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대 여성 회원들이 현장답사를 거듭해 만든 금당산 생태지도에는 도시 숲길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위치와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광주 주민 모임 12곳 연대, 생태지도 제작 등 활발
대구·전주·대전서도 훈풍 …생태파괴 저지 앞장도
대구·전주·대전서도 훈풍 …생태파괴 저지 앞장도
3일 낮 11시반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해발 304m 금당산 자락.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숲 모니터링에 참가한 지킴이들이 오던 숲길을 거슬러 한참을 돌아갔다. 다래나무를 꼭 보고 가자며 회원 한 명이 진도 나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행은 6월의 햇살을 받아 싱싱하게 반짝이는 다래나무 앞에 섰다. 누군가 낙엽 덩굴나무라고 앞말을 꺼냈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잘 익은 열매는 맛이 기막히다는 뒷말이 보태졌다.
“으름과 마삭줄도 보이네요. 덩굴나무는 끼리끼리 친한가 봐요. 이곳이 덩굴나무 지대라는 걸 해설판으로 알려주면 어때요?”
금당산 아래 사는 30~40대 여성들인 지킴이들은 올해 안에 풍암아파트단지 남쪽의 숲길 800여m에 자연관찰로를 조성할 참이다. 모두 8차례 모니터링을 해서 생태 해설판 6곳을 설치하기로 했다. 두번째 모니터링에 나선 이날은 해설·기록·사진·그림 등으로 역할을 나눠 열심히 숲길을 누볐다. 활동 3년차인 정봉남씨는 “처음에는 도서관에 놀러온 아이 엄마들이 가볍게 시작했다”며 “숲길에 자주 들어가다 보니 동네 산의 풀꽃·나무 이름이 궁금해지고 알아야 지킬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9년 회원 15명으로 ‘금당산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이어 매주 숲을 모니터링하고, 생태지도 제작, 생태서적 읽기, 샛길방지 식목, 생태학교 개설, 숲해설과 안내 등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 구현민씨는 “우리 동네 산만 지키는 걸로는 광주 전체의 녹지공간을 보전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연대기구를 찾게 됐다”며 “행정이 밀어붙이는 야간 조명과 도로 개설 등을 따지려면 한계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자발적인 동참으로 만들어진 연대기구가 ‘광주 앞산뒷산 네트워크’이다. 이 단체는 2006년 무등산처럼 알려진 산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날마다 산책하는 해발 100~500m 동네 산을 지키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광주지역 ‘앞산뒷산’ 63곳 가운데 군왕봉과 한새봉을 비롯해 금당산, 어등산, 분적산, 여의산 등 12곳에 지킴이 모임이 만들어졌다. 앞으론 백우산과 양림산 등지로 번져갈 것으로 보인다.
네트워크는 ‘앞산뒷산을 지켜야 광주가 산다’는 주제 아래 생태숲 아카데미를 열고, 생태지도를 만들고 어린이 답사단을 운영하는 등 연대활동을 펼친다. 이렇게 ‘초록행복’을 가꾸는 활동에 광주전남녹색연합·광주전남숲해설가협회·광주생명의숲 등도 지원·협력단체로 힘을 싣고 있다.
정은실 광주생명의숲 작은숲·도시숲 팀장은 “네트워크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생태·답사 모임이 차츰 늘어나 형성된 연결망”이라며 “대규모 택지 주변에 있는, 접근성이 좋고 고도가 낮은 산들을 중심으로 지킴이 활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는 이런 활동을 통해 중앙공원 유스호스텔 건립을 막아낸 데 이어 한새봉을 관통하는 순환도로 건설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 어등산의 대학 골프연습장 설치 계획을 저지하는 활동에도 나설 방침이다.
대구·대전·전주 등에서도 이런 앞산뒷산 지키기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구에선 ‘어머니 산’으로 불리는 앞산을 지키는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가 활동중이다. 앞산은 달서구와 남구, 수성구에 걸쳐 있어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과 운동을 즐기며 약수를 떠다 먹는 동네 산이다. 2005년 대구시가 앞산을 관통하는 터널공사를 계획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이 ‘앞산터널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2008년부터 앞산꼭지로 이름을 바꿔 터널을 뚫기 위한 대규모 벌목에 반대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터널은 뚫렸지만, 앞산꼭지는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에 관심을 기울이며 앞산을 지키고 있다.
전주에는 ‘완산칠봉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모임’(완사모)이 자연을 지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완산칠봉은 전주의 중봉과 투구봉 등 7개 봉우리로 형성된 산줄기이다. 1997년 결성된 완사모는 2005년 전주시 효자동 완산칠봉 근처 정혜사 옆 습지 1553㎡(470평)를 회원 380여명의 성금 1000만원으로 사들여 생태습지원을 조성할 정도로 힘을 키웠다.
대전에선 2004년 산을 좋아하는 몇몇 시민이 ‘대전시내를 보면서 산책하는 숲길을 연결하자’고 제안해 대전 둘레산길을 만들었다. 이 둘레산길은 보문산과 만인산, 계족산, 금병산, 구봉산 등 대전을 병풍처럼 둘러선 400~500m급 산길을 말한다.
대전시는 지난해 둘레산길의 역사와 유산, 인물, 설화 등을 발굴하는 등 둘레산길 알리기에 나섰다. 시는 2014년까지 60억원을 들여 표지판·이정표 등을 설치하고 시민들의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주민 김동성(54)씨는 “대전 둘레산길은 자연스럽게 난 길이어서 걷고 있으면 고향길을 걷는 것처럼 포근하다”고 자랑했다.
광주 대구 전주 대전/안관옥 박주희 박임근 송인걸 기자
okahn@hani.co.kr
광주 ‘금당산 지킴이’ 회원들은 금요일 오전이면 서구 풍암동 풍암아파트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금당산 숲길에서 나무·들꽃·벌레·조류 등의 생태를 조사한다. 금당산 지킴이 제공
회원 문상희씨가 그린 금당산 지킴이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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