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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광통교, 왕권다툼 상흔 오롯이 ‘역사는 흐른다’

등록 2010-08-08 21:10

1410년 태종 이방원이 의붓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돌을 가져다 만든 광통교가 600살을 맞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상처 입었던 광통교는 2002년 청계천 복원 사업 때 뜯겨 지금은 엉뚱한 곳에 놓여 있다(사진 위). 1890년께 고종의 행차가 이뤄지는 광통교의 모습(아래).  서울시, <한겨레> 자료사진, 김규원 기자
1410년 태종 이방원이 의붓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돌을 가져다 만든 광통교가 600살을 맞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상처 입었던 광통교는 2002년 청계천 복원 사업 때 뜯겨 지금은 엉뚱한 곳에 놓여 있다(사진 위). 1890년께 고종의 행차가 이뤄지는 광통교의 모습(아래). 서울시, <한겨레> 자료사진, 김규원 기자
‘청계천 터줏대감’ 광통교 600년
태종 10년 여름, 한양에 큰비가 내렸다. 개천(청계천)에 큰물이 져서 다리가 무너졌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도 생겨났다. 한양은 물난리로 처연했다. 정치·군사를 총괄하던 최고 기관인 의정부에서는 “흙다리가 비만 오면 무너지니, 돌다리로 만들자”는 대책을 내놨다. 태종은 이를 받아들여 이 곳에 돌다리를 새로 만들게 했다. 지금부터 600년 전인 1410년 8월8일(음력)의 일이었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석조 건축물인 광통교는 이렇게 건설됐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한다.

1410년 수해 막으려 건축…서울안 ‘최고령’ 석조물
정릉 무덤돌 빼내 축조…조선 태종 정치보복 산물
일제 콘크리트 확장에 복개·졸속 복원 ‘수난의 연속’

광통교가 만들어질 때 사용된 돌은 지금의 중구 정동에 있던 정릉에서 가져왔다. 정릉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이자 태종의 정적이었던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다. 태종은 정동에 남아 있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돌로 광통교를 만들었다. 병풍석은 다리 교대와 상판으로, 난간석은 다리 난간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온 조선 사람들이 한양 한복판에 있던 광통교의 신덕왕후 무덤돌을 매일 밟고 다니도록 만들었다. 이는 광주시민들이 전두환의 이름이 새겨진 돌을 망월동 옛 5·18묘지 앞에 두고 모든 참배객이 밟고 지나도록 한 일을 연상시킨다.

이방원과 강씨의 대립은 조선이 건국된 13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뒤 고려의 실력자였던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조선 건국에 작지 않은 구실을 했다. 그러나 건국 뒤 정국 주도권은 정도전이 쥐고 있었고, 신덕왕후 강씨는 정도전과 협력해 자신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앉힌다. 그러자 이방원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쿠데타)을 일으켜 정도전과 방석·방번 형제를 모두 죽인다. 신덕왕후는 2년 전 세상을 떠나 이런 참상을 직접 겪지는 않았다.


광통교 교대에 사용된 신덕왕후 정릉 병풍석의 조각. 서울시, <한겨레> 자료사진, 김규원 기자
광통교 교대에 사용된 신덕왕후 정릉 병풍석의 조각. 서울시, <한겨레> 자료사진, 김규원 기자
태종으로 등극한 이방원은 1409년 정동에 있던 신덕왕후의 능을 지금의 도성 밖 정릉동으로 내친다. 새 능은 묘로 격하됐고, 봉분은 깎였으며, 왕가의 상징인 병풍석과 난간석도 모두 쓰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1410년 정동에 남아 있던 무덤돌들을 청계천으로 가져다 광통교를 만들었다. 이렇게 태종은 뼛속 깊이 사무쳤던 신덕왕후 강씨에 대한 원한을 씻었다.

박현욱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장은 “광통교에 사용된 무덤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을 보면, 태조 이성계가 먼저 세상을 떠난 신덕왕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알 수 있다”며 “이 솜씨는 태종이 만든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무덤돌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광통교는 조선 500년 동안 광화문~종로1가~숭례문 사이의 한양 제1대로에서 사람들이 널리 지나다니도록(廣通) 묵묵히 서있었다. 그러나 1899년 전차선로가 깔리면서 광통교는 훼손되기 시작했고, 일제 때 콘크리트로 확장돼 품격을 잃었다. 특히 1958년 청계천이 덮이면서 콘크리트 아래 묻혔다. 광통교 난간석들은 창경궁, 탑골공원으로 흩어졌다.

2002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광통교는 40여년 만에 다시 햇볕을 봤다. 그러나 광통교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교통 흐름에 영향을 준다”며 600년 가까이 제자리를 지켰던 광통교를 뜯어내 상류 155m 지점으로 옮겨버렸다. 다리는 물을 건너 끊어진 길을 잇는 것이지만 현재의 광통교는 길을 잇지 못하고 그 아래엔 물이 흐르지 않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박제돼 있다. 이제 사람들은 600년 된 다리를 자주 건너지 않고 다리는 고난의 시간들을 끌어안고 말없이 서 있다. 600년을 맞은 광통교가 제자리로 돌아가 예전의 당당한 모습을 되찾을 날은 언제일까?


김경욱 김규원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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