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량 8만t 중 추석 2만t 팔려…경락가격 3만원→9천원
본격 출하 25~26일 고비…정부 수매 요구 등 집단행동 나설 듯
본격 출하 25~26일 고비…정부 수매 요구 등 집단행동 나설 듯
전남 나주지역 배 재배 농민들이 소비침체 탓에 판매량이 떨어지고 가격마저 폭락하자 깊은 시름에 잠겼다. 나주 배 원예협동조합은 17일 “한해 배 수확량의 60%는 추석에, 40%는 설에 팔리곤 했다”며 “올해는 추석 판매량이 수확량 8만t의 25%인 2만t에 그쳐 6만t이 남게 됐다”고 밝혔다.
이런 판매부진으로 시중의 배 판맷값은 15㎏ 한 상자에 예년 4만~5만원에서 올해 3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산지의 경락가격도 생산비는커녕 포장비에도 못미치는 수준까지 폭락했다. 나주 배 원협의 경락가격은 추석 상품이 집중 출하된 지난 10일 평균 9천원에 불과해 농민들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는 여느 해 평균 경락가격이 2만8천원을 웃돌았던 데 견주면 3분의 1로 떨어진 시세다.
나주 배 재배 농민들은 추석 전 11일 중단했던 원협의 경매가 18일 재개될 예정이어서 가격등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봉황면 농민 이석행씨는 “35년 동안 배농사를 지어왔는데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며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운 농가가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농민 안아무개씨도 “영농비 5천만원과 임대료 2천만원을 들여 2만6천㎡를 지었는데 이대로 가면 소득은 2500만원에 머물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앞서 지난 11일에는 왕곡면 신원리에서 6천㎡를 임대해 배농사를 지었던 농민 박아무개(67)씨가 전날 한 유통업체에 200상자를 90만원에 내놓은 뒤 가격 폭락을 비관해 목숨을 끊기도 했다. 신현담 전무는 “배 재배 농민들이 18일 나주시장을 면담하고 대책을 요구할 예정”이라며 “본격 출하가 시작될 25~26일이 가격동향을 가늠할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농민들은 추석 때 남겨진 6만t 중 3만t은 저온창고에 저장할 수 있지만, 나머지 3만t은 가격이 떨어져도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농민들은 상황이 더 나빠지면 정부 수매를 요구하고, 야적 시위를 벌이는 등 집단행동에 나설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전남도청과 나주시청은 이른 시일 안에 생산·가격 현황을 점검하고 판매 촉진 방안을 찾는 대책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런 상황은 전국의 배 주산지인 천안 안성 울산 상주 등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주시청 배원예과 쪽은 “경기침체로 소비가 둔화된데다 개화기와 결실기에 날씨가 좋아서 수확량이 5% 가량 늘어났기 때문에 가격이 폭락했다”며 “이제는 오래전에 심은 과수는 폐원을 유도하고 생산량을 조절하는 등 수급조절을 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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