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섯알오름 학살’ 실체 밝혀져…과거사위, 군·경에 보상 조처 권고
“57년만에 아버지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19일 오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제주도 섯알오름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받아든 제주예비검속연합유족회 박영찬(74)회장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박씨의 부친은 당시 47살에 마을 구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간 뒤 섯알오름에서 학살됐다. 박씨는 부친이 연행된 지 열흘 만에 해병대 4기로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날 “한국전쟁 직후 전투가 없었던 제주지역에서 예비검속자 218명이 일제 강점기 때 탄약고로 쓰였던 굴에서 해병대에 의해 집단총살됐다”는 발표와 함께 예비검속자 처리과정을 보여주는 공식문서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 사건개요=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도경찰국은 내무부 치안국의 통첩을 받아 관할 경찰서에 요시찰인 및 불순분자 등 예비검속 대상 주민들을 연행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모슬포경찰서는 관내 예비검속자 344명을 연행해 D, C, B, A급의 4등급으로 분류하고 명부를 작성했다. 예비검속자들은 4·3이나 좌익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었으나 경찰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분류됐고, 무고나 밀고 등으로 검속된 경우도 있었다.
이들 가운데 B, A급은 석방되거나 구금됐고, D, C급 252명은 모슬포 주둔 해병대에 넘겨졌다. 이어 50년 7월16~20일과 8월20일 2차례에 걸쳐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해병대에 학살됐다. 그러나, 유족들은 군·경의 저지로 유해들을 수습하지 못하다가, 계속된 탄원으로 56년에야 뜻을 이뤘다.
■ 불법성 여부=예비검속은 공식적인 제도가 아니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찰은 내무부 치안국의 지시에 따라 불법적으로 시행했다. 제주도 해병대사령부는 정부의 계엄령 선포 이전에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제주지구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법적 근거가 없는 계엄령에 근거해 예비검속 업무를 관장했다. 또 예비검속자 처리과정에서는 계엄령에 따른 처리기준이나 군법회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집단총살했다.
■ 권고사항=위원회는 국가를 비롯해 군·경 가해관련 기관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피해를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조처를 강구하며, 위령사업의 지원과 신원조회 관련 기록의 삭제 등을 권고했다.
이와 함께 군·경 관련 역사서와 관련 내용이 빠져있거나 왜곡된 지방사·향토사 등을 수정하거나 정정하고, 제주 지역의 역사 관련 학교 교재에 진실규명된 사실을 수록하도록 했다. 군·경의 복무규정 등에서 국가기관이나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의 제도화도 권고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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