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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젤로 따순 다무락 앞이 우리 마을 사랑방이여”

등록 2008-02-03 21:24수정 2008-02-04 14:02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 최대섭 할아버지 집 흙돌담 앞에서 마을 노인들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 최대섭 할아버지 집 흙돌담 앞에서 마을 노인들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
‘슬로시티’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다무락(담) 앞이 사랑방이제!”

‘슬로시티’로 인정받은 전남 담양군 창평면 면사무소 뒤쪽 삼지천 마을을 지난 1일 오후 찾았다. 이 마을은 황토에 작은 돌을 층층히 쌓아 키 높이를 살짝 넘긴 흙돌담과 한옥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한옥 열서너채와 어우러진 돌담길은 문화재청에서 근대문화재로 지정했다.

최대섭(69) 할아버지 집 흙돌담 앞에선 어르신 7~8명이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최 할아버지는 “이곳이 젤로(제일) 따순게(따뜻하니까) 날마다 나와 모여 논다”고 말했다.

이날 화제는 농협 조합장 선거의 전자투표 방식과 설을 앞둔 탓에 누가 고향집을 찾을까였다. 유태중(74) 할아버지는 “투표 기계가 ‘이 사람 맞냐’고 물어서 맞다고 눌렀는데, 안 눌러지더라”며 “붓대롱으로 찍는 놈이(것이) 빠르다”고 말했다.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은 느긋했다. 한 할머니는 “태어난 곳인께 찾아오것제.”

‘슬로시티’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슬로시티’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삼지천 마을은 지난 해 말 슬로시티 국제연맹에서 ‘슬로시티’로 공식 인증받았다. 전통가옥, 돌담길과 한과, 쌀엿, 된장 등 전통음식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슬로시티는 ‘전통 보존과 생태주의 등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마을’로 지금까지 세계 100여 곳이 인증받았다.

정묘례(80) 할머니는 “혹시 슬로시티를 아시느냐”고 묻자, “슬로가 뭐다요”하며 옆 할아버지들을 쳐다보았다. 최대섭 할아버지는 “슬로는 다무락 쌓는 것이다”라고 먼저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흙돌담은 하래(하루)에 1m 이상은 못 쌓는다”며 “대번에 후딱 싸믄(쌓으면) 빤듯허겄지만 욕심을 내서 허믄 흙반죽이 주저앉아 헐어져(무너져) 분다”고 말했다. 최 할아버지는 “‘슬로’가 된 뒤로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 다무락 존디가(좋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싸. 여기다 그러면 웃어부러. 실상 보면 앙끝도(아무것도) 아니거든”이라고 말했다.

한옥·흙담길·한과·쌀엿·된장…‘전통 생태’ 국제 공인
촌로들 모이는 담벽엔 ‘자장면집’ 스티커·대문엔 달력
가마솥에 엿기름 고아내고 찹쌀가루 빚어 설맞이 채비


흙돌담 집인 최대섭 할아버지 대문 안에는 누구나 잘 볼수 있도록 큼직한 숫자로 채워진 달력이 걸려 있고, 대문 옆 흙담에는 자장면을 시켜 먹을 때 요긴한 ‘창평반점’ 스티커가 붙어있다.
흙돌담 집인 최대섭 할아버지 대문 안에는 누구나 잘 볼수 있도록 큼직한 숫자로 채워진 달력이 걸려 있고, 대문 옆 흙담에는 자장면을 시켜 먹을 때 요긴한 ‘창평반점’ 스티커가 붙어있다.
이곳 어르신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슬로’다. 어르신들은 보통 오전 10시께 나와 흙돌담 앞 의자에 앉아 햇빛을 받는다.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갔다가 오후 2시께 다시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오후 4시께 퇴근한다. 최대섭 할아버지는 대문 안에 큼직한 숫자로 채워진 달력을 걸어놓았다. ‘창평반점’ 스티커는 자장면 시켜 먹을 때 요긴하고, 담 위에 놓인 지팡이는 누군가 갑자기 다리가 불편해지면 짚고 갔다가 다시 올려 놓는 공용이다.

마을엔 ‘슬로’를 찾아 삼지천으로 귀농한 이도 있다. 한옥을 유난히 사랑하는 남편의 제안으로 2006년 3월 동네로 이사한 전유례(40)씨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계절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이 여유로워진다”고 말했다.

전씨 부부는 이 마을의 오래된 한옥에 살면서 마당 한켠에 전통 한옥을 새로 지어 ‘한옥에서’(hanokeseo.namdominbak.go.kr)라는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지닌 소쇄원(사적 304호)과 면앙정 등 가사문화권 문화유적이 있어 주말과 휴일 전국에서 탐방객들이 찾아온다.

삼지천에서도 설을 앞두고 일손이 바쁜 곳도 있었다. 마을 이장 고태석(65)씨는 황토 아궁이에 엿기름을 삶을 가마솥을 걸어놓고 군불을 때고 있었다. 쌀과 엿기름·생강을 넣고 고아 내 ‘창평엿’을 만드는 곳이 10집 정도다. 50년 동안 엿집을 해온 고씨는 “엿을 서서히 정성들어 늘여야 제맛이 나온다”고 말했다. 찹쌀을 삭혀 가루를 내고 다시 쪄 공기가 골고루 배어 들도록 공이로 쳐서 한과를 만드는 집도 바쁘긴 마찬가지다. 패스트 푸드와 달리 모두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할 슬로푸드(여유식)들이다. 호남고속도로 창평 나들목으로 빠져 나가 창평면사무소 뒤쪽으로 가면 삼지천 마을을 찾을 수 있다.

담양/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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