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로 세계가 후끈 달아오르는 요즈음, 우리의 관심 밖으로 멀어진 많은 문제 속에 유기견 문제도 숨어 있다. 성공적인 월드컵을 개최하고, 깨끗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미명 아래 러시아가 독극물로 떠돌이개들을 소위 ‘청소’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지난 5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러시아가 떠돌이개의 수를 통제하기 위해 맺는 민간기업과의 계약 입찰이 예년에 비해 더 늘어났다는 사실을 전했다. 미국 ‘폭스뉴스’도 월드컵이 개최되는 11개 도시 중 최소 7곳에서 떠돌이개를 소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동물단체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11개 도시에 사는 떠돌이개는 약 200만마리로 추정된다. 짧은 시간 안에 이 개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비인도적인 포획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 동물보호단체들의 주장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에도 수천마리의 개가 수수께끼처럼 자취를 감췄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는 중국에서 길고양이를 학살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2012년 유로축구대회 전, 우크라이나에서는 길거리에 떠도는 동물을 태워 죽였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월드컵과 올림픽이란 무엇인가. 세계가 한 뜻으로 모여 명예를 걸고 정정당당히 싸우는 운동정신, 그리고 온 인류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세계 평화에 이바지 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대회가 아닌가. 그 이상속에 생명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인간의 축제 때문에 이유를 모른 채 희생되는 생명들. 동물들의 그 짧은 삶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외롭거나 고독하게 살기 싫어도 그들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사랑을 주고 받고 싶어도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산다는 것 또한 어떤가. 살고 싶어도, 올림픽처럼 거대한 미명 아래에서는 구제 받을 길이 없다.
흐릿하고 하얀 실루엣 같은 개를 그렸다. 이 그림에서 어떤 견종을 떠올리는 건 각자의 몫이다. 특정 견종이 아닌 약한 생명을, 그들의 아픔을, 서글픔을 그리려 했다. 우리도 가끔 이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생각해보자, 그런 때가 언제였는지를.
글·그림 조민영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