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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묻지마’식 새정부 따라하기

등록 2008-03-09 18:46수정 2008-03-09 18:50

지자체 ‘묻지마’식 새정부 따라하기
지자체 ‘묻지마’식 새정부 따라하기
대운하 불지피기…토요일에도 출근…전봇대 뽑기
#1 부산시 실·국장 이상 고위 공무원들은 요즘 토요 휴무가 없다. 평소와 같이 정상출근해 오전 8시30분에 허남식 시장이 주재하는 주간 현안회의에 참석한다. 회의 뒤에도 관련 현장을 둘러보거나 다음주 초 회의 자료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허 시장도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아침에 주재하는 실·국장 회의 외에 수시로 조찬간담회 등을 통해 지역 기업인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2 경북도는 지난 6일 점심시간에 도청 구내식당에서 쌀국수(쌀 컵라면) 시식회를 열었다. 전날 이 대통령이 ‘설렁탕 쌀사리’ 언급을 한 뒤의 일이다. 이 대통령은 5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밀가루 값이 비싸다면 설렁탕 사리의 재료인 밀가루를 쌀로 바꿀 정도의 고정 관념 파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이날 쌀국수 개발을 위해 한국식품연구원 분원 유치, 식품 관련 대학·연구기관·기업체의 산학연 협력체제 구축 등의 대책도 내놓았다.

부산진구, 8시 회의 ‘아침형 인간’ 코드 맞추기
시민단체 “중앙정부 따라 춤추면 안돼” 비판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새정부와 ‘코드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전남 대불공단의 전봇대 뽑기를 울산시 등이 따라한 데 이어 대운하추진팀 꾸리기, 토요일 일하기, 회의 일찍하기 등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새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발맞춰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기업지원과를 기업사랑과로 바꿨다. 기업에 대한 ‘지원’ 차원을 넘어 ‘사랑’으로 가자는 취지다.

■ 대운하 코드 맞추기=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 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추진팀을 꾸리고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장단점을 따져보지도 않고 중앙정부를 따라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운하 불 지피기는 김문수 경기지사가 열심이다. 지난해 연말 인수위 자문위원인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를 불러 비공개로 경부대운하에 따른 팔당 취수장 이전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4일엔 서울대 김귀곤 교수와 도청 간부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친환경 생태운하 조성 토론회도 개최했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물길 잇기 경기도 환경생태공동조사단(가칭)’ 구성을 제안받자 현장에서 해당 부서에 조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경기 남양주시와 여주군도 추진단을 구성해 대운하 터미널 유치사업에 뛰어들었다.

경북도는 지난 1월9일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경부운하 추진지원단을 발족했고, 경부운하 터미널 후보지역으로 꼽히는 문경·상주를 포함한 경북도 안의 8개 시·군도 각각 운하추진 지원단을 꾸렸다.

부산시도 연초에 ‘부산 경제중흥을 위한 10대 비전사업’을 발표하면서 전담기구로 전략비전추진본부를 발족해 경부운하의 낙동강 기종점이 될 강서지역의 첨단 운하·물류·산업도시 조성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특히 서부산권 개발을 위해서는 그린벨트 해제 및 각종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최근 건설행정 관료 출신인 정낙형 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을 정무부시장으로 영입했다.

경남도 또한 대운하 민자사업 유치 등 내용을 담은 행정기구 설치조례 개정안을 도의회에 상정해 지난 5일 통과시켰다. 이 조례에 따라 만든 민자유치팀은 정부의 대운하 프로젝트와 연계한 종합계획 수립과 화물·여객 터미널 입지 분석 등 사업관리 업무를 하게 된다.

경부운하의 허리 구실을 기대하고 있는 충북도는 지난 1월 대운하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물류·화물터미널 건설 예정지로 꼽히는 충주를 비롯한 사업 예정 지구의 땅값 움직임을 살피는 등 사전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광주시도 올들어 기획관리실장을 책임자로 국·과장 19명이 참여하는 대선공약 특별추진팀을 꾸려 영산강운하 사업 추진에 나섰다.

자치단체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지역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찮다. 대구환경운동연합 구태우 사무국장은 “각 지자체의 성급한 대운하 코드맞추기는 국민의 냉정한 판단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며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중앙정부의 장단에 춤춰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부산환경운동연합과 경부운하저지 국민행동부산본부 산하 시민단체들도 “부산시가 도시환경의 미래와 시민의 의견은 아랑곳 하지 않고 권력에 해바라기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며 관련 추진팀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박의식 경북도 경부운하추진지원단장은 “정부의 국책사업과 연계해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전략을 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 아침회의 일찍하기=부산시 간부들이 토요일에도 출근한데 이어, 부산진구청은 매주 월요일 오전 8시40분에 열던 구청 간부회의를 8시로 40분 앞당겼다. 실용주의와 ‘아침형 인간’이라는 새정부의 코드에 맞추겠다는 것이다.

구청은 또 매주 금요일 오전 8시40분에 열던 주간 실적보고회도 오후 5시로 변경하고, 회의방식도 단순한 실적보고를 넘어 현안 해결을 위한 난상토론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런 토요일 출근과 회의 일찍하기는 곧 전국의 다른 지자체로 확산될 전망이다.

■ 전봇대 뽑기 따라하기=이명박 대통령의 대불공단 전봇대 뽑기를 따라하는 자치단체도 있다. 울산시는 지난달 21일 한전 등 관계기관 실무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온산국가공단 전봇대 뽑기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한전은 전선지중화사업 예산을 확보하고 경찰과 시는 도로 표지판 등 지장물을 정비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업계의 지장물 철거 요구에 꿈쩍않던 시와 경찰, 한전이 이명박 대통령의 전봇대 언급에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경남도와 창원시, 한전은 지난 1월 회의를 열어 창원시와 한전이 비용을 절반씩 부담해 도로 옆 전봇대를 지하에 묻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9월 창원공단 입주업체 5곳이 “생산품을 운송할 때마다 크레인으로 전선을 들어올려야 해 운송비로 월 평균 2억1300만원을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며 창원공단로 전선 지중화 공사를 요청할 때는 ‘업체들이 비용을 부담하면 해결하겠다’고 버텼던 한전이 하루 아침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자치단체의 새 정부와 코드 맞추기 현상을 두고 부산대 강성철 교수(행정학)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일방적으로 순응하기보다는 독자성과 차별성을 지키며 수평적 협력관계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동명 기자, 전국종합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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