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통일’ 높은뜻 재조명
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였던 산수 이종률(1905~1989·사진) 선생 탄생 100돌을 맞아 그의 뜻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사업이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산수 이종률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는 다음달 3일 부산 민주공원 중극장에서 그가 주창했던 민족혁명론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을 열기로 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배다지 기념사업회장의 기조발제에 이어 박만준 동의대 교수, 전명혁·이호룡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책임연구원, 하원호 성균관대 교수, 장동표 밀양대 교수, 김지형 한양대 강사 등이 발표와 토론에 나설 예정이다.
다음달 4일에는 산수 선생이 교수로 재직했던 부산대에서 탄생 100돌 기념식이 열린다. 참석자들은 이날 산수 선생의 손때가 묻은 수일원과 부산은행 창선동지점, 산수 선생의 묘소가 있는 백운공원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기념행사 추진위는 또 산수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쉽게 풀어쓴 대중교양서 <민족의 지도자 이종률>을 펴내 전국의 도서관에 나눠주기로 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산수 선생은 1991년 <한겨레>의 소개로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으나,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전면적 연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그는 역사, 철학, 정치, 경제,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방대한 글을 남겼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있고 종합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수 선생은 1905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25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학생단체인 공학회를 이끌었고, 일본 와세다대학에 다니던 1928년에는 도쿄에서 조선교육신문사를 설립했으나 ‘우리말연구회 사건’과 ‘조선학생 맹휴동맹 사건’ 등으로 대학에서 쫓겨나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 수감생활을 반복하며 군수물자 불출하 투쟁 등 독립운동을 벌였고, 해방 이후에는 민족건양사론을 제시하며 남북 평화통일 운동을 벌였다. 52년부터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나, 62년 남북협상론을 주장하다 이른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민족자주통일방안 심의위원회 사건’에 얽혀들어 군사혁명특별재판소에 의해 사형을 구형받았다. 65년 형 면제로 풀려난 뒤, 말년에는 경남 양산 개운중학교 교장 등을 지내며 민족교육사업을 펼쳤다.
부산/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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