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사람과풍경] 삭막한 도심 녹이는 문화 향기 그득했는데…

등록 2008-08-28 22:59수정 2008-08-28 23:12

전남 순천의 원도심에 있는 주영갤러리는 2002년부터 6년 동안 100여차례 전시회와 콘서트를 열면서 예술인들의 보금자리로 사랑을 받아왔다.
전남 순천의 원도심에 있는 주영갤러리는 2002년부터 6년 동안 100여차례 전시회와 콘서트를 열면서 예술인들의 보금자리로 사랑을 받아왔다.
개발로 사라지는 순천 주영갤러리
차마시며 그림감상 ‘문화명소’…조정래 등 유명인도 발걸음

소방도로 개설로 “추석전 비워달라”…옮겨갈 곳 없어 한숨

전남 순천의 원도심 안에 있는 예술인들의 보금자리 ‘주영갤러리’가 다음달 사라지게 돼 주민들이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27일 오후 찾아간 순천시 장천동 210 주영갤러리. 원도심의 성남교로 가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도로에서 서너 평을 안으로 들여 푸른 정원을 만든 2층짜리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꽃자줏빛 간판을 뒤덮은 마삭줄 넝쿨이 철거 통지에도 아랑곳없이 2층 창문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이 갤러리는 2002년 10월 문을 열었다. 실내 공간 120㎡를 안락한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여유롭게 한담을 나눌 수 있게 꾸몄다. 콘서트를 열 수 있게 작은 무대와 피아노 두 대도 갖췄다. 개관 이후 6년 동안 여순사건 위령탑 건립 기금전, 순천대 로체봉 원정보고전, 히말라야 네팔 퀼트전, 박치음 피아노 연주회, 강종렬 동티모르전 등 100여 차례 전시회와 콘서트를 이어갔다. 이정순·박소빈 서양화전은 개막일에 그림이 다 팔리는 초유의 성황을 기록하기도 했다. 입소문이 나자 삭막한 도심에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는 공간이 생겼다며 예술인들이 발걸음을 시작하더니 산악인·공무원·외국인의 방문도 잦아졌다. 소설가 조정래, 영화감독 임권택, 영화배우 문성근·장미희씨 등도 순천의 냄새를 맡아보겠다고 들를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주민들은 갤러리가 철마다 꾸미는 정원에 박수를 보냈다. 갤러리의 테라스는 콘크리트 숲속에 사는 이웃들한테 자연의 변화를 선물하는 통로였다. 봄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여름에는 칸나와 수련, 가을에는 낙엽과 갈대, 겨울에는 호박들로 새단장을 해왔다.

이런 노력으로 지역의 명소로 발돋움할 무렵 갤러리는 뜻하지 않은 고민을 안게 됐다. 2005년 6월 갤러리를 관통하는 소방도로 개설계획이 세워지면서 순천시의 보상과 수용이 추진된 것이다. 시는 최근 건축물·영업권을 뺀 토지만 보상한 채 추석 전에 비워 달라는 통보를 해왔다.

지역 작가들은 원도심의 문화 사랑방이 사라지는 걸 아쉬워하고, 주민들은 콘크리트 숲속에 산소를 공급하던 정원이 헐린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주민 박영이(54)씨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려고 일부러 갤러리 앞길을 지나가곤 했다”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동네에서 다들 행복하게 생각했는데 헐린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갤러리를 운영해온 화가 손준호(49)·박은선(45)씨 부부는 이를 대신할 공간을 찾고 있지만 아직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고민 탓에 머리가 뜨거워져 이틀 전 삭발까지 했다는 손씨는 “일주일에 4일, 하루에 네 차례 순천 안팎의 부동산을 전전하고 있다”며 “주민과 작가가 두루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바랐다.

순천/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