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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이 탈들로 ‘시대의 잡귀’ 물리쳤으면…”

등록 2010-11-24 20:27수정 2010-11-25 08:37

윤만식씨
윤만식씨
탈가면 전시회 ‘우리들의 얼굴’ 여는 윤만식씨
진보예술운동 이끈 마당극 1세대
33년간 공연때 쓰고 만든 탈 선봬

33년 동안 탈판을 어슬렁거렸다. 어느새 백발이 다 됐다. 탈판에서 꿈꾸었던 세상은 오는가 싶더니 저만큼 물러나 버렸다. 도로아미타불이었다. 흐린 눈으로 돌아보니 남은 것은 손때 묻은 취발이탈 몇 점과 탈 만드는 손기술뿐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왔지요. 탈춤으로 웃고 울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요. 그런데 군부독재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눈앞에 딱 나타났어요. 이제 현장으로 갈 수도 없고, 뭔가 해야 하는데….”

마당극 운동의 1세대 배우인 윤만식(58·사진)씨가 24~30일 광주시 궁동 무돌아트갤러리에서 ‘우리들의 얼굴’ 주제로 탈가면 전시회를 열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봉산탈춤> <함평 고구마> <돼지풀이> 등 탈춤판과 마당판에 쓰였던 탈가면 3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봉산탈춤 때 비리와 부정의 상징인 ‘노장’(승)에 맞서 ‘소무’(처녀)를 빼앗는 ‘취발이’(노총각)는 크기·형태·느낌이 다른 6종을 내보인다. 취발이탈은 붉고 굴곡이 심한 얼굴에 큰 정수리 혹을 만들고, 흘러내린 머리를 붙여 춤 동작을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한국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의 상징 ‘치우천황’, 창작 마당판에 나온 재벌·귀족·농민·노동자 등 당시 시대 인물, 5·18 민주화운동 때 산화한 영령을 표현한 ‘5월의 전사’ 등도 등장한다. 윤씨는 “30년 전에는 공연을 하려면 어디서도 탈을 빌려주지 않아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다”며 “손때가 묻은 추억의 탈들을 모으고, 일부는 한지·점토·탈포로 새로 만드느라 석 달 동안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73년 전남대에 입학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친 77년 “군부독재에 저항하려고” 봉산탈춤을 배운 뒤 전남대와 조선대에 탈춤반을 만들었다. 1세대 광대가 되면서 내친김에 중부지역의 양주 별산대, 경상도의 고성 오광대, 통영 오광대로 영역을 넓혔다. 이후 ‘극회 광대’와 ‘놀이패 신명’을 창단하고 학교와 단체에서 탈꾼 300여명을 길러냈다. 90년대엔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와 광주민족예술인총연합을 주도적으로 창설하는 등 진보적 예술운동에 헌신했다. 지금도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지역문화교류재단 문예위원장, 5·18 뮤지컬 <화려한 휴가> 홍보위원장 등을 맡아 뛰고 있다.


이번 탈가면 전시회로 옛 기상을 되새기고, 내년엔 5·18을 소재로 한 창극의 공연을 도운 뒤 판을 정리할 계획이라는 그는 “탈을 집안이나 사무실에 걸어두면 일상이 평온해진다고 한다. 이런 주술적·축신적 속설대로 이 탈들이 시대의 잡귀들을 물리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봉산탈춤 7과장 중 춤사위가 가장 현란한 노장과장의 한 자락으로 대화를 마쳤다. “잡귀 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얼~쑤, 쿵~딱.”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푸른커뮤니케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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