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고 이틀 뒤 병원 면회실에서 만난 쭈니. 온몸에 붕대를 감고도 내 앞에선 의연한 모습이었다.
쭈니는 12살 평생 병원 신세를 진 일이 없다. 12년 전 겨울, 제왕절개로 쭈니를 꺼낸 날 엄마 배에서 나와 수술대에서 첫 세상을 만나긴 했지만 다시 수술대에 오를 일은 없었다. 이렇다 할 병치레도 하지 않았다. 이 조그만 녀석은 좀체 활력을 잃지 않았다. 크고 검은 눈은 늘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코는 촉촉한 물기를 머금어 생기를 증명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지난달 21일, 쭈니를 안고 병원에 갔다. 귀에 피가 응어리져 있었다. 검사 결과는 단순했다. 그저 외상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같이 사는 엄마가 물었을 가능성도 있어서, 고름이 나지는 않는지 염증 부위를 잘 봐야 한다”며 연고만 처방했다.
과연 피딱지 진 자국이 쭈니 엄마인 막내의 작고 부실한 이빨 모양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심증일 뿐 수사의 단서는 없었다. 다행히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 지 한나절 만에 쭈니의 귀는 거짓말처럼 아물었다. 녀석의 화수분 같은 생명력에 거듭 감탄했다.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진 건 며칠 뒤의 일이다.
일주일쯤 지난 2월27일 밤,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저녁 8시를 넘겨 걸려오는 전화는 무엇이나 기분 좋은 것일 리 없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쭈니의 종양 검사 결과였다. 귀 때문에 병원에 간 날, 혹시나 해서 담당 선생님에게 부탁한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귀를 살펴보려고 견공의 몸을 이곳저곳 둘러보는데 쭈니의 젖에서 완두콩 반쪽 만한 혹이 만져졌다.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불안을 떨치려 진행한 조직검사에서 쭈니의 혹이 ‘악성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전화를 받은 순간에도 쭈니는 예의 크고 검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일 없어. 놀라지 마. 난 괜찮아, 언니’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병원 중환자실 산소방에서 잔뜩 긴장한 채 생애 첫 수술을 기다리던 쭈니.
담당 선생님은 종양이 양성이라면 너무 커지지 않게 지켜봐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악성이라면 금세 커질 수 있고, 림프절을 통해 폐 등 다른 장기에 이미 전이됐을 수도 있으니 수술이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그게 동물병원의 ‘과잉진료’이든 ‘상술’이든 어쩔 수 없다. 내가 두 모녀에게 중성화수술을 해주지 않은 탓에 쭈니가 유선 종양을 갖게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반려인이 아닌 이들은 중성화수술을 그저 동물의 임신 가능성을 없애는 정도로 생각하지만, 발정기 이전의 중성화수술은 유선 종양, 자궁질환 등 각종 병의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춘다고 한다.
솔직히 나 또한 가족과 함께 반려견을 오래 키워오면서도 중성화수술의 효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걸릴지 안 걸릴지 모르는 병을 막자고 멀쩡한 생식기를 제거하는 게 천륜에 반한다고도 생각했다. 몇 해 전 막내가 자궁에 농이 차는 자궁축농증에 걸려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도 ‘설마 쭈니도 아프진 않겠지’ 했다. 그 ‘설마’가 ‘역시’가 되어 돌아온 셈이다. 지난 2일 쭈니는 종양을 비롯한 오른쪽 유선 전체를 제거하고 재발을 막으려 중성화수술을 받았다. 12년 치 고생을 한번에 겪어냈다.
수술과 입원 기간 내내 쭈니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멀쩡히 생활하던 자신의 몸에 칼을 대어 생에 한번도 맛보지 못한 고통을 줬으니 이해한다. 그러나 나흘 만에 집에 돌아온 녀석은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가슴부터 아랫배까지, 죽음에서 살아난 전사처럼 긴 흉터를 갖고도 늘 그랬듯 똘망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무 일 없어. 놀라지 마. 괜찮아, 언니.”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