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서울 상수동 집에 이사 온 3년 전 어느 날, 텅 빈 새집에서 볕을 받으며 앞으로의 나날을 준비하던 쭈니 모녀. 우리 셋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집이었다.
한국에 사는 ‘반려인’에게 큰 골칫거리 중 하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할 수 있는 영업장들이 크게 한정돼 있단 사실일 것이다. 반려동물의 입장을 허용하는 카페·식당은 극소수에 가깝고, ‘펫호텔’이 아닌 대부분의 호텔은 반려동물 입장 금지다. 그러니 국내 여행에 나설 때조차 우리집 치와와 모녀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걱정해야 한다.
지난해 거의 도시 전체가 ‘반려동물 친화적인(pet-friendly)’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는 동안 꽤 충격을 받았다. ‘다양성’의 성지와도 같은 샌프란시스코에선 다양한 성 정체성이나 인종적 정체성만 존중받는 게 아니다. 반려동물에게도 이 히피들의 도시는 천국이다. 펫숍은 법에 따라 동물보호소나 동물보호단체에서 구한 개와 고양이만 팔 수 있고, 8주 미만의 강아지나 새끼고양이는 팔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거의 모든 호텔은 반려동물의 투숙을 허용하고 있고, 호텔 로비에 리트리버 같은 대형견을 데리고 오가도 누구도 괘념치 않는다. 공원에선 행복에 겨운 개들이 잔디에 코를 묻고 있었다. 드레스업하고 방문하는 이탈리아 식당 안에도 대형견들이 드나들었다. 그러니 당신이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면 어딜 방문할 때마다 “반려동물을 데려가도 되나요”라고 묻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선 ‘내 집’에서조차 반려동물과 함께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아파트 주민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웃을 반기지 않는다. 세입자를 맞는 집주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기에 별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고 본다. 5살 미만의 아이 둘과 우리집 늙은 치와와 둘이 일으키는 소음량은 비교할 수 없다. 아이들이 우는 소리에 견주면 우리 치와와들이 간혹 택배 아저씨들을 향해 앙앙대는 소리는 애교스러울 정도다. 이 지구에 머물다 가는 동안 ‘0’에 가까운 해를 끼치는 이 견공들의 입주를 어찌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새 전세집을 물색한 최근 몇 주 동안에도 쭈니(12)·막내(14)와 함께할 곳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노령견들에게 충분한 일조량을 제공하는 남향이어야 하고, 근처에 산책할 만한 공원이 있어야 한다. 가격과 조건이 꼭 맞아도 반려동물 절대 금지 조항 때문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집들이 많았다. 부동산 앱에 올라온 매물 10개 중 7개 정도는 ‘반려동물 금지’, ‘반려동물 절대 안됨’ 등의 부가조항을 달고 있었다.
돌아보면 3년 전 이사 온 지금의 집은 쭈니와 막내에게 충분히 행복한 공간이었다. 인근에 사는 건물주는 대형견을 늘 데리고 다니는 ‘펫 러버’다. 거실에 드러누워 있으면 따뜻한 볕이 들었고, 조금만 걸으면 한강을 달릴 수 있었다. 집 앞엔 쭈니·막내를 환영해주는 카페도 있었다. 그런 집을 찾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단 말인가. 집을 알아볼수록 한숨만 났다.
며칠 전, 우리 세 식구는 마침내 ‘운명의 집’을 만났다. 작지만 채광이 좋고, 집 가까이에 치와와들이 뛰어놀 만한 작은 공원이 있는 집이었다. 더 걸으면 한강으로 나설 수도 있다. 다만, ‘반려동물 입주 가능’한 집인지 확실히 확인하는 일을 깜빡한 채 집 구경을 하러 갔다. 지금 사는 세입자가 현관문을 열어주는 순간, 나는 그 집이 운명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품엔 체력 짱짱해 보이는 웰시코기가 안겨 있었다. 할렐루야!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