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남양주 마석고 ‘스타냥’ 이야기
매점 옆에 생긴 고양이 밥 자리
‘고여사’ 스타냥 떠오르며 인기
동아리 생기고 학생들 모이다
고양이로 달라진 학교의 공기
학대받는 동물들 입양 보내고
3년 졸던 학생 깨워 대학 보내고
교사, 학생, 학부모 소통 활발해져
마석고 ‘랑이랑’ 학생들이 학교 인근 반려동물용품 가게에서 임시 보호하고 있는 고양이 ‘니나’를 돌보고 있다. 박선하 피디 salud@hani.co.kr
“우리 학교는 학생이랑 선생님 위에 고양이가 있어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마석고등학교는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33개 학급의 평범한 고등학교다. 그런데 2015년 학교 뒷마당에 고양이가 조용히 깃들면서 미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석고 고양이 돌봄 동아리 ‘랑이랑’은 학교에 찾아온 고양이를 돌보다 자생적으로 형성됐다. 정식 동아리로 등록한 지 만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교장 선생님이 사비까지 털어가며 적극 지원하는 ‘빵빵한’ 동아리다.
고양이를 돌본 이후로 학교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선생님들은 고양이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누고, 그간 교류가 적었던 특수반 학생과 일반 학생 사이의 소통도 잦아졌다. 학부모들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랑이랑’에 기부하기 바쁘다. 지난 12일 마석고등학교를 찾아 “고양이에게 포섭된” 학생들을 만났다.
고양이가 마석고 교문을 넘은 건 2015년이다. 고양이 서너 마리가 오며 가며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밥을 얻어 먹기 시작했다. 이내 매점 옆 가건물 앞은 고양이 밥 자리가 됐다. 학생과 선생님들 인심이 좋다고 고양이 동네에 소문이 났는지 적을 때는 한 마리, 많을 때는 새끼 고양이들까지 데리고 5~6마리씩 한 식구가 왔다. 밥 냄새 맡고 개울 건너 원정 오는 덩치 큰 고양이도 있었다.
그 가운데 마석고의 고양이 스타는 2016년 학교에 찾아와 실세를 차지한 ‘고여사’다. 그해 봄부터 주기적으로 찾아와 밥을 먹기 시작한 고여사는 6월이 되자 점점 배가 불러왔다. 병원에 데려가 보니 임신 중이었다. 동아리 차원에서 고양이의 출산을 돕기로 결정했다. 출산이 임박하자 랑이랑 지도교사인 권지연 선생님이 집으로 데려가 고여사를 돌봤다. “생물 교사라 고양이에 대해 잘 알 거라고 오해들 하시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새벽에 동물병원 원장님 대기하시라고 하고, 그렇게 출산했어요.”
그해 8월, 그렇게 고여사와 아기 고양이 4마리가 위풍당당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선생님들은 고여사네 가족이 지낼 수 있게 교외 화장실을 개조해 고양이집을 만들었다. 공사는 고여사의 감독 아래 이뤄졌다. 선생님들은 권지연 교사의 무릎에 앉아 현장을 지켜보는 고여사에게 “고여사님 잘 부탁드려요” 하고 인사를 했다.
학교의 공기가 달라졌다. 고여사와 아이들을 보려 모인 학생들 덕에 한적했던 학교 뒷마당이 북적였다. 고여사네 집에 출입하며 고양이들을 돌보고 사료를 주는 역할을 ‘랑이랑’이 맡았는데, 랑이랑 회원만큼이나 자주 고여사네 집 근처를 떠날 줄 모르는 학생이 있었다.
마석고의 대표 실세 고양이, 고여사. 고양이를 돌보며 입시 경쟁에 삭막했던 학교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권지연 제공
당시 3학년이었던 남학생 백주호(가명)는 도통 얼굴을 보기 어려운 학생이었다. “매일 엎드려 자서 수업 들어가도 정수리밖에 볼 수 없는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를 고여사가 깨웠어요. 선생님도 못한 일을 해낸 거죠.”
꿈이 없다고 말했던 주호는 고여사가 학교에 터를 잡고 새끼를 낳아 키우는 모습을 보고 동물과 관련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주호는 틈만 나면 커다란 몸을 고여사 집에 밀어 넣고 쪼그리고 앉아 한참 고양이를 쓰다듬곤 했다.
선생님들은 이런 눈에 보이는 성과 외에도 학생들이 자연스레 생명권과 공존의 의미를 마음에 새겼으리라 평가한다. 고여사는 자기 새끼들뿐 아니라 엄마 잃은 아기 고양이들도 돌봤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양이를 구조했을 때 고여사가 자기 젖을 내주며 그 고양이를 살렸다. 고여사는 사람들에게는 도도하게 굴었지만 불쌍한 아기 고양이가 있으면 군소리 없이 거둬서 보살폈다. 길에서도 생명이 나고, 자라고, 삶을 엮어가는 모습에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경이로움을 느꼈다. 올해 랑이랑 회장을 맡은 2학년 양민주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고여사는 교내 누구보다 중요한 존재였어요. 저희들이 집에 간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그래, 잘 가’ 그러는데 고여사가 행여나 어디 갈 일 있으면 선생님들이 나서서 차 태워 모셔다 드려요.” 지난해 수능시험날에도 그랬다. 수험생들이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듣기 평가에 방해받았다는 말이라도 나올까봐 고여사를 한 선생님 집에 데려다 놨다가 시험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데려왔다.
장난꾸러기 니나는 현재 임시 보호 중인 반려동물용품 가게를 종횡무진 휘저으며 다닌다. 밤마다 더 활발히 움직여 학생과 선생님들이 ‘밤의 황제’라고 부른다. 박선하 피디
고여사는 앞으로 살아갈 긴 나날을 위해, 현재 한 학생의 집에 입양을 갔지만 그럼에도 마석고의 고여사 앓이는 계속됐다. 연인이 기념일 챙기듯 고여사를 만난 지 1주년 되던 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료와 간식, 장난감 같은 걸 사서 입양 간 집에 보냈다. 학생과 선생님들이 너무 보고 싶어할 때면 반려인과 함께 직접 행차하기도 한다. 고여사가 오면 교장 선생님이 버선발로 나와 교장실로 직접 모신다.
고여사 이후로도 여러 고양이가 밥을 먹으러 학교를 찾는다. 고양이뿐 아니다. 지역 주민들도 고양이 문제로 학교를 찾는다. 최근 랑이랑 학생들이 모금활동을 해 지원하는 고양이들은 주인의 학대를 받다 쫓겨난 ‘니나’와 ‘니노’ 남매다. 랑이랑 활동을 돕는 지역 반려동물용품 판매점에서 지내고 있는 니나·니노는 한 가정에서 함께 살다 주인에게 쫓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어릴 적부터 집고양이로 자라 사람을 잘 따르는 두 마리는 집에서 쫓겨난 이후로도 계속 살던 집을 배회하다 주인이 던진 돌에 맞고 쓰러져 있는 것을 지역 주민이 발견하고 구조했다. 다행히 니나는 건강에 무리가 없지만 니노는 허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큰 상처를 받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두 마리를 좋은 반려인에게 입양 보내는 것이 올해 랑이랑이 세운 가장 큰 목표다.
남양주/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주인에게 학대받아 허리 부상을 입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고양이 니노를 ‘랑이랑’ 학생이 돌보고 있다. 박선하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