좌파’란 표현도 ‘빨갱이’보다는 덜하지만, 낙인의 효과는 치명적이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반동’(reactionary)과 함께 ‘보수’(conservative)란 단어를 정치사에 남겼다. 왕정 복귀에 반대하고 혁명의 긍정적 요소를 계승하자는 쪽을 ‘보수’라 하고, 혁명 이전으로 모든 걸 되돌려 부르봉 왕가까지 복귀시키자는 걸 ‘반동’이라고 했다. 지금 자유한국당엔 후자의 길만 보인다. 모든 걸 탄핵 이전으로 되돌리고 ‘박근혜 유산’까지 되살리자고 한다. ‘보수 세력의 총결집’은 그걸 가리기 위한 구호일 뿐이다. 바야흐로 ‘반동의 시기’가 왔다.
박찬수 논설위원실장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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