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기 고양이가 문 앞에 죽어 있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찾아왔고, 집을 만들어준 지 몇 일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엄마를 찾아보니 멀리 떨어져 앉아있었다. 엄마가 볼새라 급히 박스 안에 고양이 사체를 넣고 구청에 전화를 했다. 구청 직원이 전화를 했을 때 나는 일부러 멀리 나가 박스를 전해주었다. “아, 이 고양이구나. 저런….” “엄마가 아기 보내는 거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봐 일부러 멀리 나왔어요.”
그날 이후 엄마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기가 죽은 곳에는 오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 이해했다. 대한민국에서 캣맘이 된다는 것은 심장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 아닐까. 가슴이 아파도 오늘을 살아내야 하고 사료를 주문하고 고양이집을 점검하고 물그릇을 갈아줘야 한다. 우리는 아파할 시간도 슬퍼할 겨를도 없다. 물론 칭찬을 받을 수도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이태원에 있는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자주 가게 됐다. 역시 고양이 때문이었는데, 그곳 스태프들이 2년간 밥을 주던 고양이 하나가 어느 날 침을 흘리고 찾아와서 병원으로 옮겼고, 발치 후 회복 중인데 입양할 곳을 찾는다는 사연을 알고 나서였다. 이름은 ‘삼색이’.
우리나라에서 몸에 장애가 있고 나이가 많은 고양이를 입양해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터. 삼색이는 완치가 되었으나 병원에 장기입원하기 어려워 퇴원을 했고 지금은 테이크아웃드로잉 스태프들이 돌보고 있다. “동네에 외출냥이 하나가 있었어요. 삼색이는 그 아이와 친구였고, 어느날 외출냥이 집이 이사를 가면서 떠나자 삼색이는 혼자가 되었죠. 어느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삼색이는 아기를 데리고 왔고 그러다 한동안 안보였는데, 어느날 침을 흘리며 나타났어요.”
삼색이가 지내는 공간에 찾아갔다. 지금 삼색이는 아직 영업 개시를 하지 않은 서점에서 혼자 지낸다. 혹시라도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래된 가구가 많은 서점은 삼색이 입장에서는 ‘캣타워 천국’이었다. 삼색이는 처음 본 나를 보고도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볕이 잘 드는 창밖으로 흔들리는 끈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며 가구마다 자기 냄새를 묻히고 밥을 먹었다.
길에서 태어난 삼색이는 남자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가 떠난 후 아기를 낳았을 것이다. 어떤 아기는 죽고 어떤 아기는 독립했을 것이다. 어느날 부터 아프기 시작했고 인간을 찾아왔을 것이다. 삼색이는 분명히 사람을 혐오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밥 그릇을 두면서 다가가면 ‘하악’하기도 했다. 마치 ‘니가 싫은건 아냐. 하지만 아주 가까이 다가오진 마’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야생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유전자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개, 말, 소 등 인간이 가축으로 길들인 동물들은 유전자의 차이가 존재한다. 고양이는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이 어떻게 서로 공존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모든 갈등은 서로의 거리를 지키지 않을 때 발생한다.
길고양이들은 힘든데, 너는 참으로 편해보이는구나. 하지만 집사의 인생을 쓸모없게 만들지 않은 ‘귀묘’.
우리에게 각자 삶의 모습이 있듯이, 어느 날 고양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삶에 색깔을 입혔다. 하찮고 무심한 인생에서 당신이 어떤 고양이의 굶주림을 해결해주었다면 당신의 인생은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면.
우리는 집사다. 어디 감히 고양이를 우리 무릎에 앉히려고 함부로 시도하겠는가. 모든 것은 고양이가 결정한다. 우리는 섬기고 또 섬길 뿐. 그럴만한 가치가 있냐고? 고양이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라.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