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길고양이 토막 살해범이 지켜보고 있다

등록 2018-06-11 07:00수정 2018-06-11 10:05

[애니멀피플] 동물의 친구들-전진경 카라 이사
아파트단지에서 발견된 고양이 하반신
급식소에는 ‘착한주민’이 쓴 섬뜩한 메모
‘주민 갈등’으로 지나쳐도 되는 걸까
이 메모는 과연 누가 남겼을까? 당시 해당 장소에서는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이 메모는 과연 누가 남겼을까? 당시 해당 장소에서는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길고양이 급식소나 쉘터(임시 집)가 마련된 곳에서 케어 테이커(자발적으로 길고양이를 돌보는 시민들)들은 곧잘 메모를 발견하곤 한다. 무조건 싫으니 다 데려가라는 막무가내 내용부터 좋은 일 하는 건 알겠으나 밥 자리를 옮겨 달라는 부탁, 그리고 이곳에서 지내던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데 혹시 안부를 아느냐는 문의까지 다양하다. 그것이 부탁이든 공감이든 격렬한 항의든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 사이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갈등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신사적이고 합리적일 때도 있다. 사람들끼리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급식소에 빙초산이 뿌려지거나 쥐약이 놓이는 등 폭력적 ‘사인’, 즉 동물학대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약자에 대한 비열한 폭력행위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시민 인식 개선 교육과 급식소 및 티엔아르(TNR·포획, 중성화수술 뒤 방사)에 대한 지원 확대, 그리고 학대자 처벌 등 법적·제도적·사회적 예방 활동 같은 처방도 가능하다. 동물에게 향하는 야만적 행위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보다 인도적인 사회를 이룰 수 없다. 이러한 공감대의 형성과 동물보호 예산과 인력 등 필수적 자원의 마련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 5월 경기 성남시 판교 아파트단지에서 길고양이 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5주령 아기 고양이의 하반신이 급식소 인근에 ‘놓여’ 있었다. 발견된 아기 고양이의 하반신은 예리한 흉기를 사용한 듯 상반신과 분리되어 있었고, 내장은 모두 제거되어 있었다. 주변에 핏자국이 전혀 없어 다른 곳에서 죽여 내장을 제거한 후 급식소로 일부러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토막 사체 발견 몇 시간 전, 또 한 마리의 아기 고양이도 같은 곳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4월에는 한쪽 안구가 함몰된 고양이가 목격된 후 사라졌고, 3월에는 나이 든 고양이 ‘메기’가 잔인하게 구타되어 살해된 사체로 발견되었다.

5주령 아기 고양이는 무척 사랑스럽다. 공감능력은 안전한 사회생활을 유지해주는 가장 중요한 정신 기능 중 하나이다. 고양이의 하반신에는 신체 절단 전에 날카로운 물체로 여러 차례 고문한 흔적이 있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5주령 아기 고양이는 무척 사랑스럽다. 공감능력은 안전한 사회생활을 유지해주는 가장 중요한 정신 기능 중 하나이다. 고양이의 하반신에는 신체 절단 전에 날카로운 물체로 여러 차례 고문한 흔적이 있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2017년부터 이곳 길고양이 급식소와 보금자리에 일련의 폭력적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 1, 2월에는 누군가 임시 집을 부수고 대나무 막대기를 꽂아 놓았다. 그리고 그는 아기 고양이 하반신 절단 같은 더욱 노골적이며 엽기적인 ‘사인’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4월5일 글로 쓰인 메모도 급식소에서 발견됐다.

이 메모를 경력이 많은 심리분석가와 정신과 의사에게 보이며 조언을 구했다. 현재 성남 분당경찰서에서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적인 단서는 없는 상황이었다. 사견임을 전제로 익명을 요구한 두 전문가의 의견에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메모가 사건과 연관 있는 누군가의 것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착한’이라는 부분을 덧칠한 것도 죄책감 또는 비아냥일 수 있다고 했다. 메모의 문구도 그렇고 사건 전체를 볼 때 일회적, 충동적이 아니라 장기간 목표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른의 소행일 가능성이 점쳐졌고 만약 청소년에 의한 행위라면 이미 많이 망가진 정신상태일 경우라 했다. 엽기적 욕구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 더욱 위험하다는 걱정도 같았다.

그리고 완전히 일치한 의견이 있었다. 집에서 쉬던 나이 많은 고양이 ‘메기’와 아직 어려 저항 못 하는 아기 고양이들이 학대의 목표물이 됐다는 점에서 학대자는 대상을 불문하고 공감 능력을 상실한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엽기적 학대행위는 증폭될 뿐 행위자 스스로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 즉 위험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범인을 잡아 크게 혼내주는 것뿐이라며 두 가지 다 실패할 경우 피해자는 어린이, 약한 여성과 노인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줌도 안되는 5주령의 아기 고양이의 사체. 하반신만 발견된 고양이와 형제로 보인다. 살아남은 한 마리는 케어테이커가 구조해 보호 중이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한 줌도 안되는 5주령의 아기 고양이의 사체. 하반신만 발견된 고양이와 형제로 보인다. 살아남은 한 마리는 케어테이커가 구조해 보호 중이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현재 판교의 해당 아파트단지에는 제보를 요청하는 전단이 곳곳에 부착되어 있다. 범인은 가까운 곳에서 지금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자신이 보낸 사인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얼마나 유능하게 대응하는지를 감시하고 이후의 행동을 계획하면서 말이다. 이토록 위험한 사람을 우리 사회에서 솎아내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일은 어떤 강력범죄에 대한 대응 활동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부에서 이번 학대사건을 길고양이 급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 또는 집 없는 동물에 대한 폭력 정도로 여기며 길고양이나 길고양이 급식이 원인 제공을 한 것처럼 오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태도로는 범인의 검거는 불가능하다.

길고양이 급식과 돌봄은 약자에 대한 공감과 유대를 확장하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여기에 심각한 경고등이 들어왔다. 지금 동물에서 시작하였지만 어쩌면 인간을 향하고 있을지 모를 엽기적 폭력의 에스컬레이터를 멈춰야 한다.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기회를 놓치지 말자. 죄 없이 고통 속에 살해된 아기 길고양이의 상반신을 찾아 온전한 모습으로 보내주고 싶다. 이 사건에 대해 작은 단서라도 있다면 분당경찰서(031-786-5223)로 제보 부탁드린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이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1.

1600㎞ 날아가 날개 부러진 채 발견된 21살 매의 노익장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2.

노화의 3가지 수의학적 지표…우리 멍냥이는 ‘어르신’일까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3.

새끼 지키려, 날개 부러진 척한다…댕기물떼새의 영리한 유인 기술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4.

아부지 차 뽑았다, 히끄야…첫 행선지는?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5.

서두르지 마세요…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 배웅하는 법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