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이준·이시영·김병로…
서로 다른 삶 20인 ‘이웃’으로
등산객만 멈춰 자취 더듬을뿐
서로 다른 삶 20인 ‘이웃’으로
등산객만 멈춰 자취 더듬을뿐
[도시와 생활] 수유리 애국지사 묘역
북한산 산자락은 요즘 여름 불볕 더위를 식히러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등산로 곁으로 조금 올라가면 한국 현대사의 거목들이 묻힌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 국립묘지에서 윗길로 올라가면 초대 부통령 이시영,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1956년 이승만과 대통령선거에서 맞섰던 신익희를 비롯해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손병희,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자결한 이준 등 한국 현대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묘소 20기가 모여있다.
일반적으로 이곳을 애국지사 묘역이라 부르지만, 인물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상당히 다르다. 건국준비위원회를 꾸려 미군정과 다른 남북합작 자주노선을 걷다 암살당한 여운형, 이승만 정권 때 경무부장으로 제주 4·3사건을 강경진압했던 조병옥, 중국 땅에서 떠돌던 이름없는 광복군들…. 혼란스러웠던 우리 현대사만큼 다양한 곡절이 있다. 처음엔 일제에 항거했으나 나중에 일제에 협력했던 행적이 드러나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들도 있다. 서로 다른 역사를 살았던 이들이 지금은 이웃으로 잠들어 있다.
이러한 묘소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국가보훈처 기념사업과 관계자는 “국장이나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를 만큼 유명한 인물들이라 유족들이 국립묘지로 가는 것을 꺼렸다. 이곳이 국유지이고 남향 볕이 잘 드는 곳이라는 점도 선호하게 된 계기다. 지금은 국유지 안에 묘를 쓴다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이 다 가능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에 이처럼 현대사의 거목들이 여럿 묻힌 곳은 2군데가 더 있다. 효창공원에 백범 김구를 비롯해 7~8명, 망우리 공동묘지에 만해 한용운 등 15명의 묘가 있다. 지난 2002년 정부가 수유리에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숨진 이들을 모아 민주열사묘역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워 새 식구들을 맞을 뻔하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반대해 사업은 흐지부지됐다.
묘를 쓴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을 둘러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이준 열사처럼 기념비와 조각으로 화려하게 단장된 묘도 있지만, 묘 주위에 사람 키보다 풀이 높게 자란 곳도 꽤 있다. 광복군합동 묘는 소박한 분봉 하나와 비석만이 옛 역사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이용희 서울북부보훈지청 보훈과장은 “국립묘지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리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광복절이나 추석을 앞두고 벌초나 보수를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강북구청은 2003년말 묘지 주위에 표지판을 세워 사람들이 찾기 쉽게 배려했다. 강북문화원은 탐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 해 학생들 1500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을 빼면 일부러 이곳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 등산객들이 오다 가다 옛 자취를 흝을 뿐이다. 조기원 기자 김도원 인턴기자(서울대 외교 3) garden@hani.co.kr
묘를 쓴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을 둘러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이준 열사처럼 기념비와 조각으로 화려하게 단장된 묘도 있지만, 묘 주위에 사람 키보다 풀이 높게 자란 곳도 꽤 있다. 광복군합동 묘는 소박한 분봉 하나와 비석만이 옛 역사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이용희 서울북부보훈지청 보훈과장은 “국립묘지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리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광복절이나 추석을 앞두고 벌초나 보수를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강북구청은 2003년말 묘지 주위에 표지판을 세워 사람들이 찾기 쉽게 배려했다. 강북문화원은 탐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 해 학생들 1500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을 빼면 일부러 이곳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 등산객들이 오다 가다 옛 자취를 흝을 뿐이다. 조기원 기자 김도원 인턴기자(서울대 외교 3)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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