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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4 10:51 수정 : 2019.12.05 02:37

인사가 정치적 고려만으로, 국회와 정당 사정에 귀 기울이는 식으로 이뤄지면, 국민은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젊은층 요구에 응답한 ‘세대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야당이 주장하는 ‘국민 통합’이라 하기도 어렵고, ‘경제 전문가’란 자평은 과거 경제부총리 시절의 공과를 통해 이미 다 드러난 마당에 ‘김진표 총리’ 카드는 어떤 감동도 메시지도 주기 힘들다.

김진표 국회의원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5월, 노무현 정부의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오마이뉴스> 주최 ‘네티즌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이 대화에서 대학 등록금 문제에 관한 질문에 김 부총리는 “국립대도 서서히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재정이 넉넉하면 국립대 등록금 인상을 안 해도 되지만 그러면 국민 세금이 올라가지 않겠는가”라고 답변했다. 국민 세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는 건 잘못이다, 그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라는 시각이다. 요즘은 웬만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도 그런 주장을 펴진 않는다.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니까, 지금은 생각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2017년 9월 김진표 의원은 <제정임의 문답쇼>에 출연했다.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정치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 젊은 나이에 정치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뛰어드는 건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 정 하고 싶으면, 자기 분야에서 업적을 쌓고 성공하고 인정받은 후에 그걸 발판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란 각 분야에서 성공한 50~60대가 해야 잘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70대인 김 의원이 보기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정치하면 ‘봉사’고, 젊어서 정치하면 ‘치부’라는 인식의 밑바닥엔 청년들에 대한 무시와 폄하가 깔려 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전형적 ‘꼰대 의식’이다.

정말 의아스러운 건, 그런 인사를 국무총리로 발탁하는 게 조국 법무부 장관 파동으로 젊은층의 상실감이 크고 ‘공정과 정의’의 열망이 폭발하는 시점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여당은 내년 봄 총선에서 20, 30대 젊은층을 전략지역에 최우선 공천하겠다고 법석이다. 그런데 정작 국무총리엔 ‘젊은 사고’와는 담을 쌓은 듯한 노정치인을 기용하는 걸 국민은 어떻게 바라볼까. 인사는 단순히 사람 하나 바꾸는 게 아니다. 그걸 통해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가 더욱 중요하다. 특히 국무총리는 더욱 그렇다.

왜 굳이 김진표 의원을 국무총리로 기용하려 할까.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은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는 두 갈래로 대통령 인사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우선, 좋은 외부 인사를 찾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고위 공직에 나서는 사람은 이제 인사청문회에서 망신을 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칫하면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한다. 정치인 말고 누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할까. 또한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고위 공직 임명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됐다. 김진표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일 뿐 아니라, 보수 색채로 인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거부감이 적다. 총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을 듯싶다. 당내 중진이 입각하면 그 자리를 참신한 인사로 채울 수 있으니까 ‘총선 물갈이’ 효과가 커지게 된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 신선하고 의미 있는 인사로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그런 인사를 통해서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촛불 민심’을 이어받아 변화와 개혁의 길로 가리라 기대했다. ‘개혁’을 지향한다고 꼭 ‘보수적인’ 사람을 기용해선 안 된다는 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초기 통일부 장관에 중앙정보부 출신의 강인덕씨를 앉혔다. 보수 진영을 설득하면서 대북 화해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인 ‘김진표 총리’로 보수 진영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착각이다. 정말 ‘통합’을 메시지로 내세우려면 아예 중도 또는 보수 쪽에서 좋은 인사를 발탁하는 게 훨씬 낫다. ‘김진표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반대를 최소화하고 여당의 ‘총선 물갈이’에 도움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인사가 그렇게 정치적 고려만으로, 국회와 정당 사정에 귀 기울이는 식으로 이뤄지면, 국민은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젊은층 요구에 응답한 ‘세대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야당이 주장하는 ‘국민 통합’이라 하기도 어렵고, ‘경제 전문가’란 자평은 과거 경제부총리 시절의 공과를 통해 이미 다 드러난 마당에 ‘김진표 총리’ 카드는 어떤 감동도 메시지도 주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가 남은 2년반 동안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 가려는지 알기 어렵고, 오히려 잘못된 신호를 줄 가능성이 높다.

‘조국 사태’ 이후 좋은 사람 찾기가 훨씬 어려워진 건 맞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지금처럼 가면,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인사 공방은 훨씬 격해질 거란 예상도 틀리지 않다.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좋은 사람을 찾고 설득하면, 국민에게 희망을 줄 만한 국무총리 한 사람 구하지 못하겠는가.

박찬수 ㅣ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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