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국회 국정감사에 데려온 아기 벵갈고양이의 행방을 묻는 여론이 이어지자,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양이와 함께 있는 사진을 올렸다. 관심을 끌기 위해 사안과 관련없는데 고양이를 데리고 국감장에 나왔다고 비판받았다. 김진태 의원 페이스북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개를 키우라”라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0여년 만에 ‘퍼스트 독’(대통령의 반려견)이 없는 미국 대통령이다.
지난해 미국 반려동물용품협회 조사 결과 전체의 68%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답했는데, 새 대통령은 반려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언행을 보았을 때 동물과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는 여론의 우려가 더해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인기 없는 새 대통령에게 “이미지 향상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개를 키우는 게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정치권에서도 개는 도움이 되는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반려견 ‘마루’와 ‘토리’, 반려묘 ‘찡찡이’와 함께 있는 사진은 과거 문 대통령의 행보에 더해져 동물친화적·가족적인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동물표심’을 향한 노림수
동물을 앞세운 정치인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최근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동물학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동물원에서 사살된) 퓨마와 닮았다”며 벵갈 고양이를 우리에 넣어 데려와 비판을 받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4년 입양한 유기견 ‘행복이’를 성남시에 두고 떠났다는 논란도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한 풍산개 ‘송강’. 지난 9월 27일 판문점을 거쳐 청와대에 입성했다. 청와대 제공
이들 외에도 2012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유기견 ‘무쇠’ 입양,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반려견 유기 논란 등 사례는 다양하다.
이처럼 정치 영역에서 동물이 이전보다 자주 언급되는 배경은 사회적으로 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치와 동물이 관계맺기 시작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반려견 ‘해피’(스패니얼 종)를 하와이로 망명하면서도 데려갈 만큼 사랑했지만, 청와대 ‘퍼스트 독’ 개념이 생겨난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돌이’(진돗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청돌이는 당시 이 전 대통령 에스엔에스 속 스타였다.
오랜 시간 가족으로 인정받지 않았던 반려동물이 점차 가족의 지위를 얻게 되고, 동물쇼 금지와 같은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표심을 의식하는 정치인들도 동물의 정치적 효용성을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니까 그런 흐름을 의식한 정치인들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9월 청와대 관저에서 키우는 진돗개 희망이와 새롬이에게서 태어난 강아지 5마리의 이름을 평화, 통일, 백두, 금강, 한라로 정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그렇다면 정치인에게 동물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권력자가 동물원을 만들어 동물쇼를 관람하거나 동물을 전시하는 게 권력을 과시하는 대표적 방법이었다. 로마에서는 콜로세움같은 원형경기장에서 야생동물의 싸움이나 쇼를 봤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포획한 사자나 코끼리를 훈련시키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유럽 최초의 근대 동물원인 오스트리아 쇤브른 동물원도 1752년 국왕 프란츠 1세가 세웠다.
민주주의 시대에도 동물은 정치인에게 긍정적 매개체로 손꼽힌다. 광고의 성공법칙이라는 ‘3B’(아이 Baby, 동물 Beast, 아름다움 Beauty)에 동물이 들어 있는 것과 유사하다.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감성을 자극하고, 친근감 있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유성진 교수(정치학)는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나빠 보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하는 동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면 정치인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거를 앞두고야 처음 유기동물보호소를 방문하고, 미래에 대한 약속 없이 동물을 입양하는 정치인을 두고 ‘이미지 정치 하지 말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책과 법안과 발언을 살펴야
이 때문에 정치인이 동물과 함께 언론에 나서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보여주기식으로 동물을 대상화하고 있는 데다 의사결정권이 없는 동물을 언론에 드러내는 것이 정당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은 “원칙적으로만 말하면, 동물은 제 자리에서 자유롭게 행동하게 하는 게 가장 좋다. 동물을 대상화해도 된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넘어섰기 때문에 동물이 주목받는 시대가 됐는데 역설적으로 정치권에서는 동물을 또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호객하듯 동물을 이용하는 행위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던 정치인들이 이제 동물을 안고 사진을 찍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6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트위터에 행복이는 잘 있다며 올린 사진. 이재명 경기도지사 트위터
정치인과 동물이 함께 언론에 나온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정치인이 어떤 동물복지 관련 정책을 지지하는지 또 어떤 법안을 발의했는지, 동물 관련한 뉴스에 어떤 발언을 해왔는지를 보라고 입을 모았다.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평소 동물권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서 동물을 이용하면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인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오랫동안 동물은 사람보다 못한 존재라 여겨왔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사람과 똑같이 대하라는 건 아니지만 전처럼 막 다뤄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정치인이라서 특별할 건 없다”고 강조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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