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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짬타이거’ 호두의 두번째 묘생

등록 2018-05-03 11:46수정 2018-05-03 16:06

[애니멀피플] 먼저 제대한 고양이 ‘호두’
군대에서 쥐덫에 걸린 아기 고양이
손가락만한 다리에서 피가 철철
동물단체에 “제대 전까지 보살펴주세요”
순화 임시 보호 중인 호두의 현재 상태. 여전히 하악질을 하지만 간식도 받아먹고 제법 사람 손을 탄다.
순화 임시 보호 중인 호두의 현재 상태. 여전히 하악질을 하지만 간식도 받아먹고 제법 사람 손을 탄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쥐는 대개 골칫거리로 취급된다. 카라 동물보호센터에서도 사료를 뜯어 먹으려는 쥐를 어떻게든 창고에서 내보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다만 ‘쥐도 생명이니 함부로 해할 수 없다’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를 비롯한 소수의 입장일 뿐이고,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쥐약을 놓거나 덫을 놓는 것이 보통이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쥐가 어떤 이유로 말썽을 부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군대에서도 쥐를 잡기 위해 덫을 놓았다. 곧 쥐덫에 소식이 왔다. 다만 쥐덫에 걸린 것은 쥐가 아닌 고양이였다. 자칫 쥐로도 착각 할 수 있을 만큼 작고 어린 새끼 고양이. 쥐는 아니었지만, 다친 고양이 또한 곤란한 대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구조 당시의 호두. 귀를 뒤로 젖힌 채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구조 당시의 호두. 귀를 뒤로 젖힌 채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한파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월, 제대를 3개월 앞둔 군인 A씨와 동료들은 쥐덫에 걸린 아기 고양이를 발견했다. A씨의 요청으로 지역을 밝힐 순 없지만 그가 있는 군 부대 근처에는 마땅한 동물병원이 없었다. 동물병원이 있다 한들, 군대에서 쥐 대신 덫에 걸려 다친 아기 고양이를 돕기 위한 일련의 절차가 진행될 거라는 확신도 없다.

덫에 걸린 동물은 제 몸을 손상하면서라도 덫에서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인간이 설치한 덫은 동물에게는 너무 낯설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주 두렵고 이상하고 무서운 존재라 그저 벗어나고자 한다. 아기 고양이도 제 다리 가죽이 다 벗겨져 나가도록 몸부림쳤다.

당황한 군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뒷다리 가죽이 거의 거의 다 벗겨진 새끼 고양이를 별다른 치료 없이 그냥 놓아주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헐레벌떡 그 자리에서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다만 그 부대에서 근무 중인 군인 한 명이 그 소식을 듣고 고양이를 쫓아갔다. 겨우 찾아낸 고양이는 애처롭게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손가락만한 다리에서는 계속 피가 배어나왔다. 상처가 심한 부위는 살이 많이 패여 있어 뼈가 보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는 남몰래 새끼 고양이를 돌봐주는 생활을 시작했다. 먹을 것과 깨끗한 물을 갖다주었다. 하지만 심각한 상태의 뒷다리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치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주변에 병원도 없고, 병사 월급에 치료비도 걱정스럽고, 휴대폰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메일로 동물단체에 연락을 취하는 것이었다. “쥐덫에 걸린 고양이를 구해주세요.” 그는 그렇게 카라에 어린 고양이의 소식을 전했다.

하루라도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우선이었지만 군인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휴가 날짜는 멀었고, 전화 통화를 하기도 어렵고, 카라 활동가들이 부대에 면회 상태로 들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를 데려와 치료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도중 그와의 연락이 뜸해졌다. 잘 지내고 있을까, 다른 곳에서 도움을 받았을까. 한참 걱정하고 있을 때, 그는 3월, 돌연 카라 더불어숨센터에 직접 방문했다. 품 안에 숨구멍을 뚫어놓은 커다란 박스를 안은 채로.

그는 휴가를 받아서 센터에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상자 안에는 이야기로만 듣던 고양이호두’가 귀를 잔뜩 눕힌 채 하악질을 하고 있었다. 몸의 고통 따위는 하악질 하는 데 전혀 문제되지 않는 듯이 맹렬한 모습이었다. 뒷다리를 빼고는 꽤 기운 있어 보였다. 고양이의 얼굴은 경계심으로 무척 굳어 있었지만, 그 기세가 무척이나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다친 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 병원에서 지내던 당시의 호두.
다친 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 병원에서 지내던 당시의 호두.
호두는 수의사가 치료를 하러 다가서면 더욱 날카롭게 굴었다.
호두는 수의사가 치료를 하러 다가서면 더욱 날카롭게 굴었다.
카라 동물병원에서 진단한 고양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뼈는 부러졌다가 다시 붙고 있는 상태인데, 피부와 근육의 손상이 무척 심했다. 이제라도 치료를 받게 되었고, 식욕도 좋아 걱정은 덜었지만 손실된 피부와 근육이 얼마만큼 다시 재생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군인은 5월에 제대 날짜를 받아뒀다. 그는 제대 후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카라는 고양이를 잘 치료해 제대한 그에게 입양을 보내기로 약속했다. 야생성이 무척이나 강한 호두였지만, 어린 녀석이니 사회화를 계속 시도하면 반려묘로서 실내에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슬며시 만져본 호두의 가슴에서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군 부대에는 호두 외에도 ‘짬타이거’라 불리는 길고양이들이 많이 있다. 군인들의 사랑과 돌봄 속에 잘 살고 있는 고양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중성화가 안된 상태이고 간혹 쥐덫 등으로 다쳐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발길에 채이거나 몽둥이로 폭행당하는 등 학대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호두의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운이 좋았다. 지금은 동물병원에서 퇴원한 후 한 활동가의 집에서 순화 임시 보호를 진행하고 있다. 하악질을 하는 도중에도 으르렁거리며 간식은 잘 받아먹는다. 호두의 순화는 간식이라는 인간들의 멋진 문명이 있어 가능했다. 몸도 많이 나았다. 뒷다리는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걸을 때 뒤로 계속 미끄러지는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캣타워 꼭대기까지도 잘 올라가고 다른 고양이의 곁에 바짝 붙어서 걷는 등 보행에 지장은 없다. 다만 사람 욕심으로, 호두가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곧 호두를 구한 군인이 제대를 한다. 그는 5월의 따뜻한 볕과 함께 호두를 데리러 올 것이고, 호두는 이제 착실한 집사를 곁에 두고 두 번째 묘생을 시작할 것이다. 호두를 보며 세상의 길고양이들을 생각해본다. 그들 모두 안전하고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치더라도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로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그 연대가 당연한, 다정한 날들이 오기를 바란다.

글·사진 김나연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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