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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실습견 비극 막는 ‘건강이법’ 동물단체가 반대했던 까닭

등록 2020-12-23 11:21수정 2020-12-23 22:01

[애니멀피플] 기고/실험동물 공급처 정하는 ‘건강이법’ 발의 뒷 얘기
경북대 수의대학 번식실습에 이용된 ‘건강이’는 난소종양, 유선종양, 자궁내막증 등의 질병을 앓고 있었지만 수술 뒤에도 한 달 넘게 실습에 이용되다 사육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경북대 수의대학 번식실습에 이용된 ‘건강이’는 난소종양, 유선종양, 자궁내막증 등의 질병을 앓고 있었지만 수술 뒤에도 한 달 넘게 실습에 이용되다 사육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건강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지난 2019년 여름의 일이다.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보자는 경북대 수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고, 그는 사건 설명을 위해 직접 상경했다.

제보자는 경북대의 실험동물 이용 및 관리 실태를 알리고 싶다 했다. 2018년 다른 경북대 학생이 장문의 제보 편지를 한겨레신문에 보내 문제가 한 차례 드러난 뒤에도 수의대의 실험동물 문제는 그대로였다. 당시 제보자가 속한 실험조에서 맡고 있던 실습견이 바로 건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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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원에서 사 온 실습견 ‘건강이’

제보자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건강이는 이름과 달리 실습견 가운데 건강이 가장 안 좋았다. 종양이 발견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강제 질 도말 및 교배, 번식 실습에 동원된 탓이었다. 질 도말이란 암컷 개의 번식 가능 시기를 검사하기 위해 질내에 도구를 삽입하고 세포를 채취해 관찰하는 검사다.

건강이는 현장 조사 당시에도 기억에 남는 개였다. 환기도 안 되고 거미줄이 가득한 지하 사육실의 케이지 안에서도 하염없이 짖고 꼬리를 흔드느라 분주하던 다른 개들과 달리, 건강이는 가만히 앉아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번 찌르나 여러번 찌르나 똑같다”며 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한 교수는 건강이와 다른 4마리의 실습견을 학기 내내 매주 질 도말, 교배 실습에 동원했다. 전문가의 의견으로도 이 실습이 시각 자료로 대체가능한 과도한 실습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8월 동물해방물결과 애피가 찾은 수의과대학 지하 사육실에는 5마리의 암컷 믹스견과 4마리의 실험용 비글견이 사육되고 있었다.
지난해 8월 동물해방물결과 애피가 찾은 수의과대학 지하 사육실에는 5마리의 암컷 믹스견과 4마리의 실험용 비글견이 사육되고 있었다.

담당 교수는 건강이와 다른 실습견들을 대구 칠성시장 내 건강원에서 매입한 뒤 ‘서울동물센터’라는 상호를 거짓 기재했다.
담당 교수는 건강이와 다른 실습견들을 대구 칠성시장 내 건강원에서 매입한 뒤 ‘서울동물센터’라는 상호를 거짓 기재했다.

이뿐이 아니었다. 지난해 8월 제보자와 함께 경북대의 실습견 학대 실태를 폭로할 당시, 수의대의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개들에게 불필요하고 가학적인 실습을 반복적으로 실시한 것 외에도 실습견들을 공급받은 출처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다.

담당 교수는 언론의 취재에 “식육견을 구조했다”고 했다가 “반려견 센터에서 사왔다”고 말을 바꾸는 등 엇갈린 답변을 내놨다. 이후 추가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그가 개들을 대구 칠성시장 내 한 건강원에서 샀다는 것이다. 교수는 개들을 ‘ㅎ건강원’에서 각각 6만 원에 매입하고, 실험과 관련한 모든 공식 문건에서는 공급처를 ‘서울동물센터’라는 실체도 알 수 없는 상호명을 거짓 기입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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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법 무력화 할 ‘개 농장’ 축사

이것은 위법일까. 정확히 말하면 위법은 아니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이하 실험동물법) 제9조는 등록된 실험동물 공급자를 통해서만 동물을 공급받도록 정하고 있지만, 대학 등 교육기관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실험 실태부터 개들의 출처까지, 경북대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데 11월19일, 이 문제를 일부 해결하겠다며 국회에서 건강이의 이름을 딴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대학 등 교육기관이 아무 곳에서나 편의적으로 동물을 사들여 실험에 이용해오던 행태를 이제는 동물보호법에서 막겠다는 취지였다.

지난 8월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던 경북대 수의대가 ‘번식 실습견’을 대구시 칠성시장 한 건강원에서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던 경북대 수의대가 ‘번식 실습견’을 대구시 칠성시장 한 건강원에서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에 길고양이와 유기견이 더이상 실험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법안이 통과되어 실험동물 공급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건강이와 같은 개의 비극을 막겠다는 좋은 취지가 일차적으로 반가웠다.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본 이 법안에는 타협할 수 없는 맹점이 있었다.

