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풍경] 질풍노도의 터널 끝에서 그림을 만나다

<꿈프로젝트>에 참여한 고룡정보산업학교 미술반 학생들이 화가들의 조언을 들으며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명지미술관 제공

광조고룡정보산업고의 ‘꿈프로젝트’

작가 5명, 비행 청소년 16명 ‘예술의 길’ 이끌어
“우리도 고흐·폴락처럼”…우울한 얼굴엔 미소가

“그림이 미술관에 걸릴 줄 알았으면 더 잘했을 건데요. 사인도 이쁘게 하고요.”

22일 오후 3시 가을빛이 완연한 전남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명지미술관. 통제된 생활을 하던 광주 고룡정보산업학교 미술반 학생 16명이 ‘작가 자격’으로 나타났다. 소년보호교육기관에서 다섯 시간 동안 허가받은 ‘특별한 외출’이었다. 학생 2명에 교사 1명씩 동행했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아무런 거림낌도 없이 밝았다. 들뜬 마음으로 전시관에 걸린 자기 작품을 찾고, 낯익은 화가들한테 다가가 인사를 하느라 부산을 피웠다.

“많은 이들이 내 그림을 볼 텐데 기대가 된다.” “처음에 기대도 않했지만, 점차로 답답한 거 어려운 거 다 잊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 자신한테 더 다가간 것같다.”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렸는데 잘 생긴 얼굴이 나와서 무척 기뻤다.”

학생들은 전시된 작품 100여점을 돌아보며 제작 과정의 추억을 하나하나 새록였다. 이어 화가들의 손을 붙잡고 “나가면 전화해도 되죠”라며 <꿈 프로젝트>가 끝나는 걸 못내 아쉬워했다.

<꿈 프로젝트>는 8~10월 이 미술관이 한때 비행을 저질러 보호기관에서 생활하는 10대 후반 청소년들한테 희망을 심어주려고 마련한 기획전시다.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작품을 구상해 직접 만들고 전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심감을 되찾도록 하려는 일종의 미술치유 시도였다.

석달 동안 강봉규(사진가), 한희원(화가), 고근호(조각가), 주홍(화가), 류정미(미술치료사) 등 작가 5명이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캔버스와 도미노에 마음을 내보이게 도왔다. 7차례 이어진 수업은 △나는 누구인가 △내 마음 속의 빛깔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은 △나의 미래는 어떨까 등을 표현하는 데 맞춰졌다. 반사회적 성향으로 방황하다 거장의 반열에 오른 반 고흐, 잭슨 폴록, 키스 헤링 등을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리기도 했다.

화가 주홍씨는 “딱딱하고 우울하게 보이던 아이들이 점차 행복해 하는 것을 느꼈다”며 “질풍노도같은 십대 후반의 정서를 다양한 주제와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해 작품의 수준도 높다”고 말했다.

복권기금으로 마련된 이 전시는 10월22일~11월4일 명지미술관, 11월5~18일 광주지검, 11월19~23일 고룡정보산업학교 등지를 돌며 이어진다.

고룡정보산업학교는 광주시 광산구 임곡동에서 비행 청소년을 수용해 컴퓨터조작, 자동화용접, 중장비운전 등 특성화 교육을 하는 법무부 소년보호교육기관이다.

안관옥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