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기름 유출로 큰 피해를 입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주민들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오후 읍내에서 설날 상차림 준비를 위해 장을 보고 돌아와 가영수(맨왼쪽)씨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태안/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르포] 한숨 속 설 준비하는 태안
방제인건비 쪼개고 쪼개 겨우 설 상 준비
“자식한테 바닷고기 싸주는 날 다시 올까”
방제인건비 쪼개고 쪼개 겨우 설 상 준비
“자식한테 바닷고기 싸주는 날 다시 올까”
“차례상에 사과 한개, 배 한개 올릴껴. 조상님들도 사정 뻔히 아실테니께.”
5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소근리에서 만난 문정인(73) 할머니는 장에서 흥정해 사 온 제수용품을 펼쳐 보이며 “물가가 배는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할머니는 “오늘 밤이면 대구에 사는 아들 내외가 손주들과 집에 올텐데 5만원 들고 시장에 나가 손주들 줄 막과자 1봉지, 젓갈, 파, 마늘, 엿 한통을 산 게 전부”라며 “떡국할 떡은 들고 다니기 힘들어 안맞췄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웃에 사는 김옥희(75)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무겁기는? 돈이 없어 줄여서 설을 지내려다 보니 밥으로 떼우려는 거지. 우리들 다 떡 안맞췄어.”
이렇게 말하는 김 할머니도 이날 난생 처음 굴을 샀다.
“평생 굴을 따 팔던 내가 굴을 사먹을 줄 몰랐어.” 1㎏ 담긴 굴봉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우리 굴은 맛도 좋았는디 내 평생에 그 맛을 다시 볼 수 있을지”라며 기가 막힌 듯 한숨을 쉬었다.
동네 큰언니 뻘인 김병옥(78) 할머니는 “생미역을 샀는데 한줌에 천원하던게 일주일 새 2천원이나 한다. 대파도 3~4개 묶어 2천원하던게 3500원하니 고향이라고 찾아오는 자식들에게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러자 이 동네에서 막내 뻘인 가영수(57)씨가 거들었다. “전 산거라곤 저기 말리는 동태뿐유. 물가가 당최 너무 많이 올라서.”
소근리는 의항과 신두리 사이 바닷가 마을로 자연산 굴 산지이다. 지난해 12월7일 기름이 유출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날 이들이 읍내 시장에 다녀온 것은 12월달 방제인건비를 받았기 때문이다. 10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이었지만 그날 이후 60여일 만에 처음 돈을 손에 쥔 주민들은 “어찌 됐든 설은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면서도 착잡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전기세, 전화요금, 텔레비전 시청료, 의료보험비 등 밀린 공과금내고 설 제수용품 흥정하고, 손주들 세뱃돈을 주기에 넉넉한 돈은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매년 설이면 해오던 파마도 올해는 안하기로 했다. 문 할머니는 “어제 주민 몇이서 바다에 나가 씨알굵은 우럭을 잡아왔는데 냄새 때문에 못먹고 버렸다”며 “오죽 답답하면 못먹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바닷고기를 잡겠느냐”고 되물었다. “옛날처럼 아들 내외, 딸에게 바닷고기 바리바리 싸주던 때가 다시 오긴 올라나? 애휴.” 집으로 가는 길에 할머니들 손에 들린 비닐보따리는 가벼웠지만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태안/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그러나 전기세, 전화요금, 텔레비전 시청료, 의료보험비 등 밀린 공과금내고 설 제수용품 흥정하고, 손주들 세뱃돈을 주기에 넉넉한 돈은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매년 설이면 해오던 파마도 올해는 안하기로 했다. 문 할머니는 “어제 주민 몇이서 바다에 나가 씨알굵은 우럭을 잡아왔는데 냄새 때문에 못먹고 버렸다”며 “오죽 답답하면 못먹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바닷고기를 잡겠느냐”고 되물었다. “옛날처럼 아들 내외, 딸에게 바닷고기 바리바리 싸주던 때가 다시 오긴 올라나? 애휴.” 집으로 가는 길에 할머니들 손에 들린 비닐보따리는 가벼웠지만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태안/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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