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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9 17:56 수정 : 2019.06.19 19:13

국민의 정치 불신을 부추겨 세력을 확장하는 건 전형적인 포퓰리즘 방식이다. 현 정부의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만, 실상 대중의 거친 욕망을 자극해 정치에 활용하는 행동이 훨씬 더 포퓰리즘적이란 건 깨닫지 못한다. 자유한국당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게 단적인 예다.

국회 여는 걸 한사코 거부하는 자유한국당의 모습은 조금 낯설다. 과거 정치사를 돌아보면 국회 밖으로 뛰쳐나가는 쪽은 대개 야당이지만, 그래도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한국당의 ‘선조’들은 여론이 불리하다 싶으면 어렵지 않게 국회로 돌아오곤 했다. 제도의 틀 안이 익숙한 이들에게 국회 밖에서의 싸움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1998년 사상 첫 정권교체 이후, 야당으로 바뀐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에서 강경 투쟁을 이끈 이들이 모두 운동권 출신이거나 반독재 투쟁 경험이 있는 민주계였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지금은 다르다.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요구한 황교안 대표는 청와대에서 ‘5당 대표회담 뒤 일대일 회담’을 제안했는데도 거부해버렸다. 여야 협상이 무르익을 때마다 툭툭 강성 발언을 던지는 황 대표 태도로 보면, 원외에 있는 그에겐 국회 열리는 게 큰 의미가 없는 듯싶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전사’로 거듭난 것처럼 보인다. 기회만 있으면 현 정권을 ‘좌파독재’라 공격한다. “독재의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분석까지 곁들인다. 진보 정부에 ‘좌파’ 딱지를 붙이는 건 늘 봐오던 것이니 그렇다 쳐도, 여기에 ‘독재’라는 단어까지 덧붙인 건 당황스럽다. 시민 수백 명을 학살하고 집권한 정권, 언론을 통폐합하고 ‘보도지침’으로 통제했던 바로 그 독재정권이 만든 당의 후예들이 현 상황을 ‘독재’라 부르는 건 기묘한 일이다. 부석침목(浮石沈木)의 상황이 이런 것일까.

그런 걸 보면, 자유한국당은 국회에 들어가 추경이나 민생·경제 법안을 놓고 싸우는 것보다 국회 밖에서 싸우는 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 안 하는 국회·국회의원을 바라보는 국민 눈초리는 따갑다. 하지만 국회 불신, 정치 불신을 키우는 게 자유한국당에 꼭 불리하지만은 않다. 17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31%까지 오른 건, 대책 없는 강경 투쟁이라도 지지층 결집엔 효과가 있다는 방증일 터이다. 같은 조사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41%였다. 작지는 않지만 생물인 정치판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격차는 아니다.

국회 파행의 책임은 1차로 자유한국당이 져야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정책 부진의 책임은 정부여당 몫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론 정치권 전체를 향한 국회 무용론, 정치 불신이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내년 4월 총선은 누가 지지층 결집을 잘하느냐에서 승패가 갈릴 것이다.

변수는 있다. 홍문종 의원 탈당에서 보듯, ‘박근혜 신당’의 출현이다. 자유한국당 안팎에선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신당 이름을 ‘공화당’으로 하라고 했다’거나 ‘현 정부가 연말에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 신당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소문이 그럴듯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박근혜 신당’의 출현은 자유한국당에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꼭 불리하게만 작용할지 현시점에서 단정하긴 어렵다. 보수표 분산으로 접전지역에서 패배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자유한국당이 ‘박근혜당’이란 족쇄에서 어느 정도 탈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여론의 비판에도 국회를 보이콧하고 꿋꿋이 버티는 데엔 이런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한다’고 공격하면서, 스스로는 국회를 외면해서 오히려 정치적 이익을 꾀하는 네거티브 정치공학이다.

국민의 정치 불신을 부추겨 세력을 확장하는 건 전형적인 포퓰리즘 방식이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등을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만, 실상 대중의 거친 욕망을 자극해 정치에 활용하는 행동이 훨씬 더 포퓰리즘적이란 건 깨닫지 못한다. 최근 들어 자유한국당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게 단적인 사례다. ‘빨갱이’는 단순한 모욕의 언사가 아니다. ‘수구꼴통’이란 표현과는 차원이 다른, 우리 현대사에서 ‘목숨이 걸린’ 섬뜩한 낙인이었다. 그런데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보다 더욱 손쉽고 고민 없이 요즘 정치인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극단적인 적대감의 대상을 설정하고 대중의 분노를 모으는 건 유럽의 파시스트 정당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자유한국당 주류가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수천, 수만 명의 극우 시위대가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 출현하는 분위기가 자유한국당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국회에 무관심한 태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pcs@hani.co.kr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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