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타씨 부부(가운데)가 지난 20일 충남 예산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 직원한테서 고향으로 보낸 냉장고의 사용법 설명을 듣고 있다. 송인걸 기자
필리핀새댁 안젤리타 ‘600ℓ 최신냉장고’ 엄마선물 ‘특급작전’
경찰-세부 결연행사서 알려져 “엄마의 소원 선물하고파”
특수제작·운송비만 1천만원 안젤리타(29·충남 예산)는 지난 20일 충남 예산읍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 전시된 600ℓ급 최신형 냉장고 손잡이를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한국으로 시집오던 4년 전 마지막으로 잡아봤던 마르고 꺼칠한 엄마의 손. 그 손이 앞으로 수없이 여닫을 냉장고 문이기에 손잡이를 만지면 엄마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안젤리타는 말했다. 안젤리타의 큰 눈에 고인 눈물이 코 끝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렸다. “엄마는 냉장고 사는 게 평생 소원이세요. 졸업하면 돈 벌어 냉장고를 사드리려고 마음 먹었는데 필리핀에서 영어교사 월급으로는 어림 없었죠. 끝내 엄마에게 냉장고를 못 사드리고 한국으로 시집왔습니다.” 안젤리타의 고향은 필리핀 비사야제도의 세부 섬이다. 이곳에서 1평반 짜리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시라핀(67)·말실리나(64) 부부의 5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 집안의 자랑이었다. 엄마와 큰 언니 마낙비키는 10여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을 아껴 모은 돈으로 안젤리타를 대학에 보냈다. 고향에서 고교 영어교사를 하다가 2003년 4월 마닐라에서 국제결혼상담소 주선으로 한국인 남편 오만섭(43)씨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단다. 오씨도 뽀얀 피부의 다소곳한 안젤리타를 보는 순간 ‘내 사람’이라고 점찍었다. 둘은 그해 7월 결혼했다. 효녀 안젤리타 “냉장고가 소원인 엄마는 이런 것도 못써보고…”
모든 게 낮선 한국 땅에서 겪는 향수병은 같은 처지의 새댁들을 만나서 달랬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각별한 사랑, 세훈(4)·세민(2) 남매와 6월께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행복했다. 그러나 부엌에 있는 큼지막한 냉장고를 보면 “친정 엄마는 이렇게 좋은 것도 못 써보고…”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를 떠나 낯선 땅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안젤리타는 하루에도 몇번씩 속울음을 삼켰다. 이 냉장고는 시어머니가 시집온 며느리를 위해 사주신 것이다. 그러던 지난 2월 경찰에서 ‘세부 출신 지역민을 찾는다’는 전화가 안젤리타에게 걸려왔다. 충남지방경찰청이 자매결연을 맺은 세부지방경찰청 방문에 앞서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세부 출신의 영상편지를 제작하려고 한 것이다. 박성철 충남경찰청 외사계장은 가족소개, 안부인사 등을 녹화한 뒤 안젤리타에게 ‘희망사항’을 물었다. 그녀는 부엌의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에게 ‘한국 냉장고’를 선물하고 싶어요.” 충남경찰청장 “이 거면 될까?” 판공비 300만원 쾌척
마닐라까지 냉장고 운송비만 ‘1천만원’…마닐라에서 세부까지는 520㎞ 박 계장의 보고를 받은 조용연 충남경찰청장은 한번 해보자며 판공비 300여만원을 내놓았다. “이 거면 될까?” 그러나 순조로울 것 같던 경찰의 냉장고 선물 계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필리핀과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전압이 달라 생산업체에서 특수 제작해야 했고 필리핀 마닐라까지 운송비는 1천만원이 넘었다. 또 마닐라에서 그녀의 고향인 세부섬까지 거리는 520여㎞인데, 운항중인 경비행기에는 무겁고 큰 냉장고를 싣는 게 불가능했다. “현지에서 구입하려고 했더니 200ℓ급 냉장고가 최고 큰 거랍니다. 제3국에서 살 수도 없고…, 그녀가 바라는 ‘한국 최고급 냉장고’를 선물하려면 한국에서 보내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충남경찰의 속앓이는 한달보름여 넘게 계속됐다. 지성이면 감천이런가. 안젤리타씨의 효심에 감동한 삼성전자가 최신형 지펠냉장고를 특수제작해 운송하는 것은 물론 고향집에 설치까지 맡겠다고 나섰다. “필리핀에서는 200ℓ가 최대…경비행기로 싣지도 못해”
경찰의 냉장고 특송작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성우 성선녀씨가 해설을, 공주영상대 양윤주, 이상복(TV편집제작과), 소영진(헤어디자이너) 교수 등이 영상물 제작을 각각 돕겠다며 팔을 걷어 부쳤다. 이 대학 오창민, 김홍민, 강주진, 이강희, 범근영, 용민우, 한미라씨 등 학생들도 제작 지원에 나섰다. 9일부터 13일까지 제작된 ‘냉장고 특송작전’ 영상물에는 안젤리타 가족을 중심으로 이주여성들의 삶과 경찰이 운영하는 외국인인권센터 활동, 충남지역 주요 명소 등이 담겼다. 이 영상물은 오는 30일 충남경찰청 대표단이 세부경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상영된다.
