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학살 추정지 7곳 가운데 3곳 공개
6명씩 7줄 배열 40여구 추정…집단사살 드러나
6명씩 7줄 배열 40여구 추정…집단사살 드러나
‘구덩이에 6명씩 줄지어 무릎을 꿇었다. 칼빈 소총이 불을 뿜었다. 책임자가 발사한 4·5구경 권총 탄환은 구덩이 가운데쯤에 쓰러져 있던 이의 뒷머리뼈를 관통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9일 대전 동구 낭월동 13 일대 산내 골령골 학살 매장 추정지점 7곳 가운데 3, 4, 5지점의 유해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산내~옥천길 왼쪽 산 경사면의 3지점 구덩이(폭 2m·길이 4m)에서는 집단 매장된 유골들이 첫 발굴됐다.
유골들은 허벅지뼈와 정강이뼈, 골반뼈, 등뼈 및 갈비뼈가 겹쳐진 채 엎드린 모습이었다. 팔 뼈는 옆 사람 두개골에 얹혀 있어 사살 당시 옆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사살에 사용된 칼빈 탄피도 발견됐다.
충남대 발굴팀은 유골들이 6명씩 7줄로 발견됨에 따라 40여명이 묻혔을 것으로 내다봤다.
3지점에서 300m 서쪽의 5지점에서는 유골 5구가 묻힌 구덩이가 확인됐다. 구덩이 바닥에는 10대 여성 유골이 양팔을 위로 뻗은 모습으로 발굴돼 사살된 뒤 던져진 것으로 추정됐으며 다른 유골들은 포개져 뒤엉킨 모습이었다.
5지점에서는 ‘총무부○ 남용○’ 이름표 일부와 1~1.5㎝ 단추 30여개, 시계줄 일부, 열쇠 10여개, 빗, 검정고무신과 흰고무신, 굽있는 가죽신발, 속옷 흔적 등이 나왔다.
발굴팀 성원식씨는 “3지점은 단추 및 신발 1켤레 외에는 개인 소지품이 없어 대전형무소 희생자로 판단되지만 5지점은 유류품이 재소자 소지품으로는 보기 어려워 한국전쟁 전에 발생한 대전형무소 폭동사건 관련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박영일 홍보팀장은 “희생자 규모에 비해 유골 발굴이 적은 것은 땅주인의 반대 등으로 주요 학살매장지로 알려진 1, 2지점 발굴이 안 됐기 때문”이라며 “발굴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발굴된 유골은 충북대 유해감식단에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 김종현 회장은 “대전 동구청과 토지주, 건물주들이 평생을 한탄 속에 살아온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골령골은 1950년 7월7~10일 사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여순사건, 제주4·3항쟁, 보도연맹 관련자 등 1800~7000명이 군경에 사살된 곳으로, 1999년 미국에서 관련 문서가 비밀해제돼 확인됐으며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조사개시 결정으로 지난달 1일 개토제가 열렸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진실화해위 박영일 홍보팀장은 “희생자 규모에 비해 유골 발굴이 적은 것은 땅주인의 반대 등으로 주요 학살매장지로 알려진 1, 2지점 발굴이 안 됐기 때문”이라며 “발굴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발굴된 유골은 충북대 유해감식단에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 김종현 회장은 “대전 동구청과 토지주, 건물주들이 평생을 한탄 속에 살아온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골령골은 1950년 7월7~10일 사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여순사건, 제주4·3항쟁, 보도연맹 관련자 등 1800~7000명이 군경에 사살된 곳으로, 1999년 미국에서 관련 문서가 비밀해제돼 확인됐으며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조사개시 결정으로 지난달 1일 개토제가 열렸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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