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석 선생
신안군 “1920년대 항일농민운동 기폭제…애국지사 묘역에”
일제 때 대표적 항일농민운동인 암태도 소작쟁의를 이끌었던 서태석(1885~1943·사진) 선생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전남 신안군은 “1920년대 항일농민운동의 기폭제였던 암태도 소작쟁의의 지도자 서태석 선생이 사후 65년 동안 고향인 암태도에 묻혀 있다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된다”고 29일 밝혔다.
군은 오는 3일 오전 10시 신안군 암태면 기동리 문중선산에 있는 묘지를 발굴해 선생의 유골을 수습한 뒤 4일 오전 11시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한다. 대신 암태도에는 농민항쟁 기념비, 묘지 터에는 사적비와 가묘가 남겨진다.
이렇게 예우가 늦어진 것은 정부가 선생의 사회주의 경력을 문제삼아 독립유공자 지정을 미뤄오다 2003년 8월 뒤늦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고 절손이 되다시피 한 후손들한테 의견을 듣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후손인 서용균(40·서울)씨는 “독립투쟁을 주도했는데도 사회주의 사상이 빌미가 돼서 후손들이 억울한 고초와 핍박을 받아야 했다”며 “이제라도 명예를 되찾아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서 선생은 1907~15년 암태면장을 지내며 식민통치의 실상을 체험한 뒤 1920년 3·1운동 1돌을 맞아 목포 시내에 태극기와 ‘대한독립 1주년 경고문’을 돌리다 1년 동안 수감됐다. 출감 뒤 소련 연해주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돌아와 암태소작인회를 결성했다. 1923~24년 한 해 동안 농민 600여명이 참여하는 집단단식을 벌이는 등의 방식으로 암태도 소작쟁의를 주도해 소작료를 7할에서 4할로 끌어내렸다.
이는 항일농민운동을 북돋우는 기폭제 구실을 했고, 해방 이후 1969년 박순동의 논픽션 〈암태도 소작쟁의〉, 1981년 송기숙의 소설 〈암태도〉 등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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