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계절에 따라 몸집의 형태가 달라 보인다. 2012년 8월의 랑자.
이미 겨울이다. 해가 떨어지면 기온이 곤두박질친다. 번지점프 하듯이. 예년보다 빠른 겨울 때문에 휴대폰 모바일 쇼핑으로 옷 고르는 아내의 손이 바빠지고, 새벽 출근하는 내 옷차림도 달라졌다. 위아래로 3개를 겹쳐 입고 몸집이 두 배는 커졌다. 옷맵시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길고양이는 겨울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평생 털옷 하나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겨울만큼 혹독한 계절은 없다. 볕 좋은 곳을 찾아서 ‘식빵 자세’로 꽉 눌러앉아 있어도 칼날 같은 겨울바람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렇기에 길고양이도 나름대로 겨울 준비를 한다. 사람처럼 ‘아 이제부터 겨울 준비를 해볼까?’라고 생각하며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자연스럽게 먼저 반응한다.
우선 몸집을 키운다. 단풍이 들 무렵부터 길고양이들의 식욕은 눈에 띄게 높아진다. 고정적 밥 자리에 놓아주는 그릇을 한두 개 늘려 사료를 채워도 남지 않는다. 쓰레기장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길고양이의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털이 많아진다. 짧은 가을 동안 정말 부지런히 털이 나온다. 그렇게 난 털은 수북하다는 느낌을 넘어서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털 중간마다 눈·코·입이 박혀 있는 것처럼 털이 한가득하다. 겨울 준비를 제대로 한 길고양이가 걷는 모습을 모면 털 뭉치가 뒤뚱거리며 굴러다니는 것 같다.
그런데 길고양이가 할 수 있는 겨울 준비는 이 정도뿐이다. 과연 충분할까? 아니다. 여름 최고 기온과 겨울 최저 기온의 차이가 최고 50도가 되는 사계절의 특성상 길고양이 스스로 대비하는 것은 최소한 안전장치일 뿐이다. 두 방법 모두 체온 유지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겨울에 제때 먹지 못한다면 순간 체온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심한 경우 동사를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보살핌이 없다면 위험해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더 절박한 마음으로 길고양이를 챙기게 된다. 고양이다운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기존에 돌보는 길고양이는 물론이고 배고픈 눈빛으로 돌아다니는 초면의 길고양이를 위해서도 사료와 물이 담겨 있는 가방이 점점 무거워지는 당연한 일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많이 먹어 지방질을 키우고 털을 소복하게 키운 2013년 1월의 랑자.
??어디 그뿐이랴. 겨울바람을 피해서 잠시 눈 붙일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수고를 마다해서도 안 된다. 돈 주고 사는 길고양이 집도 있지만 부담 없이 제작하기에는 큰 스티로폼 상자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큰 스티로폼 박스를 보면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몸집보다 큰 것을 몇 개씩 들고 와서 집으로 만든다. 동그랗게 입구를 만들고 검은 비닐봉지를 두르고 안에다 짚단이나 옷가지를 넣어주면 훌륭한 길고양이를 겨울 집이 된다. 그마저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치워지거나 보란 듯이 부서지기 일쑤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다시 집을 만들어 놓고 최대한 공손하게 이번 겨울만이라도 가만히 놔달라고 부탁하는 안내문을 써 놓고 마음 졸이며 지켜본다.
겨울은 모두에게 힘들다. 그러나 길고양이에게 특히 겨울은 더 힘들다. 겨울보다 더 혹독하게 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측은지심으로 좋아하고 챙겨달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놔두기만 해도 된다. 사료 그릇이 보여도 집이 보여도 모른 척 지나쳐 달라는 말이다. 이번 겨울만이라도.
글·사진 김하연 길고양이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