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
‘생명의 사제’이자 ‘통일의 사제’
송별미사에 700명 참석해 ‘배웅’
송별미사에 700명 참석해 ‘배웅’
‘너, 어디에 있느냐?’ 사제로 서품 받던 날 마음에 새겼던 성경 귀절이었다. 그래서 35년동안 ‘길 위의 신부’로 불렸다. 문규현(66·바오로) 신부는 23일 오전 11시 전북 전주시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성당에서 주임 신부로서 마지막 미사를 올렸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 등 700여명이 참석해 노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기원했다. 문 신부는 이날 송별 미사에서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어 하는 분들과 함께 실천으로 행동하며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 사제의 길”이라며 “생명·평화·사랑의 길을 날마다 마음으로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신자들은 이날 송별식에서 정성스레 생화로 만든 꽃목걸이를 노 신부에게 선물했다. 용산 참사 때 남편을 잃은 유영숙(51)씨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와 함께 해준 신부님이 너무 고맙다”며 울먹이다가 준비해간 송별사를 다 읽지 못했다. 화가 홍성담(56)씨도 송시를 통해 시속 100㎞ 이상 속도를 내는 고속도로에서 넘어졌다가 일어서서 몇걸음을 걷는 자벌레의 모습을 들어 노 신부가 세상에 던졌던 오체투지 삼보일배의 의미를 되새겼다.
문 신부의 어린 시절 모습과 사목 현장 활동을 담은 동영상도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빛바랜 사진 속엔 4남 3녀 중 2명을 신부로, 1명을 수녀로 키웠던 노모의 모습도 보였다. 문 신부는 친형 문정현(70) 신부의 영향을 받아 뒤늦게 신학교에 가게 됐고 정의구현사제단 활동도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됐다고 한다. 124일동안 삼보일배를 한 직후인 2009년 10월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단식을 하다 쓰러졌던 수척한 모습을 본 신자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2003년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위해 부안에서 서울까지 305㎞를 65일동안 삼보일배로 나아갔던 ‘생명의 사제’였다. 또 1989년 8월 방북한 임수경씨와 함께 휴전선 북쪽에서 판문점을 통해 걸어 내려오던 그는 ‘통일의 사제’였다.
문 신부는 앞으로 원로 사목자로 지금까지처럼 생명·평화·인권의 현장을 찾아 갈 계획이다. 평화동 성당 사무장 남기윤(55)씨는 “신부님은 ‘투사’로 알려져 있지만, 작은 것도 잘 챙겨주시는 따뜻한 분”이라며 “본당 사목을 떠나시지만, 생명·평화·인권을 위한 사목의 현장에 늘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글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문규현 신부가 23일 낮 전북 전주시 천주교 평화동성당에서 주임신부로서 마지막 미사를 마친 뒤 열린 송별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왼쪽). 미사에 참석한 사제와 수녀, 신자들이 “사랑해요! 문규현 바오로 신부님”이라고 써서 성당 안에 내건 팻말이 보인다. 전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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