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5 04:59
수정 : 2019.03.15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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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1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자유한국당 경상남도당에서 4·3 보궐선거 통영·고성 지역구 출마가 확정된 정점식 후보(오른쪽 두번째) 등에게 공천장을 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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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의 법조외전(52)
‘적폐’ 낙인 검찰출신 인사들 하나둘 정치권 진출 시점에
검찰은 ‘환경부 리스트’ 수사하며 과거와 다른 결기 보여
“환경부와 청와대 일부 인사들의 ‘자업자득’ 성격 사건”
비리·수사로 휘청인 DJ·박 정부 전철 밟나 비상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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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1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자유한국당 경상남도당에서 4·3 보궐선거 통영·고성 지역구 출마가 확정된 정점식 후보(오른쪽 두번째) 등에게 공천장을 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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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점식이 됐던데?” “야~ 한 달 전만 해도 여론조사 꼴찌라고 했는데, 대역전극이네. 대단해~!”
몇몇 검찰 관계자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11일 뉴스를 보고서다. 이날 경남 통영·고성 지역구 4·3 재보궐 선거에 나설 자유한국당 후보로 정점식(53·사법연수원 20기) 변호사가 뽑혔다. 보수 정당이 압도적 우위를 점해온 지역구 특성을 살피면 그는 금배지에 바싹 다가선 셈이다. 정점식이 누구길래 이런 반응이 나올까.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17년 6월8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 째 되는 날 법무부가 갑자기 보도자료를 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던 검사들을 일선 검사장, 대검 부서장 등 수사 지휘 보직에서 연구 보직 또는 비지휘 보직으로 전보하는 인사를 단행함.” 별첨 명단에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정점식(현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들어 있었다.
‘적폐 검사’로 낙인 찍힌 그는 사직을 선택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수사에 여러 차례 참여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송두율 교수 사건과 통진당 해산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퇴임사에서 그는 자신의 ‘주홍글씨’가 된 두 사건을 콕 찍어 언급했다. ‘나 이런 사건 했다고 찍혀서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달 뒤면 그는 여의도에서 국회의원 선서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법무부가 발표한 명단 맨 위에는 윤갑근(54·연수원 19기)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윤갑근(현 대구고검 검사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황제 소환’ 당시 특별수사팀장이던 그도 정점식과 함께 법무연수원 기획위원으로 좌천되자 사표를 던졌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이 진정으로 검찰 개혁을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 길지 않은 퇴임사에 ‘가시’가 삐죽했다.
그도 여의도행 티켓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5일엔 충북 청주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고, 21일엔 한국청소년충북연맹 제12대 총장에 취임했다. 이런 소식을 전한 지역 신문의 제목이 “고검장 역임한 윤갑근 변호사 뜻깊은 환향(還鄕)” “윤갑근 전 고검장 정치 행보 시동”이다. 기사엔 내년 총선에 청주청원 지역구 출마가 유력하다고 나와 있다.
검찰에선 이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두 사람을 꼽는다. 먼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점식과 윤갑근이 우병우 사단의 일원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정점식 전 검사장은 우 전 수석과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래서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된다.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이기도 하고, 부부 동반으로 식사도 자주 하는 사이다. 우 수석 시절 정 검사장이 대검 공안부장을 2년 내리 했다. 그때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이 주요 포스트를 전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검의 ‘빅2’인 공안부장과 반부패부장이 정점식과, (우 전 수석의) 연수원 동기인 윤갑근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의 인지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 국회 관할인 서울남부지검장에는 (우 전 수석의) 법대 84 동기인 최윤수와 김진모가 배치됐었다.”(검찰 관계자 ㄱ)
또 한 사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있다. 우병우가 이들의 ‘과거’라면, 황교안은 두 사람의 ‘현재’ 또는 ‘미래’다. 정점식과 황교안은 “가장 공안스러운 공안 검사”이고, “정점식은 황교안의 페르소나(영화에서 감독의 분신과 같은 인물)나 다름없다.”(검찰 관계자)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법무부 ‘위헌 정당·단체 관련 대책 테스크포스’ 팀장이 정점식, 당시 법무부 장관이 황교안이었다. 황 대표는 11일 정점식에게 공천장을 주며 “통진당 해산을 이끈 능력 있는 일꾼”이라고 치켜세웠다. 황교안과 윤갑근은 성균관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성대 법대 인맥은 검찰 안에서 소수다. 그만큼 끈끈하다.
황교안이 당 대표가 된 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으로 지지율 30%를 넘겼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적폐로 몰렸던 사람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 만 2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황교안이 제1야당 대표가 됐고, 그와 더없이 가까운 정점식은 거의 떼어놓은 당상을 차지했다. 윤갑근도, 청주고 동문들 얘기로는,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이 99%다. 지금 여야 구도를 보면 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하더라. 이런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이 정부에 동의하지 못하는 검사들이 쳐다볼 그 ‘무엇’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검찰) 후배들 만나 들어 보면, ‘지금까지 2년 동안 하는 걸 보니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며 문재인 정부에 회의적인 검사들이 늘고 있다.”(검찰 고위직을 지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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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지난 1월21일 오전 서울 언론인회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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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검찰 내부에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구체적 사건에서도 감지된다. 서울동부지검의 ‘환경부 리스트’-야당이나 정부 비판적 언론은 ‘블랙리스트’라 하고, 청와대는 ‘체크 리스트’라고 하는-의혹 사건은 바깥 못지 않게 검찰 내부에서도 초미의 관심 대상이다. 수사가 환경부 담장을 넘어 청와대까지 뻗어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면서다.
