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풍경] ‘찻잔에 담은 삶’ 시장골목따라 가득

지난해 2월 광주 대인예술시장 안에 입주한 도예가 김영설(52)씨가 물레를 돌려 흙으로 형상을 빚고 있다.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팀 제공

광주 대인시장 입주작가 릴레이전 막여는 김영설씨
관객과 자주 만나려 ‘둥지’
작가 30여명과 의기투합
“예술 소개…판매도 하죠”

도예가 김영설(52)씨는 지난해 2월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예술시장에 사기점 토인(土人)을 냈다. 애초 전남 담양에 작업실을 두었지만 늘 사람이 그리웠다. 시장에 입주하면 작가들과 관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이리저리 따질 틈도 없이 26㎡(8평) 규모의 빈 점포를 덜컥 계약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5만원이라 임대조건도 괜찮았다. 혼자서 묵묵하게 흙만 만지던 그는 이내 저잣거리의 이런저런 재담들을 듣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시장 안 주점인 ‘보성집’과 ‘화순집’이 창작의 사랑방이에요. 두세명이 막걸리를 권커니 자커니 하다 보면 금세 예닐곱으로 늘어나요. 동료 작가들이 분야도 다르고, 개성도 강해서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지요.”

그는 예술시장에 입주한 작가 30여명과 ‘뭔가를 꾸미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입주작가 릴레이전이다. 올해 안에 여섯차례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그가 먼저 3~13일 ‘삶을 찻잔에 담아내다’라는 주제로 막을 연다. 재질·크기·모양·색깔·질감이 다른 찻잔 200여개를 시장 골목에 길게 늘어놓고 전시와 판매를 아울러 시도한다. 청자·백자·상감 등으로 빚은 온갖 찻잔을 한점당 1만~5만원에 내놓을 계획이다.

“찻잔은 흔하고 작아요.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완성된 아름다움이 있지요. 그릇이 가진 미덕도 발견할 수 있고요. 그냥 편하게 예술도 소개하고 작품도 판매하고 그러려고요.”

그는 1년 넘게 준비한 전시를 개막한다기보다는 시장 안에 점포를 여는 것처럼 쉽게 말했다. 전시 첫날인 3일 오후 2시엔 골목에 놓인 평상 위에서 따온 찻잎을 덖고 달인 차를 마실 기회도 마련한다. 찻잔을 만들 때 물레 앞에서 나는 생각들도 들려준다. 이번 전시가 흥행을 이루면 찻주전자, 접시, 사발 등으로 테마전시를 이어볼까도 구상중이다.

그가 골목 찻잔 전시를 마치면 입주작가 중 박문종 화백이 6월 말쯤 다음 전시를 이어받는다. 동료 작가인 박희연·홍희란·고재근·김성우씨 등도 예술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959년 개설된 광주 대인시장은 시청사·터미널이 있는 옛 도심에 자리잡아 70~80년대에 성장을 거듭했으나 90년대 이후 터미널 이전, 백화점 입점, 도청사 이전 등으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2008년 광주비엔날레 현장전을 계기로 점포 260여곳 중 30여곳을 공연장·아트숍·창작방으로 제공하는 등 예술시장으로 탈바꿈을 시도하며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안관옥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