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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열공’ 주부들 밤마다 ‘까르르’

등록 2007-07-17 22:51수정 2007-07-17 22:57

16일 저녁 대전 성은야학에서 학생들이 이의성 교사와 검정고시 대비 문제풀이 수업을 하고 있다.
16일 저녁 대전 성은야학에서 학생들이 이의성 교사와 검정고시 대비 문제풀이 수업을 하고 있다.
대전 성은야학 사람들
12명 “대학 꿈 한걸음씩”
25년 역사…정부지원 끊겨

장맛비가 내리는 16일 저녁 7시, 대전 중구 대흥동 성은야학(cafe.daum.net/yahak) 소망반 교실에 불이 켜졌다.

“오늘부터는 검시 문제풀이를 합니다. 모르거나 틀리는 문제가 있으면… 아시죠? 거침없이 물어보세요.”

과학 교사인 이의성(22·충남대 토목공학과 2)씨가 애교섞인 투로 말하자 어머니, 이모같은 학생들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검시는 검정고시의 줄임말로, 이날 문제풀이는 다음달 1일 치러지는 고졸(대입) 검정고시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아이고 큰일났네. 다 틀렸어.” 황아무개(46)씨의 한탄이 교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문제를 풀고 답을 맞췄더니 20문제 가운데 16문제를 틀렸단다. 문제지와 답지를 훑어보던 이 교사가 ‘피식’ 웃음지었다. “어머님도 참… 답지가 다르네요.” 입대를 앞둔 그는 이날 마지막 수업을 했다.

성은야학은 지난 1982년 2월 이성만(국방과학연구소 근무)씨가 개교한 이래 25년째 대입 검정고시 과정을 준비하는 이들을 가르쳤다. 수업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7시부터 9시50분까지 40분씩 4교시로 진행되고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국사 등 6과목을 자원 교사 9명이 맡고 있다.

현재 학생은 황씨를 비롯해 40~60대 주부 학생 10명과 이아무개(17)군 등 12명이다. 야학 운영비는 이 야학을 연 이성만 교장의 직장 동료들로 꾸려진 후원회에서 모두 지원한다.

지난해까지 정부로 부터 청소년 사업 예산에서 연간 600만원을 지원받았으나 중·장년층 학생이 많다는 이유로 끊겼다. 이 야학은 작은 책상 15개가 놓인 아담한 교실 2개와 교무실 겸 휴게실이 전부지만 사제의 정은 남다르다.

“못배운 게 마음의 짐이었어요. 자식같은 선생님들이 데이트도 미루고 저녁마다 야학에 나와 가르쳐주니 얼마나 고마운 지 몰라요.” 홍아무개(46)씨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수학이나 영어, 국사 과목은 ‘보긴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유일한 어려움”이라고 했다. 어려워도 하루 공부하면 대학에 진학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꿈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게 느껴진단다.

이아무개(53)씨는 수학이 재미있어 수학과, 홍씨는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일 제헌절 날도 보강있는거 아시죠? 꼭 나오세요.” “그럼요. 선생님 내일뵈요.”

밤 10시, 어린 교사들과 나이든 학생들은 굵은 장맛비가 내리는 가로등 아래에서 내일을 기약했다.

글·사진/송인걸 기자, 김수정 인턴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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