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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동물보호소에선 친구가 필요해

등록 2018-06-24 08:59수정 2018-06-24 13:01

[애니멀피플] 윤정임의 보호소의 별들
보람되면서도 외로운 동물 보호 활동
동지가 있어야 동물 복지도 좋아져
시설·인력난 허덕이는 사설보호소
정부, 중성화수술 등 현실적 지원해야
지난 5월29일 별이 된 행복이. 행복이의 시선은 항상 J활동가를 향해 있었고, J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던 행복한 녀석이었다.
지난 5월29일 별이 된 행복이. 행복이의 시선은 항상 J활동가를 향해 있었고, J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던 행복한 녀석이었다.
지난 5월29일, 출근을 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오랫동안 동물보호소에서 활동하다 보면 평소와는 다른 아침 공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짐작한다. K활동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간밤에 행복이가 떠났다는 비보를 전했다. 평소 행복이를 챙겼던 J활동가가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행복이는 2015년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한 스피치 종의 개다. 구조 당시 심장사상충 감염으로 심장 기능이 좋지 않아 기침을 달고 있었다. 번식장의 작은 철장에서 오래 생활해 뒷다리가 몸을 지탱하지 못해 보행이 어려웠고 왼쪽 안구엔 궤양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어리고 건강할 때, 호기심 많았던 빛나는 시간을 번식장에 갇혀 새끼 낳는 기계로 살다 늙고 병들어 세상에 나온 행복이. 여기저기 성한 곳 없는 행복이를 보며 녀석에게 마음이 많이 쓰였다. 오며 가며 행복이에게 애정을 표현했다. 나는 소심한 성격의 행복이가 놀라지 않을 만큼만 조심스럽게 챙겼는데, 행복이는 나에게 데면데면했다. 1년 후 J활동가가 입사했고 행복이는 처음부터 J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2015년 불법번식장 현장에서 처음 만난 행복이(맨 오른쪽).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곳에서 77마리 전부를 구조했고 번식장은 폐쇄됐다.
2015년 불법번식장 현장에서 처음 만난 행복이(맨 오른쪽).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곳에서 77마리 전부를 구조했고 번식장은 폐쇄됐다.
10여년 전 내 애칭은 ‘마더 윤’이었다. 나는 보호소 동물들의 우상이었다. 사납고 까다로운 동물들도 나에겐 마음을 열었고 사랑을 갈구했다. 힘은 들었지만 마음 둘 데 없이 버려진 동물들과 학대받은 동물들이 진심을 담아 기대오면 고달픔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데 나에게 고정된 눈빛이 많아질수록 신경 쓰고 챙겨 줄 일 또한 늘었다. 소홀해지는 일이 생기면서 부담은 커졌다. 돌아서면 다치고 아픈 동물들, 끝이 없는 청소, 더위와 추위, 주변의 민원까지 감당하기가 버거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동물들의 죽음이었다. 혼자 장례를 치르고 유골을 안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서럽고 외로워 많이 울었다.

시간이 흘러 Y활동가가 입사했다. 보호소 동물들이 그에게 열광했다. 그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섬세한 부분까지 동물들을 챙겼고 운전을 못 하는 나와 전국의 동물구조, 학대 현장을 함께 했다. S활동가는 동물 입양을 전담했다. 사진 기술이 뛰어나 동물들의 예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추진력이 뛰어나 많은 동물이 가족을 만났다. L활동가는 에너지가 넘쳤고 고되고 험한 일도 마다치 않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동물보호소 동물들에게 더는 ‘마더 윤’이 아닌 ‘동네 누나의 친구’ 정도다. 반려동물복지센터 20여명 활동가가 동물들에게 사랑을 주고 부담을 나누어 주고 있으니까. 고달프고 애달픈 일 많은 동물보호소에서 서로 아픔을 나누며 다독이고 즐거움은 공유한다. 동물보호소 동물들의 삶이 나아지려면 동지가 필요하다.

2010년 입사한 Y활동가. 내가 짊어지고 있던 부담을 대신 짊어 준 고마운 동지다. Y가 있었기에 나는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2010년 입사한 Y활동가. 내가 짊어지고 있던 부담을 대신 짊어 준 고마운 동지다. Y가 있었기에 나는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2009년 별이 된 메리. 병원에 입원해 있던 메리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도착했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직후 숨을 거두었다.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마지막까지 나를 기다린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아렸다.
2009년 별이 된 메리. 병원에 입원해 있던 메리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도착했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직후 숨을 거두었다.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마지막까지 나를 기다린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아렸다.
최근 약 250여 마리의 동물을 보호하고 있는 대구시 ‘한나네 동물보호소’가 가축분뇨법에 근거해 사용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국민은 청와대에 청원했고 환경부는 한나네를 동물구조, 보호, 입양을 목적으로 하므로 가축분뇨법상 배출시설로 보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대구 동구청은 사용중지 명령을 취소할 전망이다.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한나네 소장님과 동물들을 생각하면 서글픔을 감출 수 없다. 소장님 혼자 250여 마리를 돌보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부담을 나누어 줄 사람이 없다면 한나네는 발전할 수 없고 동물들의 삶도 나아질 수 없다.

정부는 한나네를 계기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설 개선과 인력의 문제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보호소 내에 전염병을 예방하고 자체 번식하지 않도록 접종과 중성화수술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다. 유기와 학대로 구조되는 동물들은 90% 이상 중성화수술이 되어 있지 않다. 개체 수는 동물의 복지와 직결되는 만큼 예방을 위한 중성화수술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마저 민간과 개인에게 떠넘기지 말자.

글·사진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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