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있는 코끼리, 기린, 하마, 코뿔소 등은 우리나라 야생에서 볼 수 없는 놈들이다. 우리나라 동물원에 적게는 200여 마리, 많게는 2,500여 마리가 있다. 이 놈들이 어떻게 동물원에 왔을까?
식량, 모피, 동물의 부산물을 얻으려고 야생동물을 마구잡이로 죽인 시대도 있었다. 로마에서 트라야누스 황제가 새 식민지인 다키아 정복 기념 축제에 1만1000마리를 재미로 죽이기도 했다. 동물이 멸종위기로 내몰린 이유는 인구증가로 동물이 터전을 빼앗겨 서식지가 감소한 탓도 있으나 보호 개념이 없던 게 더 크다.
산업화와 인구 집중화가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 영국이다. 영국에서부터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 발생했고 유럽 전역으로 확대 되어 지금은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 나타나는 추세다. 영국에서 흔하던 흰꼬리수리라는 새가 1830년대에 숲에서 사라졌다. 스코틀랜드에서 사냥감으로 인기가 좋던 뇌조는 숲을 농토로 개간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1700년대 말경엔 드문드문 발견됐다. 그 후 보호정책으로 지금은 개체수가 늘어나긴 했다.
인간이 불러온 동물의 ‘위기’
사람들이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 정착하는 동안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인간의 식량창고 역할을 했다. 1800년대 중반에 유럽 곳곳에서 덫을 놓거나 총을 쏴 한 해 3000마리나 되는 새의 숨통을 끊어 놨다. 보들보들한 새털로 장갑을 만들려고, 예쁜 새 깃털을 모자 장식으로 꼽고 다니려고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던 것이다. 먹잇감으로 잡던 들소를 1870년대부턴 가죽으로 물건을 만들면서부터 닥치는 대로 잡아 멸종위기에 처했다.
사람들이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 정착하는 동안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인간의 식량창고 역할을 했다. 클립아트코리아
숲에서 종적을 감춘 종이 한둘씩 늘자 자연보호 차원에서 국립공원을 만들어 법적 규제를 시작했다. 미국은 1916년에, 영국은 1940년에 우리나라는 1967년에 국립공원을 설립했다. 1975년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을 발효해 동·식물의 국제적인 거래로 발생할 생존 위협을 막고 있다.
환경단체까지 힘을 보탰다.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단체인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설립 돼 1963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식물과 동물의 종 보전 상태의 목록인 IUCN 적색목록(레드 리스트)을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 이 근거를 토대로 어떤 종이 멸종위기종인지 구분하고 있다. 그에 앞서 1961년에 스위스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비영리 환경보전기관인 WWF가 설립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법적 규제를 둬 야생동식물을 보호하고 있다. 환경부와 문화재청이 관할기관이다. 환경부는 멸종위기 정도에 따라 1급과 2급으로 구분해 놨다. 문화재청은 자연자원을 천연기념물로 봐 가치가 있는 종, 번식지나 도래지, 식물의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동물을 야생에서 포획할 수 없고 금전적 거래도 금지 돼 있다.
유럽에서 자연환경의 파괴와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한다는 걸 인식할 무렵인 1752년에 오스트리아에서 세계 첫번째인 쉔브룬 동물원이 설립됐다. 그 전에는 국왕이나 군주가 자기 세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희귀한 야생동물을 뒤뜰에 가둬 기르기도 했으나 쉔브룬 동물원은 보전의 시작이다.
동물원은 야생에서 잡아들이지 않는다
동물원에 오리, 말 같은 가축도 있으나 대부분 야생동물이다. 멸종위기종 우선으로 보유한다. 최초의 동물원 설립 당시 이 놈들은 야생에서 포획했을 것이다. 동물원에 있는 30~40살인 개체들도 더러는 야생에서 왔다. 그 당시엔 자연보호의 개념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포획을 막는 법적 규제도 없었다. 하지만 현대엔 다르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자기 동물원에서 태어났거나, 국내·외 다른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를 동물교환으로 데려 온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종 보전계획에 의해 동물원끼리 무상으로 주고받아 번식하기도 한다. 동물원에서는 야생에서 잡아들이지 않는 다는 얘기다.
새끼를 돌보는 남극물개(Antarctic Fur Seal). 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 각 도에 한 개씩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는 폭우로 어미를 잃거나, 폭설로 먹이를 못 먹어 굶어죽을 처지에 놓였거나, 철조망이나 구조물에 걸려 다친 개체를 구조해 치료하는 곳이다. 치료 후 자연에 방사가 원칙이다. 방사해도 스스로 살 수 없을 개체는 계속 보유하거나 동물원에서 데려가 번식용으로 써 유전적 다양성에 긴요하게 활용한다. 동물과 자연을 보호하지 않으면 이렇게 동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취지로 동물원에서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교육용으로도 활용한다.
외국 여행 시 예쁜 애완조류의 알이나 동물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다. 법적 규제가 있는지 모르고 가져오는 것 같은데 입국 수속 시 압수된다. 밀반입된 동물은 국립생태원으로 보내 법적 절차를 거쳐 사육된다. 그 중 일부는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질 가능성도 있다. 국립생태원에 밀반입된 개체를 수용할 건물을 만들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니 불법으로 데려온 동물이 한둘이 아닌 듯하다. 귀여운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앞설지라도 동물을 밀반입해선 안 된다.
동물원에 있어도 야생동물
반려동물 1천만 시대에 접어든지 한참 됐다. 파충류 등 흔치 않은 종을 기르면서 자랑하는 마니아도 있다. 일반인이 멸종위기종을 못 기르게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데도 몰래 외국에서 들여오거나 분양받아 기르는 놈이다. 해외에서 건강하지 못한 개체를 들여와 질병이 전파될 가능성도 있고 자칫 야생동물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반드시 법적으로 사육이 가능한 종을 길러야 한다.
백상아리를 관찰하는 스쿠버다이버들. 클립아트코리아
크고 작은 문제로 동물원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 ‘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동물은 사람 손에 커 동물원에 익숙해져 있다. 그렇다고 가축은 아니다. 동물원동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동물원동물이란 명칭은 없다. 동물원에 있어도 야생동물이다. 단순 구경꺼리도 아니다. 자연에서 멸종 할 상황이 닥칠 경우 멸종되지 않게 씨앗 역할을 할 후보군으로 보면 된다. 야생동물을 자연에서 포획해 동물원으로 데려오지 않듯 동물원 생활이 익숙한 이놈들을 아무 때나 야생으로 돌려보낼 순 없다. ‘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며 언성을 높이는 것보다 동물원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캐묻는 게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는 지름길이다.
전 서울동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