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새터민 자녀 영어캠프…필리핀인 주부들이 강사로
장맛비가 그친 섬진강변에 왁자지껄 웃음이 부서졌다. 29일 오후 4시께 전남 곡성청소년수련관 2층 강당에서 서울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가 주최하는 ‘영어들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이 캠프엔 몽골 이주 노동자 자녀 9명과 새터민 청소년 1명, 저소득층 자녀 등 33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24일부터 5박6일간 세팀으로 나뉘어 동화 한편씩을 영어 연극으로 연출했다. 색연필로 이야기 배경을 그린 2절지가 무대 장치 전부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빨간색 가발과 쓰레받기·솥단지 등 극적 효과를 높일 기발한 소품도 등장했다. 김아무개(15·서울·중2)양은 “피아낭이라는 소녀가 파인애플처럼 눈이 많아지게 된 사연이 깃든 필리핀 전설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곡성으로 국제결혼해 이주한 여성 3명이 영어 지도를 맡았다. 이들은 곡성군과 전남대언어연구원이 주관해 5월초부터 60시간동안 실시한 영어 교수법 강좌를 이수하고 처음 영어 강사로 나섰다. 2000년 2월 곡성으로 온 필리핀 출신 베벌리(34·곡성읍)는 “긴장됐지만, 보람이었다”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영어에 친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연극이 끝나자 야영장 풀밭으로 뛰어나가 물총을 쏘며 깔깔거렸다. 그동안 틈틈히 족구로 뒹굴고 짝춤과 요리를 함께 배우며 서먹함을 날려버려 스스럼이 없었다. 몽골에서 한국에 온 빌공(15·충남 천안)은 “너무 재미있다. 친구들이 다 좋다”며 웃었다. ‘콩글리시’나 문법이 통하지 않는 ‘부서진 영어’등 갖가지 ‘영어들’을 사용해도 부끄럽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한국에 온 새터민 차민영(가명·경기 일산·17)군도 “지금까진 영어가 싫었는데, 영어를 알아 듣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캠프 마지막 밤은 모닥불 피우기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빙 둘러 앉아 캠프에서 배운 〈에델바이스〉 등 영어 노래를 큰소리로 불렀다. 김아름(26)씨는 “고액 영어 캠프를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사회 소수자들에게 소통 가능한 영어로 즐겁게 놀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마련했다”고 말했다.
글 사진 곡성/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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