법안이 허용하는 실험동물 공급처가 문제였다. 기존 실험동물법에는 동물실험시설이나 공급자만 동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발의안은 기존 공급자 뿐 아니라 ‘축산법’이 정하는 축사와 ‘수의사법’에 속하는 동물병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오히려 동물공급처를 확대한 모양새였다.

동물해방물결은 즉각 강한 유감을 표하며 이런 방향의 ‘건강이법’을 철회, 수정하고 재발의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의원실에서는 “법안의 통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란 사유를 들어 수정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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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동물을 실험실로 보낼 수 없기에…

문제는 비단 ‘통과 가능성’이 아니었다. 이런 식의 독소 조항은 법안이 애초에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개선할 수 없게 만들 우려가 있었다.

첫째, ‘축산법’에 따른 축사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에만 존재하는 ‘식용 개 농장’도 포함이 된다. 지난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개를 ‘축산법’상 가축에서 삭제하도록 검토하겠다던 정부가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탓이다.

법안대로라면 유기·유실동물을 넘어 말 그대로 온갖 ‘출처가 불분명한 개들’이 전국의 개 농장을 통해, 대학 실험실로 유입되는 것을 법으로 허용하겠다는 꼴이 되고 만다.

경기도 여주의 한 개농장 뜬장에 갇힌 강아지들. 애니멀피플 자료사진
경기도 여주의 한 개농장 뜬장에 갇힌 강아지들. 애니멀피플 자료사진

둘째, 비슷한 일들이 ‘수의사법’에 따른 동물병원을 통해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자체의 유기동물보호소를 위탁 운영하는 동물병원 가운데 일부 비양심적인 수의사들이 유기동물을 되판 사례가 최근까지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보호자들이 동물병원에 유기된 동물들을 실험기관으로 보낼 우려도 있었다.

또한 셋째, 일부 동물의 실험을 막자고 전국의 수많은 축사와 동물병원이 더 많은 동물을 대학 실험실로 유입할 수 있도록 합법화의 도장을 찍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에 그치지 않고 개정안은 또 다른 예외 조항도 덧붙였다.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위 세 가지에 속하지 않는 곳으로부터 실험동물을 공급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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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 조항 제거부터 건강이법 재발의까지

동물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입장에서, 그러한 불가피한 사유란 당최 무엇을 상상해야 하는가. 축사도, 병원도, 실험동물생산시설도 아닌 다른 곳이란 과연 어떤 곳을 말하는 것일까. 반려동물 번식공장 혹은 동물판매 업소를 말하는 것인가. 법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또 다른 건강이가 생겨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가 합법적으로 생겨나도록 하게 될 터였다.

심각한 수준의 착취와 학대를 당하고 있는 동물을 위하는 입법 활동은 그 자체로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 어린 고민과 옳은 방향성 설정이 없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리 산업적 이익보다 동물의 복지를 우선하는 법안일수록 통과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법안 통과가 우선되는 법안을 마련하고 동물을 위한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법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한번 만들어진 법을 없애는 것 또한 수년의 투쟁이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개를 ‘축산법’상 가축에서 삭제하도록 검토하겠다던 정부가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동물해방물결은 ‘개도살 식용금지’ 집회를 열고 청와대에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지난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개를 ‘축산법’상 가축에서 삭제하도록 검토하겠다던 정부가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동물해방물결은 ‘개도살 식용금지’ 집회를 열고 청와대에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다행히도 이를 우려한 여러 동물단체와 활동가, 시민들이 합심해 반대 의견을 낸 덕분에 지난 17일 이탄희 의원은 문제 된 독소 조항을 삭제한 ‘건강이법’을 재발의했다. 뿐만 아니라 실험동물의 공급을 제한하는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지난 7월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통과된다면 실험동물법에 따라 등록된 실험동물공급업자가 아닌 자로부터 공급받은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동물실험은 명확히 금지된다.

마땅한 일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건강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법안은 동물을 위한 방향으로 무사히 심사, 통과될 수 있을까. 벌써부터 농림부는 “실험이 제약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경북대 수의대 관계자는 “비글을 사고 싶어도 돈이 없다”며 예산 증액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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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법은 비단 하나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건강이법’은 비단 하나가 아닐 테다. 2018년 정부의 약속대로 개를 ‘축산법’상 가축에서 삭제하는 것, 동물실험시행기관이나 실험동물 공급처가 동물의 복지를 위해 따라야 할 최소한의 규제를 상향하는 것,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대체시험을 지원·촉진하여 빠른 전환을 꾀하는 것 등 모두가 차가운 수의대 지하 실습실에서 죽어간 건강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건강이법’이다.

이미 이 같은 내용의 법안들이 국회에서 발의가 되고 있다. 동물운동 활동가들도 현장에서 끊임없이 힘쓰겠지만, 국회도 부디 통과까지 힘을 써주길 바란다.

글·사진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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