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조선 군사기지…13년 공사에 성곽 등 일부 제모습
전라병영성은 ‘설성’으로 불린다. 첫눈이 온 뒤 눈이 녹는 곳을 따라서 성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을 끼지 않고 평지에 쌓은 병영성은 ‘귀퉁이를 죽인 네모꼴’이다. 성은 남북이 길고 동벽의 길이가 서벽에 비해 약간 짧은 부정형의 형태다. 병영성 복원 설계를 맡았던 김홍식(65) 전 명지대 교수(건축학)는 “활을 잘 쏘았던 한 장군이 마을 앞산에 올라가 쏜 화살이 떨어진 곳의 바깥을 경계로 성을 쌓게 하면서 귀퉁이가 구부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고 말했다.
병영성은 1417년(태종 17) 본래 광산현에 설치되어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옮긴 것이다. 초대 전라병마절도사 마천목(1358~1431) 장군이 전라도 53주 6진을 관할하였을 때 축조했다. 9만3139㎡의 성안에 있던 병영은 조선시대 500여년 동안 전라도 육군의 총지휘부 격이었다. 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땐 서남부 군사본부로서 큰 역할을 했던 방어기지였다. 하지만 1894년 갑오농민혁명 때 농민군과 최후의 격전을 치르면서 잿더미가 됐고, 1895년 갑오경장의 신제도에 의해 사라졌다.
전남 강진의 옛 전라병영성이 살아나고 있다.
강진군은 28일 “병영면 성동리에 있는 병영성 성곽 둘레 1060m 중 700여 m가 복원됐다”고 밝혔다. 전라병영성은 1997년 4월 사적 제397호로 지정되고 이듬해인 1998년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된 뒤 2013년 완료될 예정이다. 병영성의 높이는 3.5m 정도다. 병영성 안 터에 있던 민가와 초등학교도 모두 이설됐다. 4개의 성문 중 남문에 해당되는 진남루 상량식이 지난 25일 열렸다. 진남루는 조선시대 성문으로서는 드물게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로 복원된다.
앞으로 성곽 안에 있던 동헌과 훈련장, 옥사와 가옥 등도 복원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1653년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조선에 온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은 1656년 병영성으로 유배돼 7년여 동안 살았다. 병영성엔 하멜 일행이 빗살무늬식으로 쌓은 것으로 전해지는 ‘하멜 담장’ 등 흔적이 남아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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