안젤리타의 효심 냉장고는 화물선에 선적돼 지난 7일 부산항을 떠났다. 현재 냉장고는 마닐라를 떠나 세부로 항해하는 전세 화물선에 실려 있다. 세부에 도착하면 다시 화물차로 100여㎞를 달려 5월1일 드디어 고향집에 설치된다.
냉장고 기능을 설명하던 대리점 직원이 “냉장고 사면 사은품(그릇 등)도 주는데 같이 보냈는지 확인하셨느냐?”고 묻자 그녀의 얼굴에 배꽃같은 웃음이 피어났다.
“셋째를 낳고 올 12월께 남편, 아이들과 친정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어젯밤 엄마와 통화하면서 냉장고가 가고 있다고 전했더니 기쁘고 놀란 나머지 말을 못하시더군요. 5월1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 될 겁니다. 말라밍 살라맛 뽀(감사합니다).”
예산/글·사진 <한겨레>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특수제작·운송비만 1천만원 안젤리타(29·충남 예산)는 지난 20일 충남 예산읍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 전시된 600ℓ급 최신형 냉장고 손잡이를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한국으로 시집오던 4년 전 마지막으로 잡아봤던 마르고 꺼칠한 엄마의 손. 그 손이 앞으로 수없이 여닫을 냉장고 문이기에 손잡이를 만지면 엄마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안젤리타는 말했다. 안젤리타의 큰 눈에 고인 눈물이 코 끝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렸다. “엄마는 냉장고 사는 게 평생 소원이세요. 졸업하면 돈 벌어 냉장고를 사드리려고 마음 먹었는데 필리핀에서 영어교사 월급으로는 어림 없었죠. 끝내 엄마에게 냉장고를 못 사드리고 한국으로 시집왔습니다.” 안젤리타의 고향은 필리핀 비사야제도의 세부 섬이다. 이곳에서 1평반 짜리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시라핀(67)·말실리나(64) 부부의 5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 집안의 자랑이었다. 엄마와 큰 언니 마낙비키는 10여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을 아껴 모은 돈으로 안젤리타를 대학에 보냈다. 고향에서 고교 영어교사를 하다가 2003년 4월 마닐라에서 국제결혼상담소 주선으로 한국인 남편 오만섭(43)씨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단다. 오씨도 뽀얀 피부의 다소곳한 안젤리타를 보는 순간 ‘내 사람’이라고 점찍었다. 둘은 그해 7월 결혼했다. 효녀 안젤리타 “냉장고가 소원인 엄마는 이런 것도 못써보고…”
모든 게 낮선 한국 땅에서 겪는 향수병은 같은 처지의 새댁들을 만나서 달랬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각별한 사랑, 세훈(4)·세민(2) 남매와 6월께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행복했다. 그러나 부엌에 있는 큼지막한 냉장고를 보면 “친정 엄마는 이렇게 좋은 것도 못 써보고…”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를 떠나 낯선 땅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안젤리타는 하루에도 몇번씩 속울음을 삼켰다. 이 냉장고는 시어머니가 시집온 며느리를 위해 사주신 것이다. 그러던 지난 2월 경찰에서 ‘세부 출신 지역민을 찾는다’는 전화가 안젤리타에게 걸려왔다. 충남지방경찰청이 자매결연을 맺은 세부지방경찰청 방문에 앞서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세부 출신의 영상편지를 제작하려고 한 것이다. 박성철 충남경찰청 외사계장은 가족소개, 안부인사 등을 녹화한 뒤 안젤리타에게 ‘희망사항’을 물었다. 그녀는 부엌의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에게 ‘한국 냉장고’를 선물하고 싶어요.” 충남경찰청장 “이 거면 될까?” 판공비 300만원 쾌척
마닐라까지 냉장고 운송비만 ‘1천만원’…마닐라에서 세부까지는 520㎞ 박 계장의 보고를 받은 조용연 충남경찰청장은 한번 해보자며 판공비 300여만원을 내놓았다. “이 거면 될까?” 그러나 순조로울 것 같던 경찰의 냉장고 선물 계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필리핀과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전압이 달라 생산업체에서 특수 제작해야 했고 필리핀 마닐라까지 운송비는 1천만원이 넘었다. 또 마닐라에서 그녀의 고향인 세부섬까지 거리는 520여㎞인데, 운항중인 경비행기에는 무겁고 큰 냉장고를 싣는 게 불가능했다. “현지에서 구입하려고 했더니 200ℓ급 냉장고가 최고 큰 거랍니다. 제3국에서 살 수도 없고…, 그녀가 바라는 ‘한국 최고급 냉장고’를 선물하려면 한국에서 보내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충남경찰의 속앓이는 한달보름여 넘게 계속됐다. 지성이면 감천이런가. 안젤리타씨의 효심에 감동한 삼성전자가 최신형 지펠냉장고를 특수제작해 운송하는 것은 물론 고향집에 설치까지 맡겠다고 나섰다. “필리핀에서는 200ℓ가 최대…경비행기로 싣지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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