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유배 때 정약용과 황상
사제간 편지·시 등 책 엮어
양광식 소장 20년 열정 결실
사제간 편지·시 등 책 엮어
양광식 소장 20년 열정 결실
열다섯 소년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공부를 권하는 스승에게 소년은 “둔하고, 막혀 있고, 미욱하다”며 수줍어했다. 스승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내렸다. 1802년 10월 전남 강진 동문 밖 주막집에서 기숙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을 찾아가 글을 배운 제자 황상(1788~1870)은 평생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정진했다.
전남 강진군 문화재연구소장 양광식(65·사진)씨는 최근 <치원 황상이 받은 편지>를 냈다. 양 소장은 80년대 초반 황상의 <치원처사 사우왕복초>라는 책 원본을 발견한 뒤, 20여년 동안 자료를 보충해 간찰과 시를 번역하고 주를 달았다. 이 책엔 다산의 두 아들인 학연과 학유의 편지 외에도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아들, 해남 대흥사 초의(1786~1866) 스님 등이 보낸 편지 43편과 황상의 시와 글 등이 포함돼 있다. 다산 큰아들 학연은 아버지의 유배지를 방문해 만났던 황상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평생 인연을 이어갔다.
황상은 다산이 가장 아꼈던 제자였다. 그는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뒤에 지은 ‘설부’라는 시로 스승을 놀라게 했다. 다산의 둘째 형 정약전도 황상의 시를 보고 ‘월출산 아래 권역에서 이런 인재가 있느냐’고 감탄했을 정도였다. 신분적 제약 때문에 과거를 볼 수 없었던 황상은 다산이 강진을 떠난 뒤에도 대구면 항동에 ‘일속산방’(좁쌀 한 톨만한 작은 집)을 지어놓고 농사일을 하면서 부지런히 시를 지었다. 그의 저서 <치원유고>에 서문을 썼던 당대 대표적 서예가이자 고증학자였던 추사 김정희는 황상을 ‘금세무차작’(今世無借作)이라 극찬했다. 양 소장은 “황상 선생은 인간됨이 뛰어났고, 학문에 대한 자기 기준을 지녔으며, 자기만의 시 세계를 완성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황상의 학문적 깊이에 대한 조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황상의 뛰어난 시 150여편이 전해져 오지만 아직까지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다. 양 소장은 “제주 귀양에서 풀려났던 추사가 해남을 들렀다가 강진으로 와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황상”이라며 “가난했고 몸도 건강하지 못했지만 진솔했고 남을 배려하는 성품을 지녔던 황상의 학문 세계를 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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