“동부지검이 변했다”는 말도 나온다. 앞서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주진우)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송인배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했다. ‘환경부 리스트’ 수사도 그 진용 그대로다. 송 전 비서관은 수수 액수가 2억9천만원으로 큰데도 영장 청구 없이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안에서 “여느 사건과 형평이 안 맞는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속도와 방향, 강도가 달라졌다.
● “송인배 사건 이첩이 언제냐. 작년 8월 드루킹 특검 끝나면서다. 특검이 계좌추적까지 다 해서 넘긴 걸 올해 1월에야 기소했다, 그것도 불구속으로. 수수 액수가 2억9천인데 구속영장 청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검찰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 야당 정치인이면 어땠을까, 살아 있는 권력이라서 그러는 것 아니냐. 그 사건을 담당한 게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 지금 환경부 리스트 수사하는 거기다. 물론 수사팀 뜻대로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수사에 결기가 보인다.”(검찰 관계자 ㄴ)
● “사건 내용이야 기록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지만, 단연 화제는 동부지검 수사다. 동부지검과 대검 반부패부가 (리스트 작성 지시자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의 적용 여부를 놓고 회의까지 했다고 알려지면서 대검이 일선(수사팀)을 너무 누르는 것 아니냐, 그게 정당한 거냐, 이러다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댓글 사건’처럼 대형 사고로 번지는 것 아니냐 이런 얘기들을 검사들끼리 밥 먹으면서 한다. 개중엔 전 정권 인사들을 직권남용으로 대거 처벌한 사례를 거론하면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얘기를 하는 검사도 있다.”(검찰 관계자 ㄷ)
지난달 26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검찰총장실 ‘방문 혹은 점거’ 뒤엔 소문까지 가세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일부 출입기자들과 만나 ‘서울동부지검이 통제가 안 된다’”고 했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에는 그사이 살이 많이 붙었다. 청와대는 나 원내대표의 말이 “사실무근 가짜뉴스”라며 펄쩍 뛰었지만, 검찰 안에서는 다른 말이 돈다. 조 수석이 서울동부지검의 ‘리스트’ 사건 주임검사를 ‘통제가 안 되는 우병우 키드’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또 그가 최소한 올해 9월까지는 민정수석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풍문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이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 파견 근무를 했고, <조선일보> 출신인 자유한국당 최병렬 상임고문의 사위라는 점 때문에 청와대가 이번 수사에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조 수석이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싶다. 주진우 부장이 과거 우병우 전 민정수석 밑에서 수사를 배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색은 없는 사람이다. 동기들도 그렇게 말한다. 주 부장이 여태 사건을 하면서 그런 오해를 살만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오히려 진득하고 집요하게, 수사 잘하는 검사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오니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 밑에서 일 배웠다고 곧바로 ‘누구 키드’ 운운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조국 민정수석이 9월까지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말도 인사와 연관 지어 민감하게 돌아다니는 건 사실이다. 7월이면 새 검찰총장이 취임하고, 곧이어 고검장·검사장 인사가 연쇄적으로 있게 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지금 민정수석이 ‘다음번 총장, 검사장 인사는 내가 관여하니까 환경부 수사 잘 알아서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연수원 21기인 한찬식 검사장은 마침 다음번 고검장 승진을 바라볼 차례라 더욱 공교롭다.”(검찰 관계자 ㄱ)
진실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가려줄 것이다. 다만, 안팎의 상황이 맞물리며 동부지검 수사는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수사에 대해 잘 아는 핵심 관계자는 “환경부와 청와대 일부 인사의 ‘자업자득’ 측면이 강한 사건”이라고 했다. “리스트 실무 작업을 했던 인물이 중간에 밀려났다. 시쳇말로 ‘팽’당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겠나. 당시 환경부 고위층이 일 처리를 이상하게 했다. 이 사건은 김태우 사건의 연장선에 있다. 비에치이(BH·청와대)가 김태우 사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일을 계속 키웠다. 수사가 어디까지 갈지는 우리도 잘 모른다.”
또다시 ‘집권 3년 차 징크스’가 반복되는 것일까. 5년 임기의 절반이 지나 꺾어지는 해에 역대 정권은 권력형 비리 의혹과 검찰 수사로 국정 동력과 권위에 심한 손상을 입었다. 김대중 정부는 ‘정현준·진승현 게이트’로 휘청거렸고,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 문건 사건에서 촉발된 ‘비선실세’ 파동을 겪으며 크게 흔들렸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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