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이 죄’ 였던 ‘무등산 타잔’
자극적인 포스터 문구로 지역주의를 논란을 불렀던 영화 <무등산 타잔, 박흥숙>의 개봉을 앞두고 영화의 소재인 28년 전 ‘무등산 타잔 사건’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이 영화는 1977년 광주시 동구청 직원 4명이 광주 무등산 기슭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이 마을에 살던 20대 청년에게 무참히 살해된 충격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져 다음달 개봉된다.
이 사건은 77년 4월20일 오후 2~3시 철거반 직원 7명이 무등산 토끼등에서 바람재 사이 이른바 무당골 주변에 있는 무허가 판자촌을 강제로 철거하던 중 직원 오아무개씨가 박흥숙(당시 20살)에게 ‘인질’로 붙잡히면서 시작됐다.
전국체전을 대비해 환경미화에 나선 철거반 직원들이 들이닥친 무허가 집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던 박씨는 오씨를 인질로 잡은 채 격렬하게 저항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직원들은 인근 숲속에 숨은 뒤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을 기다리던 직원 4명이 오씨를 구출하려다 차례로 박씨에게 붙잡혀 인질은 5명으로 늘었고 이들은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밀어넣어진 뒤 흉기에 맞아 4명이 숨지는 참변을 당했다.
박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양동 철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쇠파이프로 사제총과 총알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고, 키는 160㎝로 작았지만 몸놀림이 무척 날쌨다는 특성들 때문에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씨는 사건 직후 달아났다가 서울에서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1980년 집행됐다. 더불어 이 사건은 1970년대 밀어붙이기식 개발독재가 빚어낸 도시빈민층의 참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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