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10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주변 용담해안도로 어영소공원 인근에서 발굴된 유해들에 대한 제례에 참석해 절을 올리고 있다.
“60년 암흑 벗어난 원혼들 편히 잠드소서”
유해 259구 수습…정밀 감식으로 사인규명
유해 259구 수습…정밀 감식으로 사인규명
“60년 만에 어둠의 땅에서 비로소 벗어났습니다. 영혼들이시여, 편히 쉬소서.”
제주4·3사건 당시 최대의 학살터였던 제주국제공항에서 이뤄진 유해발굴사업이 10일 최종 마무리됐다. 지난해 9월부터 이뤄진 제주공항 제2차 유해발굴 작업에서 유해 259구와 탄피, 탄두, 수저, 단추 등 유류품 1250점이 수습됐다. 제주공항은 1949년 10월 제2차 군법회의 사형수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예비검속된 주민 500~800여명이 군경에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제주4·3연구소 유해발굴팀이 지난해 9월9일 발굴작업을 알리는 개토제를 시작으로 공항 남북활주로 동북쪽 지점에서 이뤄진 유해발굴작업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4·3유해발굴팀의 조미영 기획팀장은 “일정이 촉박해 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세게 부는 환경에서도 작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찬식 4·3연구소 소장은 “60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해가 매장된 지점을 찾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유해발굴 지점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영령들의 도움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발굴된 유해들은 1949년 10월 제2차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주민들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 군 자료에는 이번에 수습된 유해 259구보다 적은 249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나와, 이에 대한 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오전 유해발굴 현장 부근에서는 제주4·3유족회가 발굴 작업 마무리와 수습된 유해를 제주대 법의학연구실로 옮기기에 앞서 제례를 봉행하고 발인식을 열었다. 송승문 4·3유족회 제주위원회 위원장은 주제사에서 “공항 학살터는 희생자들을 암매장하면서 진실과 인권을 함께 매장시켜버렸던 야만의 현장”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유해는 앞으로 제주대 법의학연구실에서 정밀감식 작업을 거쳐 사인 등을 규명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이에 앞서 2007년 8월 제주공항에서 실시된 1차 유해발굴작업에서는 100여구의 유해가 발굴된 바 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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