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경기도 양평에 있는 반려동물 가구 및 소품 브랜드 스튜디오올리브 공장 작업실에서 만난 김경옥 대표. 사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경기도 양평의 한적한 골목길. 낮은 지붕의 주택과 오래된 창고 등이 모여 앉은 굽이친 좁은 길을 지나면 길고양이 밥그릇이 문 앞에 놓인 초록 대문의 공장이 나온다. 고양이 가구와 소품을 만드는 브랜드 ‘스튜디오올리브’는 지난해 6월 론칭한 신생 업체다.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여러 유통업체와 백화점 등에서 러브콜을 받는 떠오르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생명을 브랜드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는 이 브랜드는 그래서, 지난해 부지런히 달려온 것을 거름 삼아 올 3월 길고양이 밥집을 무료 배포하기로 했다. 세부 디자인 수정을 남겨두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경옥 대표(35)를 9일 ‘애니멀피플’이 만났다.
인터뷰를 하는데 몇 번이나 밥 먹으러 온 고양이들이 반쯤 열린 공장 문틈으로 고개를 삐죽 밀어넣으며 안을 들여다봤다. 김 대표는 동네 길고양이가 자신의 가장 든든한 ‘사업 파트너’라고 했다. 고양이들은 응원의 눈빛을 보내며 총총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집, 해먹, 사료 그릇 등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이 고양이들이 늘 제품 평가를 해준다. 1인 기업에 다름없는 작은 공장에서 홀로 물건을 만들고 있는 김 대표에게 이들은 든든한 지지자이자 날카로운 비평가다. 고양이가 쓰는 모양새를 한참 들여다보다 디테일을 수정할 때가 많다.
3월 중에 배포될 길고양이 밥집도 길고양이들이 직접 시험 사용에 나섰다. 집은 입구에서부터 반대편 벽의 출구가 보이는 구조다. 들어갈 때 마주 보는 벽이 막혀 있으면 갇히게 될 줄 알고 들어가지 않으려는 고양이들의 행동을 보고 고안했다. 눈이나 비가 와도 고양이 밥그릇에 들이치지 않게 지붕의 각도와 길이도 몇 번이나 수정했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나무보다는 철제를 소재로 택하고 방수를 위해 가로등에 쓰이는 특수 페인트를 발랐다. 나무로 만들어진 일부분은 보트에 바르는 페인트를 발라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김씨는 오랜 제작 과정과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이 집이 국내 무료 배포되는 길고양이집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튼튼하다고 자부한다. 재료비만 10만원이 못 미치게 들어가지만, 김씨는 무료 배포를 위해 더 풍족하게 재료를 쓰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길고양이 밥집은 주민들 간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사유지에 설치 가능하고, 꾸준히 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배포하기로 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을 키워 본 적조차 없다는 김씨의 마음을 무엇이 이토록 강렬하게 흔들었을까. 어느날 고양이가 왔고, 고양이가 인생의 항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스튜디오올리브 공장 입구에 모양이 다른 길고양이들을 위한 밥집 샘플 여러 개가 놓여 있다. 사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서울에서 온라인 쇼핑몰 가전제품 MD로 일하던 김씨는 늘 쫓기는 도시 생활이 피로해 양평으로 집을 옮겼다. 당시 혼자 살고 있던 그에게 지인이 갈 곳 없는 고양이라며 한 마리를 반강제로 품에 안겼다. 2014년 겨울에 만난 그의 첫번째 고양이는 불법 캣 브리더의 집에서 온 아이였다. 구출된 것은 아니고 성격이 워낙 포악에 그 곳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사람들 손을 거쳐 김씨에게 왔다. 김씨는 꿈에도 몰랐지만 고양이는 임신한 어미 고양이었다. 2015년 2월 어느 새벽, 고양이가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당황한 김씨는 고양이가 새끼를 보통 몇 마리나 낳는지, 새끼를 낳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라 당황했다. “처음에 두 마리가 나오길래 다 낳았나보다 했는데, 한 두 시간 있다가 새끼가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어쩔 줄 몰라하는 김씨와 달리 고양이는 침착하게 출산을 했고, 5마리의 고양이가 태어났다.
5마리 중 막내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것 같았다. 그 새벽에 서울의 24시간 동물병원을 찾아 헤매다 결국 고양이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고양이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지켜보고, 새끼 고양이들을 성묘가 될 때까지 키우면서 고양이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동안 관심이 없어 보지 않았던 길고양이들의 삶이 눈에 띄었고, 길에서 다 죽어 가는 고양이를 구조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온라인 쇼핑몰 MD로 일하던 아내 김수진(32)씨도 결혼과 함께 양평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도시 생활을 접고 양평에 완전히 터를 잡았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가구 MD로 일하던 아내의 조언에 따라 김씨는 1년 반 동안 가구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수천 가지 물건을 보고 만지던 MD로 일했던 두 사람은 고양이를 키우며 접한 반려동물 용품들이 마음에 안 찼다. 고양이들의 필요에 따라 직접 물건을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이 브랜드 론칭까지 이어졌다.
고양이가 쓰기 좋아야 하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예쁘고 튼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많이 팔리는 반구 모양의 물그릇은 고양이가 유리에 비쳐 산란된 빛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고안했다. 야구 배트를 만드는 소재인 물푸레나무로 제작한 캣타워는 고양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2~3년 만에 무너져버린 캣타워를 사용했던 반려인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 평소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묻자 김씨가 작업대로 가 캣타워의 봉을 사포질했다. 제품의 아귀가 딱 맞을 때까지 손수 다듬는다. “제가 좀 집요한 면이 있는데, 캣타워에 잠시 미쳐 있던 때가 있었어요. 하루 종일 일을 해도 하루에 두 개 밖에 못 만들어요.” 김씨가 말했다.
그는 안온한 직장을 떠나 적막한 공장에서 홀로 나무를 다듬고 있으면 막막한 생각도 들지만, 고양이를 보며 힘을 낸다고 했다. “고양이들이 보여주는 것이 있어요. 고마움을 떠나서 저 친구들, 저의 사업 파트너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경기 양평/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공장 근처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이 브랜드의 모든 제품이 출시되기 전 시험 사용을 하는 든든하고 까다로운 사업 파트너다. 사진 김경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