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공항 내 옛 ‘정뜨르 비행장’ 일대에서 14일 제주4·3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설명회가 열려 희생자유족회 회원들이 박근태 발굴팀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제주4·3 당시 군·경에 집단으로 총살당한 주검이 암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제주국제공항내 학살현장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유해발굴을 맡은 제주4·3연구소와 제주대는 14일 오후 제주국제공항내 4·3희생자 유해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두개골 유해 36구를 공개했다.
제주국제공항은 지난 1949년 제2차 군법회의 사형수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비검속된 도민 등 500~800여명의 제주도민들이 군·경에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날 공개된 현장은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동서방향으로 길이 32.4m, 너비 1.2~1., 깊이 0.9~1.2m의 구덩이 형태였다.
구덩이에서는 당시 학살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 상황을 뒷받침하듯 유해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뒤엉켜있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또, 탄두와 탄피, 신발, 단추, 도장, 안경, 담배파이프 등 유류품도 발견됐으나, 공항내 각종 공사로 인해 흙을 뒤집는 복토과정에서 심각하게 훼손돼 신원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유해발굴팀이 이날까지 발굴한 유해는 두개골 36구와 조각난 상태의 부분유해 737점, 유류품 75점 등이었다.
특히, 학살 현장에 희생자의 신원 확인에 결정적 단서 구실을 할 도장 등이 발굴돼 신원 추정과 함께 당시 학살 정황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유해발굴팀은 이날 ‘희전’과 ‘양봉석’이라고 새겨진 도장을 공개하며, 희전은 당시 서귀면 호근리 출신의 대정초등학교 교사였던 김희전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양봉석’이라는 나무도장의 주인은 남원면 의귀리 출신의 의귀초등학교 교사로 추정했다.
현장에는 희생자의 동생 양봉찬(60·현의합장 유족회장)씨가 나와 눈시울을 붉혔다. 양씨는 “일주일전 연락을 받고도 긴가민가하며, 눈물이 쏟아져도 소리내 울지 못했다”면서 “한국전쟁 발발 당일 저녁 서귀포경찰서로 연행된 뒤 돌아오지 않아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들은 “유해 발굴 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려 60여년 동안 맺힌 유족들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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